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걷다, 바람과 햇살 사이에서

에세이

by 이만희

아침, 창밖은 아직 흐릿한 빛으로 잠겨 있다. 눈을 뜨면 몸과 마음은 여전히 잠의 잔물결 위를 떠돈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지지만, 나는 서둘러 연수 준비를 하고 활보차를 타고 서대전역으로 향한다. 차창 너머 가로수는 잠에서 덜 깬 듯 흔들리고, 바퀴 소리가 마음속 긴장을 조금씩 흔든다. 역에 도착했을 때 형님의 미소가 나를 기다린다. 그 미소는 하루의 첫 위안이자, 마음 한쪽을 가볍게 하는 작은 빛이다.

기차 안, 나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내려오면서 몸이 조금씩 깨어난다. 익산에서 내려 우동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나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창밖 논과 밭의 색이 천천히 바뀌는 풍경은, 내 마음속 시간과 겹쳐져 흘러간다. 오늘 하루,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

나주역에서 숲체원 도마뱀 선생님이 마중을 나왔다. 낯선 얼굴과의 만남은 늘 긴장을 동반하지만, 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안내는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숲체원에 들어서자 흙냄새와 나무의 향기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담당 선생님과 연구사와 인사를 나누고, ‘탄소중립’ 보드게임에 참여한다. 사소한 즐거움 속에서, 세상과 나를 조금씩 연결해보는 순간이다. 점심으로 먹은 음식의 향과 맛이 마음속 깊이 스며든다.

오후에는 차를 마시며 산림교육 특강을 듣는다. 창밖으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흩어지고, 바람이 머리칼을 스친다. 몸을 느끼고 마음을 관찰하며, 나는 내가 서 있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작은 존재임을 알아차린다. 저녁이 되자 숙소에 들어가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다음날 아침, 나무와 자연에 관한 특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교실 안 햇살이 반짝이고, 나무의 생명력과 계절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을 스친다. 점심 후 슬랩라인과 외줄타기, 다도와 건강테라피를 체험하며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함을 관찰한다.

연수의 마지막날 아침, 산책하며 짐을 정리한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만 맑다. 나무들의 흔들림과 새소리가 마음을 씻는다. 나무로 트레이를 만드는 프로그램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지만, 마음 한편에는 기차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불안이 스며든다. 다행히 서대전역에 무사히 도착해 순대국밥을 먹으며, 여행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삶은 즐거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료 선생님의 부친상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했다. 운구를 직접 들며 느낀 무게는 단순한 육체적 부담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무게였다. 갑작스런 상실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살아 있는 가족과 동료에게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죽음은 모든 것을 가볍게 만든다. 상처와 미움, 사소한 자존심도 결국 남지 않는다. 오직 살아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진심만이 남는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신춘문예에 작품을 보내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꾸준히 나 자신을 다독인다. 글 속에서 나는 나다운 삶을 발견하고, 꿈을 재확인한다. 언젠가 책을 출간하고, 작가로서, 교사로서, 의미 있는 삶을 펼치고 싶다는 희망을 마음속에 품는다.

삶은 결국 내가 머무는 자리에서 나를 만들어간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맞닿은 경험, 죽음을 마주하며 얻는 성찰, 그리고 일상 속 소소한 행복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있다. 40대 중년, 교사이자 가장으로서 나는 매일의 순간을 사유하고, 감사하며, 기록한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며, 남을 탓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그것이 중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매순간 내 가족과 학생들에게,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성실하며, 사소하지만 깊이 있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무게와 죽음의 무게를 동시에 경험하며, 나는 오늘도 나다운 삶을 걸어간다. 바람과 햇살, 나무의 흔들림과 새소리 속에서, 나는 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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