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국이 되기까지
나는 한창 한류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 미국에서 그것을 체감하며 지냈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전형적인 미국 마트들인 코스트*, 트레이더조스, 홀푸즈 같은 곳에는 김치와 한국 라면은 항상 있고, 그외 김, 파전, 비빔밥, 갈비, 그 외 한국 화장품까지 미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90년대에 런던에서 잠깐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다녔던 지역 학교에서, ‘넌 어디서 왔니’라고 그들이 물었을 때, 나는 내가 가진 영한 사전의 세계지도를 보여주며 여기 있다고 알려줘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유학했던 2010년대는 그 세월의 차이만큼이나 달랐다.
BTS가 시카고의 대형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수백만원하는 값비싼 티켓들이 모조리 매진 됐다는 게 아닌가.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미국 십대들이었다. 보통 그런 경우, 부유한 조부모들이 사준다고 한다. 아내는 대학 교수 집에 파티하러 갔다가 그 집 딸이 팬이라서 한국 사람 왔다고 반갑게 대했다는 것이다. 교회의 중학생 친구는 자꾸만 백인 친구들이 BTS노래 가사 좀 해석해달라고, 한글 못 읽는 자기에게 와서 부탁해서 매우 곤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이 칸느에서 황금종려상을 차지했을때 나는 환호했다. 그리고 미국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감상했다. 자부심이 하늘 높이 치솟을 일이었다. 나는 이 영화만큼, 오늘날 세계속의 한국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은 남 부럽지 않게 세련되게 잘도 살고 있었지만, 그만큼 빈부격차도 심한 나라며 모두가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투쟁해야하는 나라다. 미국 사람들은 유럽이 주는 그깟 상 뭔지도 잘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할리우드 영화’ 아류로 남지 않았고 새 길을 개척했다. ‘한국인의 치열한 삶’은 세계의 많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치밀한 인간군상의 세계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단군 이래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열린 세계, 세계와 긴밀히 연결된 ‘은둔과 고요의 나라,’ 한국이다. 과거, 한국인들은 나라가 힘없고 못살아서 먹고 살려고 불법체류를 감수하고서라도 잘 사는 나라, 미국에 정착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영어 못하는 것에 대해 국민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라다. 세계에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이 구석진(?) 한반도까지 찾아오는 백인들을 보면 그저 황송해하고 감사해하며 살았다.
나가서 살다오니, 내 맘속에 있던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을 전세계에 알려야만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관념이 치유되었다. 어떤 미국인이 왜 한국으로 이민했냐는 질문에 ‘한국에는 계속해서 나아지는 미래에 대한 신뢰가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다.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의 잘사는 나라가 되고… 낮았던 국민의식도 날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나라다. 거기에 한국의 희망이 있다. 정치를 보면 절망스럽지만 그래도 시스템이 계속해서 개선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캠페인 한 번이면 매우 빠르게 변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한국인이고 한국 사회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사에서 피식민지 국가였던 나라가 끔찍한 전화를 극복하고 식민국가와 비슷하게 경쟁하는 나라가 된 사례는 거의 없다. ‘경제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추진해서 성공한 나라는 극히 드물다. 나는 그게 한국의 고유한 특징이고 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 뿐이다. 우리는 이제 ‘잘 사는 나라’라고 자랑할 수 있다. 안심할 수 있고, 여유를 누릴 수도 있다. ‘돈 버느라 오직 그것’에만 치중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돈과 무관한 형이상학적 가치, 시민의식, 도덕, 문화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속에서 우리의 자리 찾기는 우리 자신의 역량과 처지를 세계 속에서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오천년 단군이래 단일민족’은 고루한 이상이다. 세상에는 우리 말고도 더 긴 역사를 가진 나라도 많으며, 세계화 시대에 이젠 한민족 단일민족 국가라는 생각은 버려야만 하게 되었다. 다문화 다민족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무조건 우리것이 최고여, 한식이 최고여, 하던 시절도 지나가야만 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한식은 지나치게 양념이 비슷비슷하고 매운 것 투성이며, 단백질 중심의 식단도 아니라 꼭 ‘건강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세계 어느나라의 음식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 부족한 단백질 식단은 서구 사회를 통해 배워야 하고, 지나치게 염류가 많은 반찬과 국도 개량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자리’를 객관적으로 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차려입고들 다닌다. 한마디로 입성이 깨끗, 깔끔하다. 남들 눈에 좋게 보이려 애쓴다. 실용주의의 미국인들, 대학생들을 보면 잠옷바지에 후드티만 입고 수업을 간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겨울에는 모두가 시커먼 롱패딩을 입고, 다니는 차들은 거의 대부분 흰색 아니면 검정색이다. 유행하는 머리스타일을 모두가 하고 다니며, 유행하는 옷을 모두가 입고 다닌다.
인천공항을 보면 한국의 ‘첫인상’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경제자유구역 국제도시라는 송도에는 빌라촌이 아예 없다. 우리나라는 망국지경에도 경복궁을 지은 나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팬시fancy 즉, 유행에 최첨단이고 화려하고 보기 좋은 것을 사랑한다. 신라, 고려, 조선, 모두가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외화내빈’에 ‘속빈 강정,’ ‘빈수레가 요란’한 일은 아닌지, 실질적인 것의 상태가 어떤지, 인과관계와 시행착오를 통해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한국이 ‘빠르게 복제해서 따라하기’ 전략을 통해서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는 세계가 한국이라는 올망졸망하고 복잡하고 오래된 사회의 독특성에 주목해왔지만, 거기에서 더 새로운 것이 없다면 한류는 빠르게 사그라들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매우 오래 일하며, 취업에 대비된 사람들의 숫자, 대학진학률 등은 엄청 높다. 사람이 자원인 사회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기보다 일회용품 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식이 되어서는 미래가 없다. 이제까지 그래왔기에 세계 최저출산 사회가 된 것 아닌가.
미국에서 살다보니, 한국이 얼마나 특이한 나라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반도국가지만 북한에 막혀 사실상 일본 같은 ‘섬나라’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면이 각기 다른 해류의 영향을 받는 풍부한 천혜의 해산물의 나라다. 세계적인 갯벌을 가진 나라다. 그걸 몰라 간척사업을 계속했지만 이제는 김이 미국인에게는 팝콘을 대신할 건강간식이 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 과자도 해산물을 주제로 한 게 많다. 게다가 크고 작은 섬들도 많다. 섬의 나라고 갯벌의 나라다.
그만큼 또한 ‘산의 나라’이기도 하다.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계곡 골짜기들이 몇 개나 되겠는가. 셀 수가 없다. 자연히 몰려살 수 밖에 없다. 전에는 아파트가 그렇게 답답하게만 보였는데 이제는 현실적인 삶의 형태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동네 뒷산 산책’이란 것은 미국의 대평원의 많은 도시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치다. 작은 둔덕 하나 없는 곳들 말이다. 거기에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또 어떻고.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래서 우리집은 정수기 없이 수돗물을 마신다.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귀한 일이므로.
뚜렷한 한국의 사계절은 어떤가! 일년에 열달은 겨울, 여름인 시카고와 애틀랜타를 각각 살아보니, 한국의 사계절이 너무도 그립더라. 손이 많이가는 일이기는 하지만, 계절에 따라 제각기 다른 옷감, 침구류를 꺼내 사용하고 철철이 다른 패션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여름이불, 그중에서도 인견이불을 보며 한국인의 지혜에 감탄에 감탄을 하곤 한다. 연중 화창하고 온도도 24,5도를 오가면 무척 살기 좋을 것 같지만, 그 비슷한 날씨의 LA에 사는 이에게 들어보니 미칠 것만 같단다. 늘 같은 날씨니 말이다. 다만, 한국이 여름에는 아프리카보다 덥고 겨울에는 모스크바보다 춥기도 한 게 좀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
미국에서의 8년은 내게 이런 저런 생각들을 남겼다. 나의 삶의 방식과 사고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물론, 나는 미국이 곧 세계라는 생각은 주의해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이 다인종 다문화가 어우러지는 선진 사회인만큼, 우리가 유럽과 함께 참고해볼 만한 주요한 나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끊임없이 그리워했다. 고려 청자투각칠보문향로 모조품을 사가지고 나가서 거기에서 피어오르는 향연을 보며 한국을 그리워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들 한다. 나는 한국을 정말 사랑하지만, 그만큼 세계의 다른 문화의 우수성도 인정하며 사랑한다. 우리는 모두 ‘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한국을 비하하면서 미국이 잘 사는 대국이라며 사대주의 사고를 갖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미국에서 공부한 엘리트들이 가장 많이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 나는 반미도 친미도 아닌 지미, 용미주의자다. 미국을 제대로 알고 이용하자는 말이다. 자기주장이 강해야 살아남는 미국 사회인데, 외교적으로 과거 한국전쟁의 은혜를 계속 반복하며 미국이 알아서 다해주겠지, 잘해주겠지,하는 유아적, 의존적 사고는 버려져야 한다. 미국은 명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왜인지, 그래서 뭘 원하는지, 분명하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할 줄 알아야만 존중받을 수 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바보되는 게 미국 사회다. 우리는 미국을 너무 모른다. 영어만 배워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미국의 사회문화도 알면서 미국이 곧 세계의 전부가 아니고 반드시 세계최고만도 아님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나는 미국의 정치사회적 영향이 뚜렷한 21세기의 한국을 살아가는, 미국을 알게된 한 사람의 한국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