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에서 ‘북향민’으로, 언어 정치의 본질을 묻다
― ‘탈북민’에서 ‘북향민’으로, 언어 정치의 본질을 묻다
최근 통일부가 ‘탈북민(脫北民)’ 대신 ‘북향민(北向民)’이라는 명칭 사용을 검토·권장하고 있다는 논의는 단순한 용어 조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행정적 중립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더 정확히 말해 어떤 현실을 보이게 하고, 어떤 현실을 가릴 것인가라는 문제다.
언어는 중립적 도구가 아니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곧 권력 행사이며, 현실을 사회적으로 ‘존재하게’ 하거나 ‘지워버리는’ 힘이다.
‘탈북민’과 ‘북향민’의 근본적 차이
① 탈북민(脫北民)
● 의미: 북한 체제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
● 핵심 요소
탈출의 주체성
체제 이탈이라는 정치·인권적 맥락
강제노동, 기아, 처형, 통제 사회에 대한 증언자의 위치
● 국제법적 맥락: 난민·인권 피해자 서사와 연결
② 북향민(北向民)
● 의미: ‘북쪽을 향한 사람’ 혹은 ‘북한 출신 주민’ 정도로 해석 가능
● 문제점
‘왜 떠났는가’라는 질문이 사라짐
가해 체제의 성격이 비가시화됨
탈출·망명·저항의 정치성이 중립화됨
즉, 탈북민은 ‘사건’이고, 북향민은 ‘출신’이다. 전자는 역사와 폭력을 포함하고, 후자는 그것을 제거한다.
왜 이런 명칭 변경이 시도되는가
명칭 변경의 공식적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 탈북민에 대한 낙인 완화
● 남북 관계에서의 외교적 긴장 관리
● 행정 용어의 중립성 확보
● ‘탈(脫)’이라는 표현이 주는 적대성 완화
그러나 여기에는 정치적 계산이 함께 작동한다.
● 북한 정권과의 관계 관리
‘탈북’이라는 말은 곧 체제 실패의 증거
북한은 탈북민을 체제 배신자, 반역자로 규정
명칭 완화는 북한 정권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효과
● 국내 정치의 갈등 회피
탈북민 증언은 인권 문제를 정치화시킴
정치권력은 불편한 증언보다 ‘조용한 중립’을 선호
결국 이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현실을 축소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명칭 변경이 낳는 구조적 문제
① 폭력의 비가시화
체제 탈출의 원인이었던 강제노동·기아·공포 정치가 언어 속에서 사라진다.
② 가해자 없는 서사
북한 정권이라는 책임 주체가 흐려지고, “그냥 이동한 사람들”이 된다.
③ 피해자의 정체성 박탈
많은 탈북민은 스스로를 증언자로 인식한다. 명칭 변경은 그들의 삶을 비정치적 행정 대상으로 환원시킨다.
④ 국제 인권 담론과의 단절
탈북민 문제는 유엔 인권결의, 국제난민법과 연결돼 있다. 명칭의 중립화는 이 연결고리를 약화시킨다.
철학적 관점: 이름을 바꾸면 정의도 바뀌는가
한나 아렌트는 말한다. “악은 종종 언어의 무력화 속에서 일상화된다.” 폭력은 총과 수용소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그 폭력을 말하지 않게 만드는 언어가 폭력을 연장한다.
조지 오웰 역시 『1984』에서 경고했다. “언어가 줄어들수록 사고도 줄어든다.” ‘탈북’이라는 단어를 없애는 순간, 우리는 묻지 않게 된다. 왜 탈출해야 했는지, 무엇으로부터 벗어났는지.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① 강제적 명칭 변경이 아닌 ‘선택권 보장’
● 공식 문서에서는 ‘탈북민(북한이탈주민)’ 병기
● 당사자가 스스로 호칭을 선택하도록 존중
② 언어 완화가 아닌 사회적 보호 강화
● 낙인은 이름이 아니라 차별 구조에서 발생
● 고용, 교육, 주거, 심리 지원이 실질적 해법
③ 인권 서사의 유지
● 탈북민 증언은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역사 기록
●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은 ‘침묵’이 아니라 ‘증언’
④ 정부의 언어 사용 원칙 확립
● 외교적 편의보다 헌법적 가치 우선
●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와 인권을 보편 가치로 선언
국민이 가져야 할 통찰
이 문제의 핵심은 북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다루는 가의 문제다.
● 우리는 갈등을 없애기 위해 진실을 지우는가
● 아니면 진실을 감당할 용기를 갖는가
탈북민은 단순한 ‘이동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체제의 거짓을 몸으로 통과해 나온 증언이다. 그 존재 자체가 권력이 두려워하는 이유다. 총보다, 제재보다, 외교 수사보다 세뇌에서 벗어난 개인의 이야기가 더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맺음말
‘탈북민’을 ‘북향민’으로 바꾸는 일은 중립적 행정 조정이 아니라 기억과 증언의 무게를 덜어내는 정치적 선택이다.
정의는 침묵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정의는 불편한 이름을 부를 때 유지된다. 국가의 품격은 권력이 불편해하는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가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언제나 가해자의 편의가 아니라, 피해자의 존엄이어야 한다.
탈북민이 싫어하는 것은 ‘탈북민’이라는 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통해 자신들의 삶이 지워지거나 이용되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