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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리 Apr 26. 2024

엄마의 장애등급신청

선천성 시력장애를 가진 엄마의 79년만의 장애인 등록신청

사진출처 : 핀테레스트



나의 부모님은 두 분다 장애를 가지고 계신다.

아버지는 후천성, 어머니는 선천성.


아버지께서는 39년생으로 우리 아들이

'할아버지는 살아계신 역사 교과서' 라고 할 만큼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견디어 오셨다.

그 중에서도 우리 모두가 절대 잊지 못할 한국전쟁으로

다리를 크게 다치시어 지체장애등급을 받게 되셨다.

불행중 다행으로 거동에 문제는 없지만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리셨다.

나라가 안정이 되고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들이 만들어지면서

아버지께서는 장애등급신청을 하시어 오래전부터 장애인혜택을 받고 계신다.

완전 중증은 아니시기에 큰 혜택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 왔다.


아버지와 반대로,

어머니는 태어나면서 부터 한 쪽눈이 보이지 않으신다.

명암은 어렴풋이 느끼시지만 물체를 전혀 구분하시지 못하신다.

말 그대로 선천성 장애를 가지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는 79세가 되신 올해까지도 장애인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셨다.

이유는 단 하나, 창피하니까...


두 분의 어린시절부터 녹록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보릿고개시기를 혹독하게 지나오면서 우리집 또한 역뒷골목 단칸방도

겨우 얻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었다.

그 어려움은 내가 성장하여 벌이가 시작될 때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소소하게 주어지는 장애인 혜택이 크게 감사하다 느껴지는 나이로 성장하니

'창피하다고' 장애등록을 하지 않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조금이나마 우리 가족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해도 되잖아 라는 생각...


하지만 그 생각이 이렇게 글을 적는 와중에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너무 부끄럽고 죄스러운 생각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이 조금씩 사회를 만나 경험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니 깨닫게 되었다.


엄마의 동공은 검정색도 아니고 갈색도 아닌 파란색이다.

누가 봐도 눈에 확 띄는 파란색.

그렇다보니 엄마는 늘 진한색 렌즈를 넣은 안경을 착용하셨다.

내가 만난 엄마는 이미 어른이 되어 사회속에 섞여 있는 성인이었고,

나는 그런 엄마가 어린 시절 겪었을 수많은 불편한 시선과 말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너는 왜 머리카락이 꼬불꼬불해?"

"너는 왜 귀가 짝짝이야?"

등등 눈에 보이는 대로 가감없이 궁금증을 쏟아 내는 악의 없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부터

아직 타인의 상처를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필터없이 내뱉는 놀림들이

얼마나 엄마의 마음에 상처를 내었을지 감히 상상도 수 없다.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얻게 된 아버지의 장애와는 달리,

'남과 달리' 태어난 엄마의 장애는 그렇게 늘 '놀림' 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도 마치지 못하시고 학교를 그만두셨다.

6남매의 첫째에 딸을 가기싫어하는 학교에 억지로 보낼리도 만무한 시대였기에

그렇게 엄마는 지독하게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 상황과 마음을 어찌 100프로 이해했다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게 전해지는 무거운 마음의 무게를 안고 조용히 엄마를 이해하는 뿐.




그렇게 엄마의 시력장애 등록은 평생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10여년전 치매판정을 받으시고 최근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시면서

당뇨합병증으로 신부전까지 오니, 결국은 장애인등록까지 고려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미 판단력을 상실하셨고, 좋고 나쁨의 표현도 자연스럽지 못하신 상황이시라,

고민끝에 간략하게만 말씀드리고 장애인등록을 진행했다.

그리고 한달도 지나지 않아 경증장애인 판정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전화를 받고나서 나는 한참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금기를 깬 아이처럼 가슴이 튀어나올듯 뛰기도 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의 그물이 얽히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엄마방 CCTV 를 켜서 화면에 비치는 엄마를 찾았다.

언제나처럼 이불을 덥고 누워계시는 엄마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 미안...'

마치 엄마의 비밀을 만천하에 공지한 듯한 기분이랄까...

마치 지키고 싶은 보물을 내가 빼앗은 기분이랄까...

딱 집어 어떤 부분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죄책감과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비밀을 내어주신, 보물을 내어주신 엄마의 연약함에 대한 애처로움이 겹쳐져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결과가 발표나고 2주가 지났다.

그 사이 행정복지센터로 부터 2번의 전화가 왔다.

장애인등록카드 신청도 해야하고, 제출한 서류도 찾아가라고...

하지만 나는 그 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아니 피하고 있다.

그러면 안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날 CCTV에 비친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이

자꾸만 나의 발목을 잡는다.

앞서 생긴 죄책감 또한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채 말이다.

어쩌면 그 동안 엄마의 상처받은 마음을 알면서도 단 한번도 그 마음을

보듬어 주려는 생각은 못하고 지켜만 봐온 방관자였던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아닐까...


이제는 지금의 방식으로 엄마를 안아줘야 할 때인것 같다.

장애에 대해 바뀐 사회 인식과 더불어,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장애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알리는 것이라고 꼭 알려 드려야 겠다.

엄마를 힘들게 기억들을 지금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덮어주도록 해야 겠다.

이해하시지 못한다는 섣부른 판단으로 생략한 자세한 설득을,

따뜻한 공감이 담긴 설명으로 바꾸어 말씀 드리며 안아 드려야 겠다.

이제는 딸래미가 늘 곁에서 지켜 줄 거라는 말도 꼭 잊지 않고 말이다.

너무 좋아하시는 단감을 손에 쥐어 드리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지!






Gina SJ Yi (지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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