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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 '멈춰 서서 생각하기'가 필요한 이유

스스로 생각하는 힘, 자유로운 시민과 건강한 사회의 초석

by 박수열

서론: 길 잃은 시대, 사유의 등불을 찾아서


우리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눈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자극이 쏟아집니다. 반복되는 경제 위기의 불안감, 깊어만 가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풍요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빈곤,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부정부패, 예측 불가능한 테러의 위협, 첨예하게 대립하는 젠더 갈등, 국경을 넘나드는 난민 문제,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까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 문제들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 전체 모습을 파악하기조차 버겁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때로는 ‘정치’나 ‘사회 문제’라는 단어에 피로감을 느끼고, 애써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당장 나의 일상이 바쁘고 고단하기에, 거대하고 복잡한 담론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거나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경험이나 낡은 이념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복잡한 현실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며, 미래의 방향을 알려줄 확실한 나침반도 보이지 않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현실 속에서 미래의 길을 찾아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찾는 첫걸음은 바로 ‘멈춰 서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본론 1: 정치는 ‘함께 살아감’의 예술, 민주주의는 ‘다름’ 속 조화


‘정치’란 무엇일까요? 흔히 선거나 권력 투쟁을 떠올리기 쉽지만, 정치의 본질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일상적인 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우리에게 공동으로 주어진 이 세계에는 나와 생각도, 취향도, 가치관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존재합니다. 이 당연한 사실이 바로 정치의 출발점입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함께 살아갈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든 과정이 곧 정치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을 넘어,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각자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현되고 경청하며,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통해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자신의 관점만을 고집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확장된 사고’가 가능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한 정치적 합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좋은 정치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개인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북돋아 주는 정치가 좋은 정치이며, 반대로 이를 억압하고 파괴하며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정치는 나쁜 정치입니다.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가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삶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삶을 위협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진정한 ‘권력’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지지와 동의에 기반합니다. 국민이 권한을 부여했기에 권력이 생겨나며, 그 지지와 동의가 철회될 때 권력은 사라집니다. 즉, 권력은 본질적으로 비폭력적이어야 하며, 소통과 설득을 통해 유지되어야 합니다. 폭력이 정당한 권력을 대체하려 할 때, 사회는 병들기 시작합니다.


본론 2: 생각하기를 멈춘 사회의 위험, 전체주의의 그림자


급변하는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을’ 유혹을 던집니다. 너무 바빠서,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혹은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급해서, 우리는 깊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익숙한 습관이나 사회적 통념에 따라 행동하기 쉽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지만, 거대한 시스템과 속도 경쟁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마치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처럼 수동적으로 움직이게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것’, 즉 ‘무사유(無思惟)’는 단순한 지식 부족이나 무지를 넘어섭니다. 이는 비판적으로 질문하지 않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하지 않으며, 주어진 정보나 권위 있는 목소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무사유 상태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윤리적 결과를 깊이 숙고하지 않게 되며, 단지 주어진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만 집중하게 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무사유’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악행이 때로는 악마 같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혹은 남들도 다 그렇게 했다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자기 행위의 의미와 결과를 성찰하지 않은 ‘생각 없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라 불리는 현상의 본질일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를 멈춘 개인들이 많아질 때, 사회는 전체주의적 경향에 취약해집니다. 전체주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으로 다가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억압하고 사회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목적 아래 통제하려 합니다. 비판적인 목소리는 억압되고, 획일적인 사고만이 강요되며, 사람들은 고립된 채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 전락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한 개인들은 이러한 전체주의적 선전과 통제에 쉽게 휩쓸릴 수 있습니다.


본론 3: 사유하는 시민, 자유로운 공론장을 열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하고 단일한 해답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과 태도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으로 지식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하려 노력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조망하는 능동적인 과정입니다.


이러한 사유는 개인의 내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토론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확장됩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시민들이 자유롭게 만나 공적인 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숙고하는 ‘공론장’은 건강한 사회를 위한 필수적인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관점을 배우고, 자기 생각을 가다듬으며, 공동의 이해와 합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 홍수 속에서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하는 경향(확증 편향)이 강해지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비판적으로 정보를 검토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판단은 마치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이것이 더 나은 방향이다’라는 공통의 감각을 형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서로의 정치적 성향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의견 속에 담긴 합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공통 감각’이 살아있을 때, 의견의 차이는 파괴적인 갈등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생산적인 논의의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정치적 자유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적인 문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론: 생각하는 힘이 미래를 만듭니다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기를 기대하거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 판단에 책임을 지는 주체적인 시민에게 주어집니다.

인간은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작의 능력, 즉 창조성과 자발성은 바로 ‘생각하는 힘’에서 비롯됩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며,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유하는 시민’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더 자유롭고 정의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동력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함께 길을 찾아가려는 용기와 의지입니다. 멈춰 서서 생각하는 당신의 사유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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