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④
활동을 잠시 쉬던 중 인터뷰이로 합류하게 된 “안녕 국회” 프로젝트(영상 보러 가기)에서 민경을 처음 만났다. 분주하게 인사를 나누며 질문지를 챙기는 모습을 촬영장 건너편에서 본 지 몇 달이 지나고, 나는 민경과 함께 위티의 프로젝트 운영진을 담당하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온라인 회의를 하고, 토요일 오전부터 저녁까지를 꼬박 위티 사무실에서 보내던 날들을 지나, 민경은 잠시 위티를 떠났다.
안녕 국회 프로젝트: 청년 여성 정치인과 청소년 활동가가 만나 섹슈얼리티, 스쿨미투, 주거권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눈 총선 기획.
[사진] 왼쪽부터 차례로 지혜, 유경, 녹색당 전 비례대표 후보 성지수, 경하, 민경, 하영. 지혜는 양손으로 주먹을 쥔 채 파이팅 표시를 하며 서 있음. 유경은 ‘아버지’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서 있음. 성지수는 왼손으로 ‘원래 그런 거야’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주먹을 쥔 채 파이팅 표시를 하며 앉아 있음. 경하는 왼손으로 ‘지금, 함께 말하기’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쥔 채 파이팅 표시를 하며 앉아 있음. 민경은 경하에게 기대어 오른손으로는 ‘폐쇄성’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왼손으로 주먹을 쥔 채 파이팅 표시를 하고 있음. 하영은 ‘침묵, 카르텔’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서 있음. [사진 끝]
그간 민경이 위티에 찾아오게 된 계기라거나 활동을 하며 드는 고민에 대해 종종 듣기는 했지만, 지친 가운데 겨우 나누는 조각난 이야기들 대신, 차분하고 긴 흐름의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또, 무엇보다 민경이 위티 대신 다른 선택을 하게 된 마음과 과정 역시 궁금했다. 민경은 위티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또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있을까?
많은 인터뷰에서 으레 그러하듯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가장 먼저 물었다.
민경: 간단히 말하면, 사실은 연구 목적으로 위티에 먼저 왔어. 여성 청소년 당사자들이 활동가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주목하고 싶었고, 연구 참여자를 고민할 때도 비청소년보다는 청소년 당사자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내가 페미니즘 관점도 가지고 있다보니 여성 청소년 운동을 하고 있는, 어떤 균열을 만드는 일을 살펴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위티는 스쿨미투를 계기로 창립한 단체니까, 젠더 관점이랑 청소년 인권 관점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주제겠다 싶었어.
어렵겠다는 생각은 했지. 왜냐하면 내가 경험했던 학교나 내가 여성 청소년으로서 사회를 봤던 관점을 생각해보면, 나는 뭔가 수동적으로 그 시기를 보냈거든. 근데 이 단체는 거기에 균열을 내겠다고 노력을 하고 있잖아. 그래서 적응하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겠고, 나한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겠다 하는 생각은 들었어. 그치만 정보를 많이 알지 못하던 시절에도 내가 저기에 가면 많이 배울 수 있겠다, 이 생각도 확실했던 것 같아.
처음에 적응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던 건 사실이지만, 위티에서 활동한, 그리고 활동할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우리가 항상 얘기하는 건데, 위티에 갔기 때문에 청소년 인권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해. 페미니즘 관점은 사실 위티에 가기 전부터 다른 공간에서 얘기를 했었기 때문에 막 엄청 새롭다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청소년 인권 관점을 많이 배우는 공간이었지. 우리가 했던 활동이나 우리의 관계들에 반영이 되어 있는 것들을 같이 경험하면서 익힌 느낌? 나는 위티에서 많이 배웠지.
경하: 그럼 민경은 위티가 처음 참여하거나 혹은 처음 가까이서 본 인권단체 혹은 시민단체였던 거야?
민경: 그렇지. 나는 사실 위티에 오기 전에 책자나 기사처럼 글로 남겨진 정보들을 많이 읽었고, 그래서 위티가 어떤 활동을 계속 기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고, 이렇게 프로젝트들로 연결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와서 보니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단체구나 싶었지. 계획되고 예산이 짜여진 프로젝트를 끝내는 것 외에도, 어떤 사회 이슈가 터졌을 때 바로 대응도 해야 하고, 단체에서 그동안 만들어온 담론으로 어떤 말을 공개적으로 해야 하기도 하고, 기자회견 같은 것도 하니까. 또 내부의 문화를 만드는 데, 단체의 입장을 합의하는 데 진짜 많은 시간을 쓴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어. 이게 바깥으로 드러나는 일은 아니지만 단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구나를 깨달았지. 정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 이런 행동들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지.
경하: 연구자의 입장에서 좀 더 적극적인 ‘활동가’의 위치로 이동한 건 어떻게 된 일이야?
민경: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는 정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정말 내 성향대로 얘기하자면, 난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 내 연구의 데이터를 여기서 얻는 만큼 나도 뭔가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고. 그리고 들어가서는 너무 고맙게도 여러 프로젝트들에 나를 다 끼워줬고, 나를 받아들여줬지. 같이 회의했고 같이 역할을 분담했고, 나의 의견도 물었었고. 위티는 나를 그렇게 대했고 그런 분위기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나에겐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
처음에는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뭔가 많이 알아야 될 것 같다는 압박감도 솔직히 좀 있었어. 근데 활동의 영역은 나에게는 너무 생경하고 당연히 경험이나 경력은 이 청소년 활동가들이 더 많으니 내가 충분히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압박감이 좀 많이 있었어. 그리고 또 내가 머리로는 상호호혜적인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지만, 이게 내 일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 조금 더 연구자의 위치에 있었다가, 나중에 콘돔 전시회를 하고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되면서 이게 나의 일처럼 느껴졌던 시점이 있어.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하잖아, 도대체 얘가 왜 자꾸 중학교, 고등학교 청소년들이랑 지내는지, 왜 자꾸 콘돔 얘기를 하는지… 그래서 이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걸 소개하는데, 그 때 자꾸 ‘우리’라고 얘기를 하는 거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뭐고, ‘우리’는 이런 걸 했고, 나의 ‘동료들’이… 이렇게 워딩이 바뀌는 걸 보면서, 아 이 일이 나한테 중요한 일이 됐구나 싶었어.
[사진] 회색빛 하늘색 도화지에 주황색 크레파스로 ‘예상치도 못한 방향과 새로운 가능성들로 우리 얘기가 이어질 때’라는 문구가 비스듬히 적혀 있음. 주위에는 보라색 마카로 그린 구름과 별, 하얀 크레파스로 쓰인 ‘뿌듯’, 초록 매직으로 쓰인 ‘생각을’ 등이 다양한 방향으로 적혀 있음. [사진 끝]
조금 더 지나고 나서는 좀 더 책임감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 사람이 부족하고, 자원이 부족하고, 할 일은 많고… 이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책임감을 더 느끼는 시기가 왔지. 그리고 또 이때쯤엔 아까 얘기했던 비청소년으로서, 그리고 대학원생으로서 느꼈던 압박감들이 많이 줄어들었어. 내가 여기서 실수해도 괜찮고, 좀 몰라도 괜찮고, 부족해도 괜찮고, 그럴 때 내 동료들이 그걸 채워주고 날 도와줄 거고, 이건 같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마음이 좀 생겼어. 그래서 그때야말로 내가 연구자로서 연구 참여자들을 만난 게 아니라, 그냥 되게 똑똑한, 든든한 동료들이 생긴 느낌이 들었어. 그건 진짜 예상치 못한 엄청난 변화였어.
경하: 그럼 그런 과정 속에서 민경은 민경을 활동가라고 생각했어?
민경: 위티 내부에 있었을 때는 우리 다들 그랬듯이 내가 과연 나를 활동가로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한 수많은 고민이 있었지. 그런데 활동을 더 하다 보니까 다른 단체랑 같이 일을 할 때는 내 모든 배경을 설명할 시간은 없고 그냥 위티 활동가로 가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어. 처음에 ‘저는 위티 활동가 누구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되게 어색했는데 마지막엔 그냥 했어. 내가 활동에 조금 더 시간을 쓰고 있고,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항상 그런 게 있었지. 저 상근 활동가들은 저렇게 많은 일을 하는데 나는 그만큼 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고, 그럼 내가 활동가라고 말하는 게 이 사람들의 공을 너무 쉽게 가져가는 거 아닌가 싶고. 이거 되게 어렵고 무거운 자리인데… 이런 고민들을 했었어. 활동을 끝내던 시점까지도. 근데 지나고 나서 보면, ‘아, 나 활동가로 1년 산 거 맞다’라는 생각이 들어.
경하: 오, 어떤 점에서?
민경: 생각보다 나의 2019년 09월, 10월부터 2020년 10월까지는… 위티 일에 정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은 기간이었더라고. 그 기간에 나한테 이것보다 중요한 어떤 것은 없었더라고.
경하: 그럼 민경에게 활동가라는 건 활동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사람인 거야?
민경: 그런 것 같은데? 어렵다. 음… 활동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그 마음. 그 활동과 활동을 통해 메시지를 내는 것에 내가 마음을 함께 한다, 마음을 다한다, 라는 것.
경하: 나는 내 인생에서 활동이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나를 활동가라고 말하는 게 늘 어색했어. 진심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민경: 우리는 진심이었어. 진심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있어? 내가 친하게 지냈던 위티 활동가들은 다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 내가 이거밖에 안 했는데 이걸 취해도 되나라는 검열을 많이 해. 근데 역으로, 그만큼 에너지와 시간과 노력을 쓰는 일들을 진심이 아닌, 활동을 어떤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었을까 물으면 난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보상이 명확한 일은 아니잖아. 그럼에도 사무실에 와서 주말마다, 여가 시간을 내어주고라도 매주 모인다는 것은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일 거고. 목소리를 같이 내야 한다는 그 동기에 동의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정말 와서 어떤 활동을 했고. 그러면 난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 그냥 우리가 ‘우리는 그 기간 동안 활동가였다’라고 얘기하는 연습도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지금은 내가 활동가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 같아. 이전에 위티에서 활동을 같이 했던 사람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지금 어디 가서 내가 위티 활동가라고 얘기하지는 않지. 왜냐하면 그때 느꼈던 그런 마음들을 갖지 않기로, 그런 일들을 하지 않기로 오랜 고민 후에 결정을 했기 때문에.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때 활동이 내가 온 마음을 다한 진심이 아니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야. 나는 진심이었어.
경하: 그 오랜 고민과 결정에 대해서 더 듣고 싶어.
민경: 고민 많이 했는데… 일단 체력이 너무 안 됐어, 그 때. 나는 제대로 먹고 제대로 자고 운동도 좀 하고, 내 몸과 내 마음을 돌보는 게 되게 중요한 사람인데, 그런 것들이 깨지고, 내가 내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느끼고 나서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때가 내 역량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였어. 그러니까 어쨌든 내가 기존에 책임지기로 했던 일들이 있잖아. 이 (박사) 과정을 마치는 것이라던가. 근데 내가 그것과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되게 많이 했었던 것 같아. 위티에서 했었던 일이나 위티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은 줄이고, 내가 원래 해야 했던 일들의 비중을 좀 늘리는, 그런 연습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지.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는데… 그 땐 (위티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커져버린 상태였고, 그래서 내가 적절한 일의 균형을 확실하게 만들어 갈 수 없는 상태라고 느꼈어. 그때는 책임감 같은 것들이 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시기라서, 위티에 필요한 일이 보이는데 내가 해야 하는 다른 개인적인 일 때문에 거기에 시간을 쓸 수 없다고 말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았어.
그래서 결국에는 기존에 해야 했던 일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결단을 하지 못하고 이 공간에 계속 남아있기를 선택한다면 왠지 (이 공간을) 탓하게 될 것 같았어. 그건 결국 나의 선택이고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인데, 위티가 바빠졌기 때문에 내가 원래 해야 했던 일들을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상상하면 너무 싫은 거야. 내가 엄청 좋아했던 공간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게 싫었어. 그래서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을 때 일단은 멈추고, 내 몸이라든가 나의 건강 나의 마음, 아니면 내가 원래 해야 했던 다른 많은 일들, 그런 것들을 돌봐야 위티와 다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흐지부지 이상하게 서서히 멀어지는 관계보다, 지금 나는 어떤 생각이고, 그래서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 할 수 있는 마음과 체력이 남아 있을 때.
경하: 그 마음을 전하는 거 정말 어려웠을 것 같아.
민경: 내가 1년의 기간 동안 활동을 함께 하고 싶다는 건 1년 전부터 얘기했던 바이지만, 그 상황이 막상 되니까 그동안 쌓아온 관계가 있으니까 당연히 전달하는 게 쉽지 않았지. 또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얘기를 해왔고, 이후의 업무 분장을 할 수 있게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또 그 시점이 되니까 (단체에서 큰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을 때라) 사람이 너무 필요했어. 누구라도 같이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은 상황이어서, 남아서 이걸 계속 하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떠나겠어’, ‘나는 쉬어야겠어’, '나는 이제 멈춰야겠어’라는 말을 하는 게 당연히 쉽지 않았지.
경하: 그럼 그렇게 어려운 마음으로 ‘지금은 그만’이라고 이야기 하고 떠나간 이후로 민경의 마음은 어땠어?
민경: 일단 주말이 생겨가지고 너무 좋았고. (웃음) 그동안 주말에 해야 했는데 안 했던 일들을 좀 돌보는 시간을 보냈어. 토요일 아침에 잠을 잤고. 그런 여유가 생겨나면서 그제서야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다들 얼마나 얼마나 열심히 한 거였는지 볼 수 있게 됐던 것 같아.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는데 우리 진짜 열심히 했구나. 또 한편으론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이는 것 같기는 해. 조금 더 비판적인 얘기해볼 걸 하는 생각도 들었고.
경하: 예를 들면?
민경: 위티 안에서 내가 항상 몸과 마음을 챙겨야 한다, 감정을 돌봐야 한다, 잠을 자야 한다, 우리 다 운동해야 한다, 밥 때우듯이 먹지 말고 밥 시간 정해놓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을 풀고 다시 일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난 나름대로 열심히 곳곳의 순간에 했거든. 근데 그 얘기를 조금 더 열심히 했었어야 한다는 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는 대화를 더 많이 할 걸, 이런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위티에서 했던 많은 일들이 생각보다 뭔가 빠르게 다양하게 일을 해보는 경험이 되기도 했다 싶고. 그리고 위티 정말 유연한 공간, 공동체라는 것. 왜냐하면 위티 밖으로 딱 나오니까 원래 이 세상이 어땠는지를 피부로 매일매일 느껴. 나의 나이, 나의 성별, 나의 젠더, 그런 것들을 의식해야 하는 환경이잖아. 좀 1년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을 자꾸 여기저기서 확인하니까, ‘맞다 원래 이랬었지’ 하는 마음이 좀 많이 들어, 많이.
[사진] 문서와 포스트잇, 빈 음료 잔이 놓인 테이블에 민경이 턱을 괴고 앉아 있음. 사진상 왼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 [사진 끝]
인터뷰 녹취록을 다시 읽는 동안, 위티에 ‘진심이었다’라고 말하는 민경의 말에 마음이 찡했다. 연구자로 위티에 처음 왔다가 온마음을 이곳을 쏟으며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그 말에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또 민경이 위티를 떠나고서야 비로소 과거를 돌아보고 그 때의 진실된 마음에 확신이 생긴 것 같아서 그랬다. 민경이 위티에서 함께했던 일들과 여전히 위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을 기억하며, ‘나는 진심이었어’라는 문장을 인터뷰의 제목으로 꼽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