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6년간 7세대에 걸쳐 쌓아온 그랜저의 헤리티지를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한 디 올 뉴 그랜저는 곳곳에 과거의 명성과 미래를 잇는 역사적 요소를 숨겨뒀습니다. 이런 변화의 요소를 1세대 그랜저 오너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영타이머(Young-timer, 클래식카와 달리 25~35년 전 생산된 비교적 현대적 모델들) 문화를 접하고 1세대 그랜저의 매력에 빠진 나머지 구매까지 하게 된 오너를 만나 1세대부터 7세대까지 이어지는 그랜저의 헤리티지와 발전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왜 최신의 차 대신 구형 그랜저를 구매했을까요?
오너분의 나이를 감안하면 1세대 그랜저와의 접점이 거의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랜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관심만으로는 이 차를 구입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제가 어릴 때는 3, 4세대 모델이 한창일 시절이었어요. 당시에도 1세대 그랜저는 오래된 차 취급을 받았지만 저는 그때부터 너무 좋아하는 모델이었어요. 성인이 되면서 영타이머(Young-timer) 문화에 빠지게 됐는데 제 취향은 여전했어요. 8~90년대 생산된 자동차는 현 세대 자동차와 확연히 구별되는 고전적 디자인과 매력이 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그랜저의 역사적 가치와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상징성에 대해 알게 됐죠. 그랜저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본격적인 국산차 고급화 시대를 알리는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 헤리티지(Heritage)의 시작점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랜저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와 개인적 호기심이 맞물려 큰 맘 먹고 구입까지 결심하게 된 거죠.
꿈꾸던 차를 갖게 되었을 때 기쁨도 있겠지만,
막상 탔을 때 느끼게 되는 어색함이나 괴리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차를 받아서 처음 운전할 때는 기쁨과 당혹스러움이 공존했달까, 묘한 감정이었어요. 40년 전 자동차의 시트포지션부터 조향, 제동감각 등 모든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졌으니까요. 세월의 풍파를 맞은 탓도 있겠지만, 소음과 진동도 요즘 차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무척 부족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오히려 좋았습니다. 이런 차이들 때문에 그 시대의 기술 수준이나 당시 오너들의 경험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으니까요.
수동변속기라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지금이야 자동변속기가 당연시되는 시대지만, 당시는 자동변속기가 정말 드물었다고 하더라고요. 자동변속기가 적용된 차에는 ‘AUTOMATIC’이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첨단 사양이 적용됐다며 자랑할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관점에서는 고급차에 수동변속기가 말도 안 되는 조합이지만, 차와 더 진한 교감을 나눌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요. 당시 자동차의 맛을 누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자동차에서는 기본이지만, 당시에는 첨단이었던 기능들이 있습니다. 1세대 그랜저에서는 어떤 부분들일까요?
1세대 그랜저는 당시 국산차로서는 혁신적인 기능이 꽤 많아요. 기화기(Carburetor, 엔진 연소실로 연료와 공기를 일정 비율로 혼합해 분무하는 장치) 방식 엔진이 대다수였던 당시에 전자제어 연료 분사(EFI, Electronic Fuel Injection)를 적용한 엔진을 탑재했고, 크루즈 컨트롤과 오토 에어컨 같은 기능도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기술이었죠.
물론 그런 특별한 기능들 외에도 당시 고급 세단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편의 사양을 갖추고 있어요. 그랜저가 당시에 얼마나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죠.
현 세대 GN7 디 올 뉴 그랜저(이하 ‘7세대 그랜저)는 1세대를 비롯한
선대 그랜저들의 여러 디자인 요소를 이어받은 흔적이 있습니다.
두 차를 직접 놓고 봤을 때,
디자인 헤리티지가 연결되는 요소를 발견하셨나요?
시대에 따른 입지와 상징성은 다르겠지만, 그랜저는 여전히 현대차 라인업의 최상단을 차지하는 고급 세단입니다. 디자인 측면에서 ‘세련미’와 ‘고급’이라는 디자인 테마를 활용한다는 건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7세대 그랜저는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부분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과거의 그랜저가 가진 헤리티지를 존중하고 드러내는 동시에, 현대적으로 그 의미를 확장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면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측면부인 것 같아요. 1세대에서 이어받은 측면부 C필러의 오페라 글래스, 단정하면서도 무게감을 만들어내는 헤드램프에서 리어램프까지 수평으로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모두 1세대 그랜저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들이죠. 외곽 프레임이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와 플래그 타입 사이드 미러도 눈에 띄는 부분들인데, 이건 3세대 그랜저 XG로부터 이어받은 것들이고요. 1세대부터 지금까지(3세대 XG 제외) 이어지는 일자형 리어램프도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그랜저만의 디자인 헤리티지입니다.
상단의 현대 로고를 통해 트렁크를 여는 것도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공통점이에요. 1세대는 커버 역할을 겸하는 로고를 옆으로 밀어 키로 트렁크를 열고, 7세대는 마찬가지로 상단의 현대자동차 로고를 눌러 트렁크를 열 수 있거든요.
실내의 스티어링 휠도 빼놓을 수 없겠어요. 7세대 그랜저의 스티어링 휠을 보는 순간, 누구라도 1세대 그랜저를 떠올릴 정도니까요. 1세대 그랜저의 독특한 원 스포크 타입 스티어링 휠은 멋과 기능미를 잘 구현했는데, 7세대 그랜저도 1세대의 독특한 디자인을 재해석하고 더 많은 기능을 편리하게 다룰 수 있게 돼있어요. 게다가 정전식 스티어링 휠 그립 감지 시스템 같은 고급 기능까지 갖추고 있죠.
GN7 그랜저를 직접 경험해 봤을 때 과거에 비해 눈에 띄는 특징이 있을까요?
그랜저의 발전을 대변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콕 짚는다면 앞 범퍼 부분이라고 하고 싶네요.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가 갖춰야 할 최우선 조건은 ‘안전’입니다. 제조사가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인 안전에 대한 관점과 방법을 앞 범퍼에서 느낄 수 있거든요.
1세대 그랜저의 범퍼는 그릴 앞쪽으로 길게 돌출된 모습이 충격을 최대한 흡수해야 하는 범퍼의 본질에 충실한 느낌이죠. 당시 차들이 다 돌출된 범퍼를 갖추긴 했지만, 그랜저는 유독 더 돌출돼있어요. 승객을 더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부분이겠죠.
7세대 그랜저는 앞으로 돌출된 범퍼가 없어요. 대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센서들을 가지고 있죠. 물론 내부에는 충돌에 대비한 다양한 구조적 설계가 적용되어 있지만, 핵심은 더 이상 범퍼를 돌출되게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1세대 당시의 안전 철학이 ‘사고가 났을 때 안전한 차’였다면, 지금은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차’가 됐다는 걸 두 차의 범퍼가 말해주고 있어요.
그랜저의 시대적 가치와 지위도 38년 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1세대가 성공의 상징인 쇼퍼 드리븐 카였다면,
현재 그랜저는 성공이라는 이미지 위에 패밀리 세단의 역할까지
더한 것 같은데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그랜저의 시대적 가치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그랜저의 변화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 경제적 성장까지 함께 상징한다고 봐요. 말씀대로 1세대 그랜저가 특정 계층의 성공과 지위를 반영했다면, 현재의 그랜저는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이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동차의 의미와 역할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특히 실내 인테리어를 보면 이 차의 중심이 뒷자리에서 앞자리로 옮겨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1세대 그랜저의 경우 푹신함이 강조된 시트와 넓은 뒷좌석 공간, 뒷자리 전용 실내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뒷자리에 중요한 사람을 태우는 차라는 걸 알려주는 부분이죠.
7세대 그랜저는 많은 편의기능이 운전석으로 넘어왔어요. 운전자 체형에 맞춰 세밀하게 조절되는 전동식 시트와 릴렉션 시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조작 체계를 보면 이 차가 운전자 중심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안락함과 동시에 운전도 즐거울 수 있도록 승차감이 조율된 것도 7세대 그랜저의 달라진 성격을 대변하는 부분일 테고요.
오래된 차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만만찮은 일일 것 같습니다.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하시나요?
모든 올드카가 마찬가지겠지만, 1세대 그랜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점검과 세심한 관리가 필수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내외장 곳곳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복원 작업을 진행한 부분도 있고, 앞으로 복원할 예정인 곳도 많아요.
또 부품 확보가 중요해요. 엔진이나 변속기 같은 주요 부품은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고장이나 노후화가 예상되는 부품은 미리 확보해두는 것이 좋죠. 차량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원래 부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폐차장이나 전국의 부품점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동호회를 통해 인맥을 만들기고 합니다.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이긴 하지만 서서히 40여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차의 모습을 바라보면 보람이 훨씬 커요. 긴 시간과 가치를 품은 차량을 직접 운전하고 관리할 때의 기쁨은 들인 정성에 비례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돌볼 예정이예요.
추억 소환을 넘어 올드카 오너로서의 꿈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모델이
현대차에도 제법 있습니다.
예비 올드카 오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원하는 모델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준비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차량의 역사, 기술적 특성 같은 기본 배경, 유지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확보하고 현실적인 비용과 노력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차량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도전과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길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현대차 헤리티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는 올드카에 동승할 수 있는 헤리티지 시승 프로그램이 상시 운영중이거든요. 현대차의 대표 헤리티지 모델인 포니, 그랜저 등의 역사나 복원 프로젝트 등을 살피고 경험할 수 있으니 꼭 참석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랜저의 헤리티지, 아울러 현대차의 역사에 대한 애정과 통찰까지 전해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영타이머 문화의 열정적인 지지자들 덕분에 그랜저의 가치와 매력이 계속 이어지는 걸 지도 모릅니다. 앞으로의 그랜저는 또 어떻게 헤리티지를 이어나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