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그르렁거렸다. 덧창이 흔들리고 낙엽이 바람과 함께 허공으로 휘도는 소리가 밤새도록 귓가에 울렸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네 집처럼 내가 사는 공간도 날아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바람소리 때문에 잠 못 이룬 밤이 지나 새벽이 왔다.
아침 방송에 피레네 산맥 자락 루르드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고 탐스러운 눈송이에 탄성을 내는 것도 잠시! 이내 뉴스에서는 엄청난 눈으로 정지해버린 고속도로 상황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도 눈 내리는 풍경은 신비롭고 운치 있다. 아울러 내 그리움은 연신 내리는 눈송이만큼 가슴속에 소담스레 쌓인다.
김광균 <장곡천정> 중에서
찻집 미모사의 지붕우에
호텔의 풍속계 우에 눈이 내린다.
기울어진 포스트에 눈이 내린다.
물결치는 지붕지붕의 한끝에 들리던
먼 소음의 조수 잠 들은 뒤
물기 낀 기적만 이따금 들려오고
그 우에
낡은 필름 같은 눈이 내린다
이 길을 자꾸 가면 옛날로나 돌아갈 듯이
등불이 정다웁다
내리는 눈발이 속삭인다
옛날로 가자.
옛날로 가자.
싸락눈 흩날리는 날 / 강문정
싸락눈 흩날리는 밤
세상은 밤바다에 침몰하는 타이타닉처럼 한껏 웅성거리다
도도한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이내 질식해 버린다
몇 겁의 천을 뚫는 음산한 추위는
가슴속까지 해집어놓아 갈 길은 더욱 휑하고
광대한 우주, 이 넓은 지구 한 귀퉁이에서
어둠을 집어삼키며 걷는 이는 까맣게 그늘져 가는구나
싸락눈 흩날리다 멎은 거리가
우리네 뱃속처럼 질퍽해지듯 순수를 외치던 그날들
사위고 난 자리에 얽은 흉터만 도드라져 서러운 밤
나는 마음 시리고 아린 날, 이 시가 떠오른다.
노을 / 이름이 슬픈 시인
가자.
살기위해 자주 아프던
가슴을 두고 가자
이승에서 고아한 건
이승에 모두 내어주고
먼 길 떠나기 무거운 건
길바닥에 모두 내려놓고
그 길 어두워질 때 보이지 않게 만나던
달디 단 비밀을
그냥 두고 가자.
비 젖은 홑적삼마저 벗을까
바람막이 울타리 한 겹 더 덮어주고
오래 감춘 허물
그대로 그냥 두고
가자.
이 음산하고 추운 초겨울, 카뮈가 머물던 곳의 태양, 카뮈가 표현한 '심벌즈 같이 현란한 태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