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조직이 아닌 개인의 시대

AI 시대, 당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법

by 박수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쳐 팬데믹을 경험한 우리는 이제 AI의 도래라는 새로운 문명의 기로에 섰습니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연공서열과 직책이라는 안내판에 의지해 살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길어진 수명과 감소하는 노동인구, 가속화되는 기술 혁신은 우리에게 직장이라는 정체성 너머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제 더 이상 조직에 기대어 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의 역량과 취향, 서사로 인정받는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해체와 개인의 부상


한때 조직은 삶의 전부였습니다. 선배를 따라가고, 체계에 순응하며, '선발'만 되면 평생 안전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시스템은 그 의미와 효용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받고 있습니다. 직급 체계가 단순화되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표준이 되며, 나이와 직책이 무색해지는 현상은 단지 문화의 변화가 아닙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직업의 생멸 주기가 짧아지고, 신입사원을 길러 쓰던 과거 기업들은 이제 '지금 당장 활용 가능한 인재'만을 찾습니다. 그 자리는 늘 대체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쓰임새가 있을 때는 조직의 울타리가 안락하지만, 그 기간은 한시적일 뿐입니다.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조직이 개인을 보호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24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어떤 보람을 느껴야 할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조차 묻지 않아도 되는 삶에 익숙해졌습니다. '지금 나의 회사와 일을 제외하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질문은 당연하게도 대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는 단순히 직장을 떠날 준비가 안 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정의할 언어 자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AI와 새로운 노동 시대의 자질


AI는 이 변화를 가속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이전에는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포기했던 수많은 업무를 이제 개인이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번역, 코딩, 데이터 분석 등 특정 분야의 전문가 없이도 AI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직업의 소멸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이 자신만의 '문명'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잠재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질문을 구체화하는 힘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찾는 질문을 통해 목표를 명확히 하고, 한계를 자각하며, 다양한 요소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AI는 그럴싸한 해답을 만들어내지만, 무수한 질문 속에서 현실을 관통하는 획기적 질문을 찾는 일은 아직 인간의 몫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기존 믿음을 흔드는 답을 담대히 수용하는 대범함이야말로 발전적 해체의 출발점입니다. AI가 정보의 현행화를 담당하는 시대, 인간의 역할은 '새로운 현상을 감지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쪽'으로 옮겨갑니다. 세상을 낯설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비틀어 해석하는 창의적 시선이야말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입니다.


무기력과 분석마비를 넘어서


그러나 변화 앞에서 많은 이들이 '분석 마비'에 빠집니다. 정보가 과잉되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행동은 멈춥니다. 유튜버의 성공 스토리를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얻지만, 이내 '나도 해야 하는데'라는 강박에 사로잡힙니다. 이 무한 반복의 연옥에서 벗어나려면,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안일한 태도가 개인의 활로를 막습니다. 모든 것이 지금처럼 흘러가리라 믿으며 안주하거나, 갑작스러운 행운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으리라는 소망에 기대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함정은 '두루 준비해야 한다'라는 생각입니다. 한 잔의 물을 달게 만드는 시럽을 한 항아리에 넣으면 그 단맛을 느낄 수 없듯이, 모든 것을 준비하려다 보면 자질을 지닌 분야에 깊이 몰입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평가가 사람 자체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인식입니다. 각자의 재능과 관심은 다르므로, 특정 역할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일 뿐 더 우월한 사람을 선별하는 일이 아닙니다. 100점 만점에서 20점을 받은 것도 그 자체로 멋진 성취이며, 더 나은 점수를 위한 출발점입니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무기력을 깨는 핵심입니다.


본진을 찾아 자아를 세우기


자신의 이름으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본진'을 찾아야 합니다. 본진이란 뚜렷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자해 경험을 쌓아가는 분야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취미를 넘어, 그 축적이 숙련으로 진화하고 새로운 본업이 되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AI는 이러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 결정적인 것은 개인의 선택과 집중입니다.


자기 자신을 단독자로 서술하고 싶은데, 가장 중요한 술어가 '회사원이다'라는 현실을 확인하는 순간, 정체성 위기는 시작됩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문제를 풀며,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를 중심으로 자기 이야기를 명확히 언어화해야 합니다. 직장이나 소속을 정체성의 핵심에 두지 말고, 자신의 취향과 역량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 스펙이나 직함이 아닌 역량의 현재화입니다. 시장과 조직, 사람들이 지금 필요로 하는 능력을 얼마나 빠르게 배우고 갱신하는지가 핵심입니다. '지속 공부-빠른 적용-피드백-업데이트'의 루프를 개인 단위에서 돌려야 합니다. 시간과 열정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원입니다. 그 에너지를 좋아하는 것에 소모하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축적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새로운 연대와 협력의 방식


개인의 이름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연대의 방식도 변합니다. 기존의 혈연, 학연, 지연 중심 관계는 약화하고, 취향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느슨한 연대가 형성됩니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끈끈하지 않지만, 다정한 상태, 교류의 총량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경험은 더욱 다채로워집니다.


개인의 행복에 있어 관계의 깊이만큼이나 다양성이 큰 역할을 합니다. 각자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존 제도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형성된 맥락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능력입니다. 맥락을 이해해야만 어떤 규칙을 존속시킬지, 어떻게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할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은 개인이 사회적 관계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집단이나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능력과 네트워크를 통해 정체성을 구축합니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내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실천의 첫걸음: 나로부터 시작하기


구체적인 실천은 자신의 아카이브를 만들어가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경력과 이력으로 남긴 기록이 아닌, 매일의 조밀한 기록으로 자신의 서사를 증명해야 합니다. '#오운완'처럼 꾸준함을 독려하고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이름에 각오와 성실을 더하는 일입니다.


자신만의 포트폴리오가 있다는 것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교류해 온 사람들의 교집합, 남긴 글,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일들이 바로 '나'를 정의합니다. 정보 과잉으로 한 걸음도 떼지 못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저 멀리 먼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력서의 권위가 아니라 직접 작성한 콘텐츠로 발견되는 검색 결과에서 당신의 이름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품성도 중요합니다. 거대한 협력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각자가 온전해지는 일입니다. 조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협력할 줄 아는,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결론: 자립을 향한 용기


AI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조직의 한 형태로 기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입니다. 자립의 반대말은 의존일 수도, 표류일 수도 있습니다. 독립했다는 것과 뿌리내렸다는 것의 조합이 굳혀질 때 자립의 선물이 열매를 맺습니다. 공동체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독립이라면, 나를 찾아 바로 서는 것이 자립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조직의 명함이 아닌 자신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사람들이 주목받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획득합니다. 의존과 종속에서 벗어나 자존과 자립을 추구할 때 중요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나만의 본진을 찾고, 꾸준히 기록하며, 자신의 서사를 써가는 일. 이는 도망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깊어지자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가장 꾸준히 해온 것이 무엇인지, 어떤 메시지로 세상과 소통해 왔는지 돌아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이름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AI가 정보를 현행화하는 시대, 인간의 역할은 문제를 정의하고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문명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여정의 끝은 알 수 없지만, 목적지의 방향성과 나침반을 품은 이에게 망망대해도 모험의 항로가 됩니다. 이제, 당신의 이름을 걸고 첫걸음을 내디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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