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의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가?
어떤 철학자는 인간이 도구를 만드는 존재(Homo Faber)라고 했고, 다른 이는 생각하는 존재(Homo Sapiens)라 규정했습니다.
노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이성적 사유로 세계를 이해한다는 믿음은 오랫동안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규정하는 잣대였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습니다. 손에 잡히는 도구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세상을 움직이고,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은 희미해졌습니다.
이제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할까요?
- 어느 한 언어모델의 답변 중에서
나는 요즘 한 젊은이의 삶을 상상하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낡은 관념들과 새로운 시대의 충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히 하는 일 없이 지낸다. 군대는 저체중으로 공익 판정을 받았는데, 이마저도 운 좋게 업체 측의 양해를 구해 출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의 세상은 대부분 침대 위에서 펼쳐진다. 노트북을 켜고, 화면 속에서 이미지를 보고 라벨을 붙이는 식의 '인터넷 노가다'로 최소한의 돈을 번다. 겉으로만 보면 꽤나 괜찮아 보인다. 답답한 출퇴근길을 겪을 필요도 없고, 억지로 불편한 사람들과 부대낄 일도 없다.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에 맞춰 일하고 돈을 번다니, 이 사회에서 압박감을 느끼는 어떤 이들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조건이다. 사회의 의무(군 복무)마저 이런 기막힌 형태로 대체했으니, 어찌 보면 그는 우리 시대의 변화에 가장 영리하게, 혹은 가장 운 좋게 적응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상 속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편안함 속에서 권태와 고립감, 그리고 깊은 정체감을 느낀다. 친구들의 번듯해 보이는 사회생활이나 학업 성취를 SNS로 접할 때면 '현타'가 오고, 자신만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멈춰선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는 자신이 하는 온라인 라벨링 작업이 친구들이 대학에서 배우고, 군대에서 구르고, 직장에서 보고서를 쓰는 '활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느낀다. 자신의 노동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하기 어렵고, 그 안에서 어떤 성장이나 관계가 형성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여기서 나는 우리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근대적 노예주의' 혹은 '낡은 생산성 논리'의 그림자를 본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가치나 노동의 의미를 '정해진 시간/장소에 출근하여', '가시적이고 정량화 가능한 성과를 내고', '사회 조직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한정 지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잣대로 볼 때, 침대 위에서 디지털로 일하는 그의 삶은 쉽게 '나태', '비생산적', '정상 궤도 이탈' 등으로 매도되기 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온라인 노동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일 수 있다. 물리적 제약을 넘어 디지털 공간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 말이다.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 시대에 적응하며 생존하고 있는데, 단지 그 방식이 과거의 산업 시대적 노동관이나 가시적인 생산성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부정하고, 사회로부터도 온전히 긍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삶은 다양한 삶의 형태를 포용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그런 그이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과연 '그이'에게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나 역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며,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려 애쓴다. 어쩌면 나 또한 내면에 깊숙이 뿌리내린 근대적 관념과 생산성 논리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가치를 그 틀 안에서만 찾으려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닐까. 침대 위에서 디지털 노가다를 하는 그에게서 '고립'과 '정체'를 보는 나의 시선 안에도, 어쩌면 내가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 혹은 내가 애써 외면하려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투사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그가 겪어보지 못한 '불편한 경험'(일반적인 사회생활의 어려움, 고된 군 복무 등)을 그리워하며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을 상상한다.
나 역시 내가 발을 들여놓은 다른 길,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난 삶의 형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거나 긍정하지 못한 채 나 스스로를 부정의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이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물리적 환경이나 노동 방식과 다르게 사는 것을 넘어, 내 안의 낡은 관념과 생산성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나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사회의 잣대가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정의하고, 타인의 삶은 물론 나의 삶 역시 그 고유한 형태대로 긍정하는 연습. 그리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의미 있는 연결과 능동적인 몰입을 찾아가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그이'가 상징하는 정체된 상태, 그리고 나 역시 잠식되어버린 외면적 기준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다운 시대를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깊은 밤 침대맡에서 나는 생각한다.
May 9.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