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소녀의 도망, 그리고 그녀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공기가 서서히 뜨거워지며 내 가슴을 조여오던 19살의 초여름날, 나는 끝내 학교에서 도망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바깥의 뜨겁고 묵직했던 공기와 달리, 불이 꺼진 텅 빈 교실은 이상할 정도로 서늘했다. 그 안에서 나는 내 사물함 속에 무자비하게 방치되고 있던 모든 짐과 마음들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시험지와 유인물, 알록달록한 필기들이 남아 있는 종이. 내가 들인 시간의 잔해들은 손끝에서 얇게 떨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조리 찢겨 바닥에 흩어졌다.
‘이제 이 학교에 내 자리는 없어. 이제 이곳에는 내가 남겨놓은 마음도 없어.’
그렇게 되뇌이는 동안 눈물이 눈동자의 끝에 매달려 흔들렸고, 흐르기 직전의 그 순간을 붙잡은 채 나는 낡은 가방을 메고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 복도를 뛰어내려 가는 동안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사물함을 비우고, 종이들을 찢어버리고, 그 공간에 남아있던 내 흔적과 마음까지 하나같이 비워냈다는 사실이 묘한 해방감, 잠시나마 자유의 가장자리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교실을 뛰쳐나온 어제의 일이 마치 내 삶에서 단 한순간도 존재한 적이 없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출입증을 센서에 찍고 있었다.
센서에서 울리는 짧은 ‘삑’ 소리와 함께, 나는 남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여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내가 학교로부터 도망쳤다고 믿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출입증을 찍는 순간, 마치 스스로가 교도소의 문을 밀고 들어가는 죄수처럼 느껴지곤 했다. ‘명덕외국어고등학교’라는 각인이 새겨진 교문을 지나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본관 건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잔디밭과 급식실, 그리고 크고 작은 건물들을 가로질러야 한다. 용도는 기숙사, 면학실, 체육관처럼 각기 다르지만 모두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외형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건물의 정면을 바라보면, 네모난 벽면 위에 네모난 창문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나란히 선 창틀들은 줄을 맞춘 병사들처럼 조금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간격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마치 건물 자체가 보이지 않는 '질서'를 내 몸에 강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본관의 입구에 도착하면 출입증을 센서에 찍어야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출입증을 센서에 찍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고, 심지어 나올 때조차 다시 한번 출입증이 필요하다. 표면적으로는 이 반복되는 확인의 과정이 우리들의 안전을 위한 절차처럼 보였으나, 나는 늘 그 문턱을 지나면서 왠지 모를 불쾌함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마침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똑같은 표정으로 각자의 교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학생들에게 입혀진 똑같은 교복은 단순한 복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복은 학생들의 개별성을 지우고 동일한 몸을 만들어내는 도구와 다름없었다. 치마의 길이가 허용 범위를 벗어나거나 넥타이를 매지 않았을 때 학생들은 곧바로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자율성이 사라진 채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배식받도록 짜여 있는 학교라는 공간은 점차 내게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흘러오는 바람조차 이곳의 고요한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못할 것만 같이.
그러나 학교의 통제는 건물의 모양이나 교복처럼 눈에 보이는 장치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더 교묘한 규율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식으로 작동했고, 나는 매일같이 울리던 종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실감했다. 종이 울리는 순간, 교실의 공기는 일시에 뒤집힌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은 학생들을 모두 각자의 자리로 끌어 앉히고 그들을 순식간에 침묵 속으로 밀어 넣었다. 반대로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의 소음과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우리의 행동은 어느새 자동화되었고, 종소리는 직접적인 명령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규율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비가시적인 권력에 가까웠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생들 개개인의 존재 가치가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숫자로 측정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숫자는 어떤 이에게는 우월감이라는 갑옷을 씌워주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낙오자’의 낙인을 새겨 넣어 버렸다. 학생들은 서로를 숫자로 평가하기 시작했으며, 누군가는 위로 올라갔고 누군가는 밑으로 밀려났다. 나는 점점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타인이 나를 그저 하나의 수치로만 바라보고, 그 숫자가 나의 모든 가능성과 한계를 대신 말하려 들 때마다 나는 마치 내 존재 전체가 외부의 기준에 압착되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성적이라는 체계가 그저 단순한 평가 방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나를 서열 속 어딘가에 고정시키려고 하는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폭력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나의 존재를 숫자가 아닌 나 그 자체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뛰쳐나온 것이다. 통제와 감시와 억압과 낙인과 폭력의 모든 결박으로부터.
하지만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교실을 뛰쳐나온 어제의 일이 마치 내 삶에서 단 한순간도 존재한 적이 없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출입증을 센서에 찍고 있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출입증이 센서에 닿으며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는 순간, 수백 번은 들었을 그 일상적인 소리가 그날따라 낯설게 들리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스쳐 지나갔고, 그 이질감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만족감’이 남아 있었다. 그 만족감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출입증을 찍는 행위는 분명 나를 억압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일종의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성적이라는 낙인이 부여하는 폭력을 그 누구보다 혐오했고, 그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마침내 나 역시 낙오자라는 표식을 영원히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학교라는 세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명덕외고의 구성원’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자격, ‘특목고등학교의 구성원’이라는 내가 은밀하게 붙들고 있던 우월감의 근거 또한 함께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모순적이고 기묘한 욕망이 나를 끝내 도망가지 못하게 만든 셈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고 믿었고, 학교라는 감옥이 그러한 나를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감옥을 새로 짓고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 문을 닫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선택된 집단’에 남아있기 위해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채 매일같이 출입증을 찍고 그 세계로 들어가는 일을 반복했던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를 그 안에 다시 들여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끝내,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자발적 죄수’가 되어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