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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풍요의 저주와 국가의 몰락

자원이 만든 환상과 교훈

by 엠에스

<베네수엘라, 풍요의 저주와 국가의 몰락>

— 자원이 만든 환상과 교훈


“신은 석유를 주었지만, 그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망했다.”

이 말은 한 베네수엘라인 경제학자가 절망적으로 남긴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나라, 천연자원이 넘쳐나는 나라, 남미의 ‘부국’이라 불리던 베네수엘라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을까? 풍요는 왜 저주가 되었고, 그 저주는 왜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


석유가 만들어낸 ‘환상의 번영’


20세기 중반까지 베네수엘라는 라틴아메리카의 기적이라 불렸다. 풍부한 석유 덕에 국민소득은 급상승했고, 수도 카라카스는 ‘남미의 파리’라 불릴 만큼 화려했다. 1970년대에는 1인당 GDP가 한국보다 3배 이상 높았고, 유럽 이민자들이 살기 위해 몰려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번영은 ‘석유에 기댄 착시’였다.

석유 수익은 국민의 복지와 정부 재정으로 흘러들어 갔지만, 산업 기반은 오히려 약화되었다. 제조업은 사라지고, 농업은 쇠퇴했다. 국민은 점점 ‘석유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나라’에 익숙해졌다. 정부는 석유 수입으로 모든 사회 문제를 덮었고, 기업가 정신은 사라졌다. 국가는 국민의 노동 대신 ‘돈을 나눠주는 시스템’으로 변해갔다.


이것이 바로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석유로 인한 외화 유입은 통화를 강세로 만들었고, 그 결과 수출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국민은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었고, 정부는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표를 샀다. 그렇게 국가의 근육은 점점 약화되었다.


포퓰리즘과 사회주의 실험의 붕괴


1999년 우고 차베스(Ugo Chávez)가 집권하면서 베네수엘라는 본격적인 ‘석유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석유는 국민의 것이다”라 외치며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무상 복지와 가격 통제를 확대했다. 처음에는 국민들이 열광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무상 의료를 시행하고, 교육을 무료로 제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복지의 재원은 석유뿐이었다. 유가가 높을 때는 그 시스템이 유지되었지만, 국제 유가가 하락하자 모든 것이 무너졌다. 정부는 돈이 없어지자 화폐를 무제한 발행했다. 결과는 초인플레이션이었다. 빵 한 조각이 수백만 볼리바르가 되었고, 화폐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국민은 식량과 약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기 시작했고, 베네수엘라 인구의 20%가 해외로 탈출했다.


차베스 사후, 마두로 정권은 이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는 독재로 기울며 군부와 결탁해 부패의 늪에 빠졌다. 경제 개혁은커녕, 비판 언론과 야당을 탄압했다. 국민의 분노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미국이 우리의 위기를 만들었다”라고 선전했지만, 사실 미국의 제재는 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었다. 이미 내부는 썩어 있었다.


중국과 미국의 그림자 — ‘패권의 사슬’에 묶인 나라


베네수엘라의 비극에는 외세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베네수엘라 석유의 최대 수입국이었지만, 차베스가 반미 노선을 택하자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대신 중국이 그 공백을 메웠다. 중국은 막대한 차관을 제공하며 석유를 담보로 잡았고, 베네수엘라는 ‘석유로 빚을 갚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그 빚은 국가 재정을 더욱 옥죄었다. 석유 생산이 줄어들자 중국에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석유를 넘겨야 했고, 국내 공급은 더 부족해졌다. 국민은 기름 한 방울도 구하기 어려운 ‘석유 부국의 역설’ 속에서 고통받았다.


미국의 경제 제재는 마두로 정권을 압박했지만, 동시에 일반 국민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베네수엘라는 중국의 자본에 종속되고, 미국의 금융망에서 배제된 채 고립된 반(半) 사회주의 국가로 남았다. 이것이 ‘양대 패권의 틈에 낀 약소국의 현실’이다. 내부 개혁의 실패는 외세의 영향력을 더욱 키웠고, 국가는 주권을 잃은 채 국제 정치의 장기판 위에 올려졌다.


현재의 실상 — 무너진 사회, 사라진 중산층


현재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붕괴 상태다. IMF에 따르면 2013년 이후 GDP는 80% 이상 감소했고, 인플레이션은 연 수천 퍼센트에 달했다. 병원에는 약이 없고, 슈퍼마켓에는 식량이 없다. 범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전기와 물도 자주 끊긴다. 한때 중산층이었던 이들은 거리의 노숙자가 되었고, 전문직 종사자들이 콜롬비아와 칠레로 떠나 생계를 이어간다. ‘석유의 나라’에서 국민들은 연료를 사기 위해 하루 종일 줄을 서야 한다.


그럼에도 마두로 정권은 군부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석유공사 PDVSA는 정치적 충성의 대가로 자리를 나눠주는 ‘정권의 금고’로 전락했고, 생산성은 과거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붕괴했고, 사회는 분열되었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에서 배우는 대한민국의 교훈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단순히 ‘남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풍요 속의 나태, 복지의 정치화, 산업 다변화 실패, 그리고 외세 의존의 위험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대한민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첫째, 단일 산업 의존의 위험이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에,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산업 구조가 취약하면 외부 충격에 국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산업의 다변화, 기술 혁신, 그리고 미래 산업에 대한 장기적 투자 없이는 한국도 ‘자원의 저주’와 같은 구조적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둘째, 포퓰리즘의 유혹이다.

정치가 국민에게 ‘즉각적 달콤함’을 주려는 순간, 국가는 지속가능성을 잃는다. 베네수엘라가 무상 복지로 파탄난 이유는 ‘복지 자체’가 아니라 ‘재정 기반 없는 복지’였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정치적 표를 위한 무분별한 복지 경쟁이 국가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복지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경제 생산성과 결합되지 않으면 결국 모두를 가난하게 만든다. 경쟁력이 없는 곳에 표를 의식해 무상 복지로 유지된다면 이제는 미래 산업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셋째, 정치의 도덕성과 제도의 투명성이다.

부패한 권력은 아무리 풍요로운 자원도 탕진시킨다. 제도의 신뢰는 경제의 근간이며, 공정한 경쟁 환경이 사라질 때 국가는 활력을 잃는다. 한국의 정치 역시 정파적 이해와 도덕적 타락이 반복될 때, 그 길은 베네수엘라의 그림자와 다르지 않다.


철학적 성찰 — 풍요의 윤리와 국가의 자의식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경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다. 풍요는 인간을 나태하게 만들고, 나태는 사유를 마비시킨다. 니체는 “국가는 냉혹한 괴물”이라 했지만, 그 괴물은 국민의 무관심이 키운다. 국민이 권력에 의존하고 스스로의 책임을 포기할 때, 국가는 더 이상 시민의 것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국민이 주체성을 잃은 사회’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 역시 경제 성장의 과실 속에서 점점 ‘국가 의존형 의식’을 강화해 왔다. 노력보다 분배, 자율보다 보상, 경쟁보다 형평을 앞세우는 문화는 민주주의의 미덕이 아니라 타락의 서곡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복지는 ‘의존이 아닌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일 때에만 의미가 있다. 결국 국가는 시스템보다 시민의 의식 수준만큼만 존재한다. 또한 세계 최고의 저출산, 젊은이들의 탈 한국, 주요 산업의 미국 이전에 따른 국내 산업 약화 등 상당 부분의 경쟁력 있는 자원 상실이 예상된다.


미래를 위한 메시지 — ‘풍요의 저주’를 넘어


베네수엘라의 역사는 한 가지 명제를 남긴다. “국가의 진정한 부는 자원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이들의 지혜에 달려 있다.”


풍요는 축복이 아니라 시험이다. 한국은 지금 기술력과 자본, 인적 자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석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혜롭게 관리하지 못하면, 풍요는 언제든 위기로 바뀔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은 그 틈새를 자신의 국익을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국가의 번영은 자원이나 지도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의 ‘생산적 의식’과 ‘도덕적 책임’ 위에 세워진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바로 그 윤리의 붕괴였다.


결론


베네수엘라는 자원이 많았기에 가난해졌다. 그들은 석유가 국가를 살릴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 석유가 국민을 나태하게 만들었다. 포퓰리즘은 자유를 마비시켰고, 부패는 체제를 좀먹었다. 외세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풍요 속에서 경계심을 잃은 순간, 국가는 스스로 무너진다.


대한민국이 지금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부의 안일함이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멀리 있는 남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제든 맞이할 수 있는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풍요(기술력과 자본, 인적 자원 등)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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