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교단일기] ‘세종혁신학교, 그 이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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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학교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밀물이 운동장까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고 나면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낙지가 철봉에 척 달라붙어 있더라는 농담이 통할 정도로 바다와 가까운 학교였다. 그 학교는 생활 근거지와 꽤나 떨어져 통근이 어려웠다. 그래서 관사 생활을 했는데 나와 같은 처지인 선생님이 절반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들 중 한 명과 저녁이 되면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그 동료 선생님은 식물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그때 마다 길가에 있는 식물들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그 흔한 질경이, 쇠뜨기, 소리쟁이, 귀리. 달개비… 책 속에 있던 이름들을 길가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풀이 있는 길을 걸을 때면 내가 알고 있는 이름들이 잘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내가 알던 모르던 간에 그 풀들의 삶은 변화가 없다. 그 자리에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주 작지만 일상의 변화가 생겼다. 혹여 아는 풀을 만나면 그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새겨본다. 동행하는 이에게 그 풀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그 풀들이 나의 풀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풀이 생명력을 가지고 온전히 살고 있으며, 또한 자연 속에서 나와 별다를 것이 없는 처지라는 동질감을 느낄 뿐이다. 이 땅에 정말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학교에서 수많은 교육정책이 생겨나고 사라졌다. 저마다 의미를 지닌 불꽃같은 교육정책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정책이라는 것이 생명을 얻기에는 애당초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혁신학교가 ‘생명력’이란 시험대에 올랐다.



‘혁신학교’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첫 번째가 ‘가죽을 벗긴다.’라는 뜻을 지난 이름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혁신이라는 강한 이름 때문이다. ‘혁신’이라고 하니 아주 급격한 변화를 해야 할 것 같고, 그 변화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는 혁신학교는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츰 그 특별한 것이 없음을 알고 의아해한다. 하지만 나중에 진짜 ‘특별한 것’을 알고 힘들어한다. 혁신학교의 철학 중에 ‘민주적 공동체’가 있다. 알고 보면 특별한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민주국가이고, 우리는 교육공동체라는 말을 늘 사용하는 익숙한 말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공동체’라는 말이 교과서에 있을 때와 현실에서 ‘실천’할 때와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여전히 ‘민주적인 회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 속에서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혁신학교는 경기도 작은 시골학교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교육청이 출범한지 2년 남짓 된 이곳 세종시에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러 곳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 자체가 생명력을 지녔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종혁신학교’는 이 땅에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 길가의 풀과는 다르다. 길가의 풀이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특별한 돌봄이 있어서가 아니라 뚫린 하늘과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땅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종혁신학교도 누군가의 특별한 보살핌만으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든든한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단단한 땅이 있어야 한다. 그 땅은 ‘특별한 것’이 없어도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시민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모이는 곳, 그 곳이 ‘세종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뿌리를 내리는 땅이다.



출처 : [세종 교단일기] ‘세종혁신학교, 그 이름의 무게’ < 세종 < 클릭충청 < 기사본문 - 굿모닝충청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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