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혼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빛의 혼합이었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가 정말로 현실고증을 잘한 게, 첫 입원 당시 내 모습이 딱 이랬다. 불 꺼진 방에서 멍하니. 창살 쳐진 창밖을 바라보던 나. 커튼도 없이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 창살을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앉아 있던 날들. 그땐 정신과만 다니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약만 잘 먹으면 나아질 줄 알았다. 잠시 쉬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이 모든 건 병의 증상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만들어진 나의 기질이 융합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주변에 어릴 적 암 투병을 한 친구가 있다. 아주 어릴 때 진단받고 한참 전에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건강을 체크하고 관리한다. 나의 외할머니는 당뇨 판정을 받으시고 수십 년째 약을 복용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다. 따지고 보면 모든 병에 완벽한 '완치'는 있을 수 없는 듯하다. 남들보다 취약했던 부분이고, 이미 병을 앓았던 부위이고, 자연스레 재발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까.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정신질환에 취약한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회복 기간도 더디고 재발 확률도 높을 것이다.
남들에 비해 유난히 약한 면이 있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을 참 많이 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저 해맑기만 한데 나 혼자 다른 세계에 동떨어진 듯해 화가 났다.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힘들 이유'가 없는 내가 한심했고 내게 '힘들어도 될'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환경이 야속했다. 청춘은 항상 빛나기만 해도 모자랄 텐데, 이런 게 청춘이라면 그냥 다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마치 저주 같기만 하던 나의 특성을 이젠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의 약한 면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알게 되어서 취약함을 잘 케어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백신의 효과와 유사하게 이다음에 다시 비슷한 일이 생기더라도 보다 빠르게 항체를 생성해 스트레스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
기존의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알아낸 내게 맞는 치료제를 통해 개별화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
언제 이성을 뿌리쳐 버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나에게도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