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배신자인가?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으로 가는 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는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정치 속에서 이 문장이 늘 살아 숨 쉬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대통령이 퇴임하면 그는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는 여전히 ‘임금님’처럼 대접받고, 심지어 법의 심판으로 권력을 잃은 대통령조차 여전히 억울한 성군(聖君)인 양 추종하는 정치 세력들에 의하여 떠받들어지기도 합니다. 국가와 헌법 수호를 위해 법의 심판에 참여한 정치 세력은 추종 세력들에 의해 배신자로 찍히기도 한다.
한국 정치에서 드러나는 ‘배신’의 심리
최근 정치에서도 ‘배신’이라는 단어가 과도하게 사용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 위반과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것은 법적 절차를 거친 결과였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권력 행사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실망시키는 행위를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보수 진영의 일부에서는, 당시 탄핵에 찬성하거나 비판적 태도를 보인 유승민, 한동훈 등을 ‘배신자’로 규정한다.
이 현상에는 심리적 투사와 집단 동일시라는 심리가 작동한다.
지도자 동일시: 특정 정치인을 ‘자기 집단의 상징’으로 동일시하면, 그 사람에 대한 비판을 곧 나 자신과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느낀다.
도덕적 면죄부: 지도자의 잘못 보다 ‘우리 편을 공격한 행위’를 더 큰 죄악으로 여기며, 사실·법리보다 ‘충성’이 우선된다.
배신의 프레임: 객관적 비판과 내부 견제를 ‘배신’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집단의 결속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부패를 심화시키고 자기 정화를 막는다.
이런 심리는 진영 논리와 부정한 충성 문화의 산물이다. 지도자의 잘못을 바로잡는 합법적 절차와 내부 비판은 민주주의 건강성의 핵심이지만, 이를 ‘배신’으로 보는 시각은 제왕적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다.
왕의 기억, 신하의 습관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한국 사회에는 오랜 세월 누적된 정치적 습관이 있습니다. 조선 500년 동안 왕은 하늘이 내린 존재였고, 백성은 은혜를 입은 신하였습니다. 유교적 문화 토대 위에서 왕을 비판하는 것은 곧 불충이었고, 충성은 곧 생명이었습니다.
1919년 기미년 3.1 운동 후 근대 민주주의 제도가 들어서 왕이 아닌 국민이 주인인 시대가 되었지만, 마음속의 습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대통령을 ‘선출된 일꾼’이라기보다 ‘나라를 책임지는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비판하면 배신처럼 느끼고, 그가 실수하더라도 “우리 편이니까” 감싸게 됩니다.
한국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덕을 절대시 하던 전통 속에서 우리는 윗사람의 인격과 권위를 곧 나라의 흥망성쇠와 동일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속담은 오히려 뒤집어 읽어야 합니다. 국민 스스로가 깨어 있어야만 지도자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팬덤 정치의 그늘
이 습관은 오늘날 ‘팬덤 정치’로 이어집니다. 정치 지도자는 연예인처럼 팬덤을 거느리고, 지지자들은 옳고 그름보다 ‘충성’을 앞세웁니다. 그 결과 정치의 중심에는 정책이 사라지고, 인물만 남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군주는 법 위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법에 봉사하는 존재”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사람에게 충성하고, 제도는 부차적’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사회를 “우리 편 vs 너희 편”의 진영 싸움으로 몰아갑니다.
시민으로 산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대통령을 임금으로 보지 않고, 국민이 세금을 내어 고용한 일꾼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임기를 마치면 계약이 끝나는 것이고, 잘못하면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한 우리는 정치인을 향한 충성이 아니라, 헌법과 제도에 충성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맹자는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라고 말했습니다. 군주조차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통찰은 2000년 전 동양에서 이미 제시된 것이지요. 우리가 따를 것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법과 제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비판적 거리 두기입니다. 지지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곧 맹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은 스스로 주권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습관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생활의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헌법 책 속 문장이 아니라, 우리가 지도자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느냐 속에 있습니다. 대통령을 임금처럼 떠받드는 사회는 결국 다시 왕정으로 돌아가는 사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반대로 대통령을 일꾼으로, 국민을 고용주로 바라보는 사회가 되어야 민주주의는 살아납니다. 국민의 지혜와 선택이 바로 대통령의 권력의 힘이어야 합니다.
시인 김수영은 “자유를 위해서라면 풀 한 포기에도 말을 걸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자유는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태도 속에서 시작됩니다. 대통령을 향한 우리의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를 특별한 존재로 신격화할 때가 아니라, 나라의 일꾼으로 그리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려보낼 때 민주주의는 성숙해집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신하가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시민입니다. 대통령도 임금이 아니며, 국민이 잠시 고용한 관리일 뿐입니다. 이 단순한 자각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성숙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운영되는 자유 민주주의, 과연 누가 배신자인가?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은 오직 주권자인 국민의 지혜와 현명한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