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원전 압박 / 출처 : 뉴스1
수십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 발전소(원전) 건설 사업을 따내기 위해 ‘팀코리아’가 온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이 중대한 사업을 앞두고 동맹국인 미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우리가 독자 개발한 원전 대신 미국 모델을 함께 팔자는 것이다.
갈등은 지난 8월, 제임스 댄리 미국 에너지부 차관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본격화했다.
미국의 원전 압박 / 출처 : 연합뉴스
그는 우리 정부와 한전 고위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우디에 원전을 지을 때 한국의 대표 모델인 ‘APR1400’이 아닌 미국의 ‘AP1000’ 모델을 사용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APR1400은 이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사업을 통해 세계적으로 성능과 안전성을 입증받은 우리 고유의 기술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미국의 제안은 사실상 압박에 가까웠다.
이 문제는 지난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다루어졌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여러 수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APR1400 역시 미국의 기술 허가 없이는 수출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해,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인정했다.
미국의 원전 압박 / 출처 : 연합뉴스
미국이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배경에는 올해 1월 한전·한수원과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가 맺은 ‘글로벌 합의문’이 있다.
본래 APR1400 개발 당시 미국의 초기 기술을 참고했는데, 웨스팅하우스가 이를 근거로 지식재산권 소송을 걸어왔다. 이 분쟁을 마무리하며 맺은 것이 바로 이 합의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합의에 따라 한국은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부품과 관련 서비스를 사는 비용으로 약 9300억 원, 기술 사용료로 약 2500억 원을 웨스팅하우스에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애써 수주에 성공해도 매번 1조 원이 넘는 막대한 이익을 미국 기업에 넘겨줘야 하는 구조다.
미국이 한국의 건설 능력을 빌려 자국 산업을 되살리려는 속셈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원전 압박 / 출처 : 연합뉴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수십 년간 신규 원전 건설을 사실상 멈췄다.
그 결과 원전 설계 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부품을 만들고 현장에서 시공할 산업 기반, 즉 공급망이 거의 무너진 상태다.
따라서 시공 능력이 뛰어난 한국을 통해 사우디에 미국산 원전(AP1000)을 짓게 하고, 이 과정을 통해 자국의 멈춰버린 공급망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우리의 검증된 기술로 국익을 극대화할 것인지, 아니면 동맹과의 관계를 고려해 한발 물러설 것인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