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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없는 평화는 환상이다 — 현실을 직시한 한반도의 길

by 엠에스

<핵 없는 평화는 환상이다 — 현실을 직시한 한반도의 길>


허상 위의 평화


한반도의 하늘 아래, 평화라는 단어는 언제나 역설적으로 울린다. 전쟁은 멈췄지만 끝나지 않았고, 평화는 유지되지만 보장되지 않았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70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 어느 날보다 지금의 한반도는 더 불안정하다.


한국은 ‘세계 5위의 군사력’이라는 수식어를 자랑하지만, 그 화려한 숫자 뒤에는 치명적인 공백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핵무기다. 북한은 이미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자리 잡았고, 수십 기의 핵탄두와 다양한 운반수단을 실전배치한 상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비핵화’라는 이상적 구호를 외치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더 이상 협상의 주제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도피한 신화가 되어버렸다. 비핵화를 외치는 동안 북한의 핵은 정교해졌고, 그들의 전략은 더 교묘해졌다. 이제 우리는 냉정히 물어야 한다.

“핵 없는 자주국방은 가능한가?”

그리고 “비핵화라는 구호는 누구를 위한 이상인가?”


북한 핵의 본질 — 체제의 생존 논리


북한에게 핵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체제 그 자체다. 핵무기는 김정은 정권의 존재 이유이며, 동시에 내부 통치의 상징적 수단이다.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정권의 자기부정이다.


북한은 수십 년간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자위하기 위한 핵”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 본질은 정권 내부의 불안정성을 외부의 위협으로 전가하는 정치적 도피 전략이다. 핵은 ‘인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제사회의 지원과 교류가 시작되면서 필연적으로 개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 주민은 자신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거짓과 선전 속에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체제의 정당성은 무너지고, 통제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는 단지 협상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체제 생존과 붕괴를 가르는 절대선이다. 이 절대선을 넘을 수 있는 권력은 북한 내부에서 결코 나올 수 없다.


비핵화 협상의 환상 — ‘시간 벌기’의 정치학


지난 수십 년간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 협상’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실수를 반복해 왔다.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나올 때마다 약속을 했고, 그 대가로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협상은 언제나 ‘시간 벌기’의 도구였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대 초 6자 회담, 2018년 싱가포르 회담까지. 북한은 언제나 대화를 ‘전략적 휴식’으로 활용했다. 그 사이 그들은 핵무기를 완성했고, 미사일 사거리와 정밀도를 높였다.


문제는 우리가 그 게임의 규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참여했다는 것이다. 비핵화라는 ‘이상’을 포기하면 평화를 잃을까 두려워했고, 현실을 인정하면 외교가 실패한 것처럼 보일까 염려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설적이다. 비핵화를 외친 세월만큼, 한반도의 안보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비핵화는 이제 목표가 아니라 신앙이 되어버렸다. 그 신앙은 정치적으로는 도덕적 명분을 제공하지만, 전략적으로는 무기력하다. 우리가 믿는 동안, 북한은 무장을 끝냈다.


착시의 정체 — ‘세계 5위’의 마취 효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전술핵을 언급하고, 드론을 서울 상공에 띄워도 국민은 이제 놀라지 않는다. 안보 뉴스는 이젠 일상의 소음처럼 흘러간다. 이 무감각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징후다.


언론과 정치권은 “한국군 세계 5위”라는 문구를 자랑처럼 내세운다. 하지만 그 숫자는 위험한 착시다. 윤덕민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가 지적했듯, 이 한 문장이 국민의 경계심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5위니까 안전하다.” “북한은 이제 상대가 안 된다.”

그러나 이건 통계가 만들어낸 마취 효과일 뿐, 전쟁의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전쟁은 체급의 싸움이 아니다. 전쟁은 “파국을 감내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다. 핵을 가진 자와 핵이 없는 자 사이에서는 수학적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스 모겐소가 말했듯, 핵 없는 국가는 전쟁에서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즉각 항복이거나, 파멸 후 항복.” 이건 감정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다.


한국은 첨단 전투기, 이지스함, 정밀 미사일, 사이버전 능력을 갖춘 강군이다. 하지만 그것은 ‘핵 없는 강군’이다. 핵이라는 절대무기 앞에서 재래식 전력의 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 5위 군사력”이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그 기준은 단지 예산과 장비의 수치다. 그 안에는 전략적 자율성이나 억지력의 실질적 구조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국방전략은 여전히 ‘핵은 미국이, 재래식은 한국이’라는 분업체제 속에 묶여 있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변할 때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가이다. 만약 미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하여 한반도 개입 의지를 낮춘다면, 한국은 단 한 번의 전략적 공백으로 국가 생존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따라서 ‘핵 없는 자주국방’은 논리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모순이다. 핵을 갖지 않더라도, 최소한 핵을 억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 어떤 자주국방도 이름뿐인 자주에 불과하다.


군사력의 허상 — ‘지표의 언어’와 ‘전쟁의 언어’


‘세계 5위 군사력’이라는 평가는 대부분 글로벌 파이어파워(Global Firepower Index) 같은 민간 지표에서 비롯된다. 이 지표는 인구, 예산, 장비 수량, 기술 수준, 산업 기반 등을 종합 점수로 환산한다. 그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미국·러시아·중국·인도에 이어 5~6위권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시 전력 지수’에 불과하다. ‘지표의 언어’는 장비 수량을 세지만, ‘전쟁의 언어’는 억제력과 결심, 그리고 파괴 가능성을 잰다. 즉, 지표는 ‘보이는 힘’을 말하지만, 전쟁은 ‘보이지 않는 의지’를 요구한다.


한국은 분명 재래식 무기체계에서 상위권이다. K2 전차, K9 자주포, KF-21 전투기, 이지스함, 잠수함 전력까지 질적 수준만 놓고 보면 강대국들과 견줄 만하다.


그러나 전쟁은 ‘장비 목록’으로 싸우는 게 아니다. 운용할 사람, 지휘할 체계, 감내할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현실은 냉혹하다.

최근 5년간 병력 15만 명 감소, 2030년대 초엔 현역 병력 40만 명 수준으로 하락 전망.

출산율 세계 최저(0.7명대), 장기적으로 군 인력 유지 불가.

해군 이지스함은 있으나 SM-6급 요격 미사일 부재.

정조대왕급 구축함은 2036년까지 사실상 ‘깡통함’.

전차와 자주포는 넘치지만, 운용 인력과 정비 인프라 부족.

실전 경험 부재로 인한 전장 적응력 한계.


즉, 한국군은 장비는 있으나 전쟁은 못 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다. 기술은 강하지만 체력은 약하고, 장비는 많지만 숙련도는 떨어진다. 이건 체급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문제다.


북한의 변화 — ‘영양실조 군대’라는 환상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북한군을 ‘낡고 가난한 군대’로 오해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


북한은 현재 약 120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핵·미사일·드론·사이버’ 4대 전력체계를 중심으로 군사구조를 완전히 재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전술과 무기체계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으로 대공미사일·전투기 기술·잠수함 부품까지 확보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는 2025년 기준 50~70기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서울을 수차례 초토화할 수 있는 규모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핵을 사용할 의지’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핵을 정치적 협상 카드가 아니라, ‘체제 생존의 보루’로 인식하고 있다. 즉, 북한은 핵을 ‘심리적 억제력’이 아닌 ‘전술적 전력’으로 사용한다.


이 구조적 비대칭은 전쟁의 성격 자체를 바꾼다. 핵을 가진 상대 앞에서 전차, 포, 전투기 수량은 의미가 없다. 핵 없는 강국은 언제나 핵 보유 약소국의 인질이 된다.


안보 무감각의 병리 — ‘피로 사회’의 착각


한국 사회는 지금 안보를 ‘국가 생존의 과제’가 아닌 ‘피곤한 잡음’으로 취급한다. 전쟁 뉴스는 클릭 수가 떨어지고, 군사 논의는 정쟁으로 소모된다.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 중이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엔 이미 ‘평화시대’가 들어앉았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가 폭격당할 때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질 때도, 한국인 다수는 그것을 ‘강 건너 불구경’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불길은 언제든 동북아로 번질 수 있다.


토인비는 문명의 몰락을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내부의 무감각” 때문이라 했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바로 그 ‘무감각’이다. 한때 전 국민이 ‘국가안보’를 일상적 가치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경제, 복지, 젠더 논쟁이 모든 공론장을 덮고, 안보는 ‘낡은 주제’, ‘보수의 언어’로 밀려났다.


그러나 국가의 생존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존재의 문제다. 국가가 생존하지 못하면, 복지도, 인권도, 평화도 모두 사라진다.


전략적 대안과 자율성의 확립 — 새로운 억지력 구조


한국이 당장 핵무기를 직접 보유하는 것은 국제정치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핵 억지력을 위한 전략적 대안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은 가능한 목표다. 그 핵심은 여섯 가지다.


첫째, 전략적 대안 핵 공동운영체계 확립

NATO 식 핵공유 모델 검토.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배치 및 공동운용체계 확립.

일본·호주와의 삼각 안보 협력 강화.


둘째, 핵추진 잠수함(SSN)의 확보다.

핵추진잠수함은 단지 무기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 생존성’을 담보하는 전략자산이다. 핵탄두를 탑재하지 않더라도, 감시와 정찰, 장거리 타격의 자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셋째, 정밀 타격 능력의 강화다.

한국형 3축 체계(Kill Chain, KAMD, KMPR)는 북한 핵의 초기 타격 대응을 목표로 하지만, 현재 수준으로는 완전한 억지가 어렵다. 정찰위성, 초정밀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무기 등 기술적 통합이 필요하다.


넷째, 사이버·전자전 능력의 전략화다.

미래 전쟁은 물리적 충돌보다 정보와 인식의 전장에서 승부가 갈린다. 적의 지휘체계를 마비시키고, 정보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곧 핵 억지의 새로운 형태다.


다섯째, 전력구조의 질적 전환

병력 중심에서 숙련도 중심의 전문 군 체계로 전환.

무인화·AI 기반 전투체계로 인력 절벽 대응.

징병제는 유지하되, ‘병역의 질’을 혁신적으로 향상.

단기 복무보다 장기 복무 인센티브 강화로 전문성 축적.


여섯째, 정치의 탈정략화

병역 단축을 선거용으로 활용하는 행태 중단.

병역은 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안보를 정쟁이 아닌 국가적 합의의 영역으로 되돌려야 한다.


이 여섯 가지는 단순히 군사력의 확장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핵을 갖지 않지만 핵억제’의 구조적 기반이 된다.


동맹의 한계와 자율의 필요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동맹은 절대적인 보장이 아니다. 미국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미국의 이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대만 해협의 긴장 등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 미국의 전략적 자원은 점점 분산되고 있다. 만약 한반도 위기가 미국의 이익에 직접 맞닿지 않는다면, 그들은 주저할 것이고,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 동맹을 유지하되, 전략적 대안과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미국과의 동맹의 균형을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다. 동맹은 의존이 아니라 상호 이익의 동반자 관계여야 한다. 그를 위해 우리는 ‘한국형 확장억지 체계’ 구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계해야 한다.


국민의 인식 — 안보는 시민의 정신에서 시작된다


안보는 총칼보다 의식의 문제다. 국민이 안일하면, 국가는 약해진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는 북한의 핵이 아니라, 그 핵을 ‘가상의 위협’으로 치부하는 국민의 무감각이다.


현대의 전쟁은 단지 무력 충돌이 아니다. 심리전, 정보전, 여론전이 결합된 복합전이다. 북한은 이미 수년째 가짜 뉴스, SNS 선전, 이념 분열 공작을 통해 남한 사회의 내부 균열을 노리고 있다. 따라서 국민의 안보 인식력이 곧 국가의 면역체계다.


국민은 정부의 방어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비상 상황 시의 행동 절차, 대피 체계, 사이버 안전 교육 등이

민주 시민의 기본 교양이 되어야 한다. 안보의식이 생활화된 사회만이 진정한 ‘민주적 방위국가’다.


비핵화의 재정의 — 이상에서 현실로


비핵화는 여전히 외교적 구호로 남아 있지만, 이제 그 의미를 바꿔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이상은 현실 정치에서 불가능하다. 그 대신 ‘핵 사용 불가화’, ‘핵 활동 동결’, ‘핵 확산 차단’, '핵 공동운영체계' 같은 단계적 현실 관리가 필요하다.


비핵화는 이상이 아니라 위기관리의 기술이다. 핵을 직접 갖기 전에, 먼저 그 핵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 비핵화다.


현실 위의 이상 — 한국의 생존 전략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비핵화를 외치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위에서 이상을 설계해야 한다.


첫째, 핵 억지의 전략적 대안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둘째, 동맹을 재정의하며,

셋째, 국민의 의식과 사회적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될 때만이 한반도의 평화는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된다. 평화는 선의가 아니라 힘의 균형 위에 세워진다. 힘없는 평화는 언제나 파괴되었고, 현실을 외면한 이상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났다.


결론 — 핵을 넘어서는 힘


핵 없는 자주국방은 환상이다. 그러나 그 환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핵을 두려워하는 나라는 늘 협상의 뒤편에 서게 된다. 하지만 핵을 넘어설 전략과 의지를 가진 나라는 비로소 협상의 주인이 된다.


한국이 꿈꾸는 평화는 핵 없는 평화가 아니라, 핵을 넘어설 수 있는 평화여야 한다. 그 평화는 힘의 균형과 국민의 각성, 그리고 전략적 지혜 위에서만 가능하다.


한반도의 미래는 더 이상 외부의 손에 맡길 수 없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평화를 설계할 차례다. 진정한 자주국방은 핵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핵을 초월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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