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에 살지만 고향은 서울이다. 간혹 사람들은 서울이 무슨 고향이냐며 웃는다. 고향이란 시냇물 흐르고 들풀 하늘거리며 기차역 있는 정감어린 풍경이 있어야 한단다.
흐음! 서울도 그런 정취가 분명 있는데! 어쨌건 내가 서울 만큼 사랑하는 공간은 빠리다. 내 생애 반을 머문 파리에서도 이따금씩 고향의 푸근함을 느낀다이젠 낯익고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빠리에 왔을 때 힘들고 마음 아린 순간들이 늘이어졌다.그때마다 내게 위안을 준 건 연륜있는 건축물과 단아한 조형물, 세느강과 아담한 돌다리, 정겨운 길들과 자그마한 정원들이었다.
아울러 나는 빠리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 인정많고 좋은 분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도 빠리에선 무례하고 도발적인 언행을 했고, 평범한 분들도 엉뜽한 행동을 무척 믾이 했다.
스마트폰 덕분에 문화수준이 높아졌지만 불과 몇해 전만 해도"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라며 놀랄 어이없는일들이 참 많았다. 어느새 추억이 된 기막히고 재미있는 사연을 연재하니 코메디 같은 실화에 함께 미소짓길 바란다.
어느 해 7월 여름이었다. 파리 리용 역에서 열한 살 남자 어린이가 사라졌다. 부모와 누나가 있었는데도 가족 중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동생이 안 보인다고 말한 누나 말에 부모는 물론 일행이 놀라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차에서 함께 내렸으니 아이가 없어진 지 20여분 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나와 아이 부모는 리용 역에 있는 안내 사무실로 뛰었다.
플랫폼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서 미로를 방불케 하는 파리 리용 역 1홀
처음에 직원은 사람 찾는 일에 역내 방송을 해 줄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나 다급한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실갱이를 하다가 없어진 사람이 열한 살 어린이란 말을 듣고는 “12세 미만 어린이라면 가능하다”며 그제야 기계 스위치를 작동하고 마이크를 내주었다.
“어린이일 경우 다른 사람보다 가족의 목소리가 훨씬 귀에 잘 들어오고 효과적이므로 엄마가 직접 말하는 편이 낫다”는 직원의 설명이었다. 아이 엄마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리용 역 안으로 들어올 때 봤던 택시 승강장 앞으로 오라고 세 번에 걸쳐 말했다.
방송을 마친 아이 엄마는 택시 승강장에서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아이 아빠는 역내 화장실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 사이에 나는 역내 파출소로 가서 신고를 한 뒤 역내 안전 요원들에게도 아이의 인상착의와 이름 그리고 내 핸드폰 번호를 건넸다.
그곳을 나온 후에도 일행은 긴장된 눈빛으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이상한 것은 리용 역 안에 아이 엄마 목소리가 여러 번 울렸는데도 아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찾았다는 연락도 없었다.
아이 가족은 13시 21분 스위스 제네바로 가는 테제베(TGV) 탑승을 포기했다. 이번엔 아이 아빠와 누나가 택시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아이 엄마와 나는 역내 파출소로 다시 가서 확인하고는 그 넓은 리용 역의 플랫폼과 아래층을 훑고 다녔다.
‘혹시 아이가 다른 택시 승강장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아래층과 연결되는 곳까지 가봤지만 위층에서 한참 떨어진 그 먼 곳에 아이가 있을 리 없었다.
아이 아빠가 생각한 것처럼 아이가 화장실을 가려다 길을 잃어버렸다면, 아이는 분명 여러 번 역내 울려 퍼진 방송을 들었을 것이고 승강장에 가 있어야 하거나 안전요원에 의해 파출소 내지는 안내 사무실에 와 있어야 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역 아래층 후미진 곳에는 노숙자들도 자리를 펴고 앉아 있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도대체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아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핸드폰을 연신 들여다봤지만 파출소고 어디에서고 소식은 없었다.
둘 다 지친 상태에서 걷는데 아이 엄마가 뜬금없이 물었다.
“저 혹시 영국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북 역이에요. 그저께 런던에서 유로스타 타고 파리에 도착했던 곳이 북 역인데요.”
“실은 우리 아이가 늘 해리포터를 만나고 싶어 했거든요.”
소설 및 영화 <해리 포터>에 영감을 준 영국 Hogwarts Castle.
현기증이 일었다. 아이 엄마 말을 듣고 안내 사무실에 가서 한 번 더 방송을 하고 나서 직원에게 공항의 관제탑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그곳은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라고 직원은 잘라 말했다.
처음엔 냉정하게 대답하던 직원은 다급해하는 나와 아이 엄마를 보고는 위치를 알려줬다. 나와 아이 엄마는 그곳으로 달려가서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는 기차를 통제 관리하는 곳이지 아이를 찾아주는 곳이 아닙니다.
문을 빼꼼히 열고는 외부인 출입이 안 된다는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책임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한참 거부하다가 직원도 지쳤는지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다시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책임자는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는 기차를 통제 관리하는 곳이지 아이를 찾아주는 곳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나는 책임자에게 지금 파리 북 역에 긴급하게 연락해서 경찰과 안전요원들에게 아이를 찾아봐 달라는 것과 매표소 직원과 북 역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도 아이의 인상착의와 이름 국적 등을 알려주고 혹시 찾으면 보호해달라고 했다.
다행히 영국으로 가는 유로스타는 비행기 탑승 조건과 같아서 매표소와 들어가는 입구가 위층 공간에 따로 있었다.
책임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리용 역에서 없어진 아이를 왜 북 역에서 찾으려 합니까?”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오! 노!”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면서 “불과 열한 살 아이가 해리포터를 만나러 영국으로 갈 생각을 한다구요? 말도 안 됩니다. 이런 일로 북 역에 연락해 줄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더욱 다급해져서 “그렇지요! 우리 생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열한 살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라니까요! 제발 신속히 연락 좀 취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는 어쩔 수 없었는지 북 역으로 연락했다. 그리곤 이미 입술이 바짝 말라 있는 나와 아이 엄마를 보고 측은했는지 직원에게 물을 가져오라 해서 마시라고 권했다.
그리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송신을 했다. 13시 전후로 출발한 테제베 안 역무원들에게 아이의 국적과 이름, 나이 그리고 인상착의를 설명하면서 객차에 혹시 이런 아이가 있으면 신속하게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힘내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봐야지요. 좋은 소식이 있길 바랍니다. 아이를 찾게 될 테니 너무 괴로워 마시고 조금 기다려보시지요.” 책임자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
잠시 후에 북 역에서 협조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달리는 기차 안 역무원들도 최선을 다 해 점검하겠다는 말을 전해 들은 뒤 나는 핸드폰 번호를 남기고는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하면서 사무실을 나왔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소식은 없었다. 아이가 없어진 지 세 시간 째였다. 이젠 리용 역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북 역에서는 경찰과 안전요원들이 역 내에 그런 아이를 찾았지만 한국인 열한 살 아이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역내 파출소에 다시 가서 확인해도 아이 소식은 없었다.
기온은 올라 30도가 넘는 여름 오후에 사라진 아이를 찾느라 기진맥진한 아이 엄마를 보다 못해 일단 그녀와 딸을 쉴 수 있도록 역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을 해 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역내 파출소 경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언해주었다.
아이가 사라진 지 다섯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규모가 큰 12구 경찰서 소속 ‘어린이 실종 특수 전담반’에서 신고를 해야 할 거라는 거였다. 아이가 길을 잃어버린 정도의 단순 사건이 아닌 듯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구나 외국인이니 대한민국 대사관에도 실종신고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실종이라니! 눈앞이 아찔하고 현기증만 일었다.
‘어린이 실종 특수 전담반’은 리용 역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아이 아빠와 나는 12구 경찰서까지 간 후에 경찰들이 안내해 주는 대로 미로 같은 곳을 통과해 담당 형사를 만났다.
두 명의 형사는 아이를 잃어버린 시점부터 시작해서 나이 성별, 생김새, 아이의 성격과 평소에 하는 생활 습관까지 세세히 물었다. 질문과 대답을 통역해 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실종되었다면 어디 가서 그 아이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이가 외국어를 합니까?”“네 영어를 한국어만큼 잘합니다.” “아이가 외향적입니까? 내성적인 편입니까? 낯선 이들에게 개방적입니까? 폐쇄적입니까?” 질문과 대답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30분가량 지났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리용 역내 파출소에서 온 전화였다.
“마담! 지금 파리 북 역에서 잃어버린 아이와 비슷한 남자아이가 나타났다고 하니 신고 접수가 끝나는 대로 북 역 2층 유로스타 티켓 판매대 6번 창구로 가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프랑스 빠리 18구 북 역 정면 입구
전화 내용을 형사에게 말하고 아이 아빠와 나는 북 역으로 향했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아이를 결국 북 역에서 일곱 시간 만에 찾게 되다니! 역으로 가면서 내내 역에서 기다린다는 아이가 우리가 찾는 아이이기를 기도하며 갔다.
리용 역 중앙 통제센터에서 이미 북 역에 연락을 취해 놓은 덕에 매표소까지 아이의 인상착의와 나이, 국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참고로 북 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서는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12세 미만의 어린이가 티켓을 구입하려 하자 직원은 아이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부드럽게 나이와 국적을 묻는 과정에서 신고 접수된 아이라고 감지해서 신속하게 연락해준 것이었다.
북 역 2층에 올라가 보니 여러 개의 유로스타 티켓 판매대 가운데 6번 창구 앞에 다리를 쭉 뻗고 책을 보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 아빠는 아이 이름을 부르며 단숨에 달려갔다. 아이는 아빠를 보고 “아빠!”라고 부르며 울먹였다.
런던 행 유로스타가 출발하는 파리 북 역.
아이 아빠는 “너 왜 여기 있는 거니?” “응, 리용 역에서 화장실에 가려다가 길을 잃어버렸어.” “너 찾는 방송 못 들었어? 여러 번 했는데……” “아니, 못 들었어.” 아이 말이 참말이건 아니건 일단 귀하디 귀한 아이를 찾았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제일 먼저 기쁜 소식을 호텔에 있는 아이 엄마에게 전했다. 파리에서 일곱 시간 이상을 이산가족이 되었던 가족은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가족은 이대로 헤어지기 섭섭하고 너무 고맙다면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아이를 찾은 기쁨을 나누고자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역시 12구에 있는 달루 라는 레스토랑에서 한 시간 가량 식사를 하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긴장이 풀린 아이는 내가 의아해했던 궁금증을 하나둘씩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데다 유난히 총명하고 한편으론 맹랑하기 그지없는 소년이었다.
11살 아이는 파리 북 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마법사들이 있는 영국으로 가고자 했다. 해리포터의 주인공처럼.
그날 리용 역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출발하는 TGV는 오후 1시 21분 기차였다. 우리가 역에 도착했을 때 시각은 12시 40분 경이고 아이는 역 입구에서 사라졌다.
아이는 아빠 뒤쪽에서 따라오던 엄마와 누나에게 입술이 부르터서 아프다며 약을 살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며 그들을 앞쪽으로 보냈다. 두 개의 짐 가방을 끄는 아빠에게는 “아빠! Hurry up(서둘러요)! Hurry up!” 하며 아빠를 채근했다. 짐 끌기에 바쁜 아빠를 뒤로 하고는 아이는 사라졌다.
리용 역사를 나온 아이는 세느 강변을 따라 하늘과 강물을 보며 걸었다. 한여름 일요일 오후라 차량도 그다지 많지 않았을 테고 강바람은 시원하게 살랑거렸을 것이다. 한참을 걷다가 아이는 전날 일행과 함께 가 봤던 시테 섬의 노트르담 대성당 앞까지 걸어갔다.
대성당 앞의 작디작은 분수(목마른 이들이 목을 축일만한 물이 나오는 곳)에서 물을 마신 후에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순진무구한 소년은 마음을 열고는 속내를 털어놓으며 기도했다.
해리 포터를 사랑한 소년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제발 마술 학교가 있는 런던에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엄마와 아빠, 누나를 1년 후에 만나게 해 주세요!
마술 지팡이를 갖게 해 주시고요,
해리포터가 다닌 마술 학교로 무사히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날만큼 자유로운 영혼에 상상력 풍부한 아이다운 기도가 아닐 수 없다. 기도 후에 소년은 다시 걸으며 멀리 소르본 대학과 고색창연한 건축물을 둘러보다가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서 북 역으로 이동할 때도 아이는 또 한 번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프랑스 빠리 18구 북 역 정면과 오른쪽엔 1900년 만들어진 지하철 입구, 엑토르 기마르 작품
“노 프렌치 (프랑스어를 못 해요!)” “노 프로블럼 (문제 없어요)!” "유로 스타 (기차를 타게 북역으로 가주세요)" "오우케이(그럴게요)"
택시 승강장에서 아이는 택시를 타고서 택시기사에게 “노 프렌치”라 말했더니 기사가 “노 프로블럼!”하더라고, 아이가 “유로스타!”라고 말하자 기사는 “오우케이!”하며 바로 데려다주더란다.
아이가 돈은 있었을까? 물론! 한국에서 푼푼이 모은 돈을 유로화로 환전한 190 유로 가량이 있었다. 아이에겐 여권이 없었지만 북 역까지 가는 동안엔 해리포터와 친구들도 만나고 마술 학교에 들어가서 기상천외한 마술도 배우며 마술 지팡이를 타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것이다.
난 그 상상력과 탁월한 모험심 그리고 실천하는 능력까지 지닌 소년을 만난 후에 심신이 피로하단 이유로 한 달 휴식기를 가졌다. 그 아이로 인해 충격과 자극 받은 탓도 있었지만 조앤 롤링이라는 작가의 힘을 생각하며 내 자신과 우리네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었다.
그때로부터 십 여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에 우연히 소년을 만났다. 아이는 청년의 모습이 되어 내 앞에 선 것이다. 더구나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데 나를 잊지 않고 다가와 인사해 준 것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예의 바르고 의젓하게 잘 자라준 해리포터를 사랑한 아이에게 감사할 뿐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겨울방학에 잠시 파리에 왔다는 그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농익은 모과 빛 조명이 일렁이는 세느 강물을 바라보며 그 아이가 부디 상상력과 재능을 잘 발휘해서 훌륭하고 좋은 인재로 우뚝 서길 바랬다.
그 겨울 날로부터 다시 십 여년이 흐른 지금, 그 청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이 세상의 꿈많은 청소년들이 멋지고 훌륭하게 꿈을 펼치며 성장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톰소여와 허클베리 핀 그리고 삐삐처럼 밝고 활발하게, 거침없이 찬란하게 세상을 날 수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