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행할까
한국은 행복하지 않은 나라다. 삶의 질 만족도가 OECD국가 38개국 중 33위라고 한다. 한국보다 만족도가 낮은 나라는 튀르키예, 콜롬비아, 그리스, 헝가리, 포르투갈 등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좀 더 행복하고,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불행하다. 만족도가 높은 나라들은 북유럽 국가들이라고 한다.
게다가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27.3명으로, 2014년 이후 최고로 상승했다고 한다. 그리고 38개국 중 1위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 자살률이 38.3명인데 반해 여성 자살률은 16.5명이라는 점이다. 이건 더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왜 불행할까?
뜻밖의 답이지만, 나는 그 원인 중 하나가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 말이다. 한국개신교는 '미국식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미국식 기독교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 즉, 기복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 중 하나인 친일파의 거두이자 개신교의 일파인 감리교인인 윤치호는 그가 수십 년간 영어로 쓴 일기에서 '미국이 부강한 이유는 바로 개신교를 믿기 때문'이라고 결론 맺는다.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대륙을 통째로 얻은 무지막지한 행운을 '하나님을 믿어 받은 축복'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가난한 이민자들 누구나 미국에서 기회를 얻어 최소한 중산층 혹은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순수히 노력의 대가라고 여긴다. 누구든 하나님을 믿으면 술 담배 도박 매춘에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살게 되고, 그 성실근면함으로 마음껏 물질적 축복을 추구하고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부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은 구약 족장 시대에나 유효한, 하나의 이야기, 신화에 불구한 것이다. 성경의 옛 저자들은 잘 되고 부유한 것을 신의 축복으로, 가난하고 불우하거나 장애가 있는 삶을 '필시 죄를 지어 벌을 받은 삶'으로 단죄했다. 그래서 구약에는 많은 위인들이 다 부자가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이 많다.
이러한 샤머니즘에 가까운 원시적 종교가 바로 미국식 기독교의 번영복음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를 누리고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못 먹고 못 사는 것은 필시 무슨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유대 사회의 거부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난해서 제물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과 함께 하다 벌거벗겨져 죽었다고 증언한다.
나는 번영복음의 한국 전도사로 유명했던 고 조 모 목사가 일요일 예배 설교에서 '예수를 믿으면 건강해지고, 부유해지고, 만사형통합니다! 누가 예수 믿어 가난하게 살아야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탄마귀의 소리입니다!'라고 떠외치는 것을 내 귀로 직접 들었다.
미국처럼 사회복지도 부자들의 자선사업에 맡기고 죽음의 무한 경쟁만을 추구하는, 양극화된 사회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미국 자신도 행복하지 않거니와, 미국 경제를 따른 일본과 한국도 양극화와 불행에 시달리고 있다.
신약성경 복음서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일년에 단 한 번,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할 때 가장 먼저 그 물에 들어가는 한 사람만 치유를 얻는다는 곳이다. 종교마저 무한경쟁의 사회에 편승해버린 이야기다. 하지만 예수가 와서 한 일은 당시 종교법이 엄금한 안식일에도 보란듯이 병자를 고쳐주며, 경쟁사회와는 아무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신의 사랑과 축복을 전해준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기존에 해오던 '종교 장사'가 안 된다. 예수의 '전복적 사고'가 위험해서 그는 불법인 종교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다.
사회가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모두가 무한경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어야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과 종교인들이다. 정치인들은 선동을 하고, 종교인들은 무한경쟁에서 더욱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십일조 내서 승리하고 부자되자고 부추긴다.
나는 종교의 참된 역할은 '현세로부터의 도피'와 '기성체제에 대한 묵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참으로 사람답게, 평화와 인간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금을 빼서 교회건축에 갖다바친다 해서, 가난해서 빚도 못 갚는데 수입의 10, 20%씩을 교회에 갖다바친다 해서, 그 보답으로 '넘치는 물질적 축복'을 받는 이는 거의 없다. 극히 일부 운이 좋아 그렇게 된 이들이 간증을 할 뿐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삶은 점점 더 가난하고 피폐해져 간다. 자신이 엄청난 걸 '갖다바쳤기에' 무조건 진리이어야만 하고 승리해야만 하는 종교열은 더욱더 불타올라, '종교중독증'으로 간다. 그때부터는 이성을 잃고 앞뒤 물불 안가리고 망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종교는 사람을 착취하고 병들게 한다. 지금 남의 나라 국기 흔들어 대는 이들의 상태가 그러하다. 사실은, 종교에 갖다바친 자신의 삶을 좀 보상해달라고, 알아봐달라는 시위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라는 소설에 보면, 모세라는 새가 나온다. 모세는 생존과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동물들 사이를 오가며 계속해서 '슈가캔디' 산에 가면 설탕과 캔디가 넘쳐나는 낙원을 만날 수 있다며 설파하고 다닌다. 슈가캔디산은 누구도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현실의 무한경쟁사회의 고통이 막중한 이에게는 '그것이라도 있어야' 하루하루 살 희망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 희망이다.
그러니, 혹 누가 슈카캔디산으로 같이 가자 하거든, 너나 가, 라고 하자. 그러고는 참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찾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