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사고 이후, 정부의 태도가 남긴 것
— 보안 사고 이후, 정부의 태도가 남긴 것
국가는 말로 통치한다. 특히 대통령의 한마디는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국가의 태도이자 방향성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위기 국면에서의 언어는 정책만큼이나 무겁다. 최근 쿠팡 보안 사고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한 발언, “어쩌라고요”는 단순한 즉흥적 반응이 아니라, 이 사태를 바라보는 정부 인식의 축약본처럼 읽힌다.
“어쩌라고요” — 말의 가벼움, 책임의 공백
중국 방문 중 상하이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쿠팡 사태의 가해 주체가 중국인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대통령은 “중국인이면 어쩌라고요. 일본 사람이면 일본 사람 미워해야 하고, 미국 사람이면 미국 사람 미워해야 하느냐”는 취지로 응답했다.
문제는 이 발언이 혐오를 경계하려는 의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사안의 본질을 비껴갔다는 데 있다. 국민이 묻고자 한 것은 ‘미워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국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정책이 아니라 반문이었다. “어쩌라고요”라는 표현은 그 순간,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공중에 떠넘기는 언어로 들렸다.
국적이 아니라 관할의 문제다
사이버 범죄에서 가해자의 국적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수사 관할과 국제 공조의 출발점이다. 가해 주체가 중국과 연관되어 있다면, 당연히 중국 공안과의 공조 수사 여부, 정보 요청 절차, 외교 채널을 통한 협의가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국제 사회의 통상적 대응이다.
따라서 이 사안에서 필요한 말은 “어쩌라고요”가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대응하고 있다”였어야 한다. 사실 관계를 어디까지 파악했고, 어떤 국제 공조가 진행 중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제도를 준비 중인지—국민이 듣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보안 사고의 본질이 흐려지는 순간
쿠팡 사태의 핵심은 명확하다.
● 대규모 플랫폼 기업의 보안 관리 체계는 충분했는가
● 사고 이후 정보 공개와 책임 인식은 적절했는가
● 정부는 이를 산업 전체의 시스템 문제로 다루고 있는가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점차 정치적 제스처와 상징적 질책으로 기울었다. 청문회, 공개 비판, 여론 압박은 이어졌지만, 정작 구조적 보안 개선 로드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사태의 본질은 ‘보안 사고’에서 ‘쿠팡 문제’로 축소되었다.
이 지점에서 “어쩌라고요”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마치 사건의 본질을 더 이상 확장하지 않겠다는 신호, 혹은 정책적 책임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쿠팡 길들이기’ 의혹은 왜 생기는가
정부가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선택성과 맥락이다. 쿠팡에 가해지는 압박의 강도와 방식은, 다른 글로벌 플랫폼—특히 중국계 초대형 플랫폼들에 대한 대응과 비교될 때 불균형해 보인다.
이 불균형은 자연스럽게 의혹을 낳는다. 이 사태의 목적이 보안 체계 개선이 아니라, 국내 특정 플랫폼을 제어하거나 약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더 나아가, 그 결과가 알리·테무 등 중국 플랫폼의 한국 시장 확장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심각한 정책 실패다.
플랫폼은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소비·물류·노동이 결합된 국가 핵심 인프라다. 이를 정치적 메시지로 다루는 순간, 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정부 대응의 구조적 문제
이번 사태는 이재명 정부의 몇 가지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 사이버 안보 컨트롤타워 부재
외교·수사·기술·산업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 메시지 리스크 관리 실패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이 정책 전체를 대표해 버렸다.
● 사전 예방보다 사후 제재 중심 사고
보안 투자를 유도하는 시스템보다, 사고 이후의 책임 추궁에 집중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완벽한 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라고요”라는 말 대신, 고민의 방향과 책임의 주체는 분명히 제시되길 원한다.
필요한 해법: 태도의 전환
이제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 국제 공조 수사의 투명한 공개
국적 논쟁이 아니라, 수사 진행 상황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 플랫폼 보안의 동일 규제 원칙 확립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는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
● 정치적 언어의 절제
대통령의 말은 토론의 재료가 아니라 정책의 기준점이다.
국민에게 남는 질문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묻는다. 국가가 “어쩌라고요”라고 말할 때, 우리의 개인정보와 디지털 주권은 누구의 책임인가. 분노와 진영 논쟁 속에서, 우리는 시스템의 부재를 너무 쉽게 용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맺음말
쿠팡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국가의 태도 속에서 진행 중이다. “어쩌라고요”라는 말이 상징하듯, 문제는 가해자의 국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어떻게 언어화하고 제도화하느냐에 있다. 정부의 역할은 반문이 아니라 답변이어야 한다. 답을 내놓지 못하는 순간, 국민은 국가의 준비 상태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의심이 쌓일수록, 사회의 신뢰는 조용히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