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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남긴 말

by 엠에스

<닭이 남긴 말>


날 좀 보소, 사람들아

이 내 말 좀 들어보소.

이 몸뚱이,

그저 계란 하나로 세상에 나와

스물한 날 품 안에 익어갔지요.


삐약삐약 첫울음,

어미 닭의 깃털 아래

사랑이 뭔지도 몰랐건만—


"보들보들 연하다"는 이유 하나로

삼계탕집에 팔려가고,


"토실토실 살 좋다"는 칭찬에

튀김기름에 튀겨지고,


"포동포동 튼실하다"는 소문 끝엔

백숙 냄비에 몸을 담그네.


날개는 꺾이고,

닭발은 족발처럼 내어지고,

가슴살은 다이어트 식단으로 사라지고,

심지어 똥집마저

"이게 또 별미지~" 하며

소주 한 잔에 안주되네.


아휴, 이 놈의 팔자도 참 기구하다만…


하지만 원망은 접어두겠습니다.

내 몸 하나 보시하여

누군가의 살이 되고,

힘이 되며,

마음까지 채운다면,

그 또한 축복 아니겠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그 자체가 상팔자요,

때론 힘들고 아파도

"복 없다"는 말

너무 쉽게 하지 마소.


부모님께 고운 말 한마디,

자식에겐 따뜻한 손길 하나.

이웃에겐 정 한 줌 나누고,

부부간엔 웃음꽃 피우면서—


도란도란,

방긋방긋,

그리 살아가소.


지금 이 순간,

당연하지 않은 하루.

잃고 난 후 후회 말고,

살아있을 때, 행복하소.


내 희생이

그대의 분노로 끝나지 않고,

그대의 식탁 위 감사로 남기를—

그대의 삶에

작은 깨달음 하나로 새겨지기를—


"생명이었던 것들 위에 삶이 있다."

그 진실을 잊지 마소.


― 닭 유가족 일동

(닭똥집, 닭발, 닭가슴살, 삼계탕, 백숙파, 그리고 찜닭까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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