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던 중학생 시절에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정기고사를 보면 55명 중 50등 정도 했다. 내 뒤에는 운동부 아이들과 장기 결석생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실상 꼴찌였던 것이다. 또한, 영어 단어 시험에서 단 하나만 맞혀 친구들이 나를 '하나'라고 별명을 지어서 불렀다. 공부라는 것이 내 삶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러다 갑자기 실명하게 되어 일반 묵자책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가장 서러웠던 것은 제대로 공부해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본 기억도 별로 없는데, 이제 앉을 기회조차 영영 사라진 것 같았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가온 건 처음이었다.
장애인학교에 들어간 뒤 나는 미친 사람처럼 공부했다. 점자를 배우고, 안마를 익히고,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손끝으로 읽는 점자들이 신기했다. 이전에는 눈으로 보고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손끝을 통해 고스란히 머릿속에 박혔다. 나는 3년간 열심히 공부한 결과 1등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결핍이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불편하고 아팠지만, 그 안에는 분명 뭔가 다른 것이 숨어 있었다. 헬렌 켈러의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다. 그녀의 장애가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한 선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는 인생의 두 번째 막을 독서로 채우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변하고 있다. 마음이 더 깊어지고, 생각이 더 넓어지고 있다. 책 속에서 나는 다시 세상을 만난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책 속의 세상은 더 생생하다. 소리도, 냄새도, 따스함도 모두 거기 있다. 결핍이 만들어낸 빈 공간을 책이 채워준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이 채워지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결핍을 두려워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핍이야말로 진짜 성장의 씨앗이었다. 모든 게 충분했다면 나는 지금도 55명 중 50등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결핍이 나를 밀어붙였고,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답은 간단하다. 독서다. 내 안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는 것. 힘에 부치더라도 매달리는 것.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는 것.
새벽이 어둠을 뚫고 나오듯이, 희망의 빛도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책 속에 있고, 내 안에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결핍이 만들어낸 간절함이고,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용기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늦음이란 없다고. 마음만 열려 있다면 언제든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고. 책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나침반이자 평생의 동반자다.
결핍을 두려워하지 말자. 오히려 단단히 붙잡자.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가장 풍요로운 삶 앞에 서게 된다. 결핍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어둠이 아니라 새벽이다. 그리고 그 새벽은 바로 우리 손에 든 책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오늘도 희망한다. 결핍을 기회로 삼아 끝까지 책을 놓지 않는 삶을. 그런 삶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