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 한번의 삶을 살고 있다

-김영하의 '단 한번의 삶'을 읽은 뒤

by 글빛누리

나는 이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결심하기에는 문장들이 지나치게 차분했고,
위로받기에는 문장들이 지나치게 건조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삶에는 예행연습이 없고,
되돌릴 장면도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 잘 살아야 할 이유도,
반드시 의미 있어야 할 의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내 삶을 설명하려 애써왔다.
왜 이 선택을 했는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지금의 나는 어떤 이야기의 결과인지.

하지만 이 책은 묻지 않았다.
설명하라고도, 정리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설명되지 않은 삶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기억을 신뢰해왔지만,
이 책은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
편집된 이야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우리의 스토리에서
실패는 교훈으로 바뀌었고,
우연은 필연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웠으니까.

나는 이제 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조금 부정확해도
삶 자체가 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삶의 많은 순간들이
계획 밖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중요한 결정은 늘 급작스러웠고,
방향 전환은 대체로 설명되지 않았다.

이 책은 말한다.
우연은 예외가 아니라 대부분이라고.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삶은 통제보다 경험에 가까운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에 관한 문장을 읽을 때
속도를 늦췄다.
죽음이 삶에 의미를 준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부담이었다.

이 책은 그 부담을 걷어낸다.
끝이 있다는 사실은
삶을 고귀하게 만들기보다
오늘을 과장 없이 바라보게 만든다고.

나는 오늘이
그 자체로 충분히 무겁다는 데 동의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삶이 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계획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확신은 여전히 부족하다.

다만 나는 이제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느슨해도,
가끔은 이유 없이 멈춰 서도,
설명되지 않은 채 흘러가도.

나는 창밖을 잠시 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그 시간 역시
이미 단 한번의 삶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