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살고 있어요

오랜지기와의 낡은 우정

by 권진희

오랜지기라는 단어를 마주할때마다 떠올려지는 친구가 있다. 이제는 '있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과거의 인연이 되었으나 열여덟부터 30년에 거쳐 내 마음 속의 '오랜지기'였다.

몇차례 핸드폰을 바꾸면서 연락처가 지워졌다 채워졌다를 되풀이하다 어느 순간 그 친구의 번호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낭패스러운지...

그때부터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여 그 친구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 정말 고군분투했다.

나의 마음을 아는 남편은 예전에 인사 나누었던 그 친구 남편의 흔적이라도 찾아보겠노라 며칠 밤을 계속 인스타를 뒤적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뎌 찾았어~~~내가 그 친구 인스타에 연락 달라고 남겨놨어.

이제 곧 연락 올꺼야~"

그리고는 며칠을 함께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몇십 번씩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했다.

야속하게도 며칠이 지나도 친구의 연락은 없었다.

슬쩍 포기할 마음이 들던 어느 날 아침..

남편 출근 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 때였다.

핸드폰이 울리고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라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니? 나 ☆☆이야"

너무 기다리던 친구 목소리에 너무 반가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너무 반갑다~~어찌 지냈니?"

"너 내 연락처 없니? 나는 있는데...

왜 이렇게 귀찮게 사람을 찾고 난리니?"


......수초의 침묵이 흘렀다.

내 연락처가 있었음에도 몇 년간 연락을 안 한 친구,

내가 몇 다리를 건너서라도 찾고 싶어 했음을 귀찮게라고 말하는 친구....

이 친구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내 젊은 시절 서로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 믿었고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내 가진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라 여겼는데 짝사랑이었나 보다.


"○○야~나는 너처럼 삶이 평화롭지 않단다."

뒤이은 친구의 말이 가슴에 와 꽂혔다.

너무나 사는 게 평화롭고 심심해서 친구나 찾아볼까 나선 철부지를 타박하는 듯한 친구의 말투에서는 요만큼의 반가움도 그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반복되는 연락이 귀찮아 연락을 해 온 친구는 계속해서 짜증 일색이었다.

귀밑 3센티 단발머리 시절 서울서 전학 온 새침떼기 친구와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친해져 힘든 고3 시절을 보냈다. 마음이 힘든 시기인지라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미래도 함께 그려보며 큰 위안이 되었었다.

시간이 지나 친구는 서울로 진학을 했고 나는 친구와 만날 수 있는 방학만 손꼽아 기다렸고 방학이 되면 서울로 와 여기저기를 누비며 떨어져 있던 시간의 빈자리를 채웠다.

서울 생활 20년째인 지금도 친구와 다녔던 곳곳의 좋았던 기억들은 너무나 생생해 그대로인데 친구와 나만 변했나 보다.

1999년이 끝날 때에는 큰맘 먹고 나선 첫 해외여행지인 브리즈번에서 2000년의 첫 해를 같이 보았고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고서도 몇 년에 한 번씩 보아도 늘 함께 있었던 것처럼 낯설지 않고 마음이 느껴지는 친구였는데 이 모든 게 나의 착각이었나 싶어 너무 혼란스러웠다.

뭐라고 통화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내가 여유가 생기면 또 전화할게"라는 친구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친구의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엇이 친구의 삶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그토록 다정하던 친구는 어디 가고 오랜만에 연락해서 짜증을 내는 친구만 남았을까?

나의 지나친 그리움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가?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지는 마흔의 어느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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