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管鮑之交(관포지교)

by 산내

관중 이오는 하남성 사람으로 어려서 포숙아와 친구사이였는데, 포숙아는 귀족의 아들이었고 관중은 평민의 아들이었다.
관중은 곤궁한 까닭에 언제나 포숙아를 속였지만, 포숙아는 늘 그를 잘 대해주고 속인 일을 따지지 않았다.


이후 포숙아는 제나라 공자 소백, 관중은 공자 규를 섬기게 되었다.

소백이 제 환공으로 즉위하면서 공자 규는 노나라에서 죽임을 당했고, 관중은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포숙아의 천거로 관중은 제 환공에 발탁되어 국정을 맡게 되었다.

제 환공이 천하의 패자가 되어 제후들과 아홉 번 회맹 하는 구합 제후와 단번에 천하를 바로잡는 일광천하를 이룬 것은 전적으로 관중의 지모 덕분이다.


훗날 관중은 이 같이 술회했다.

“내가 빈궁할 때 포숙아와 장사를 한 적이 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이 차지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욕심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을 포숙아를 대신해서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해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이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섰다가 세 번 모두 군주에게 내쫓긴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불초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에 나는 세 번 출전하여 세 번 모두 달아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보위를 놓고 다투다가 폐사했을 때 소홀은 자진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을 당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후안무치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사적인 의리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나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이고,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


이리하여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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