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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Mar 06. 2024

가족 음악회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CD로 비올라 연주를 듣는다.  바이올린 보다 깊고 어두운 음색의 비올라는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매력이 있다. 여성의 저음과 같은 소리를 내는 비올라를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은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 같다고 했다. 비올라 소리는 비 오는 날 더욱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것 같다.

     

   8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의 작은 음악당에서 가족음악회가 있었다. 내 시할아버님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100주년을 기념하는 후손음악회였다. 할아버님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사시다 돌아가신 분이다. 대부분의 섬이 그렇듯이 제주도는 지금도 토속신앙이 강한 곳이다. 100년 전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할아버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님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되셨다. 할아버님이 삼대독자여서 집안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재산도 빼앗기고 친족들에게 매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많은 박해 속에서도 할아버님은 신앙을 지켰다. 생전의 할아버님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할아버님이 얼마나 경건하게 말씀을 지키며 사셨는지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자손들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100주년이 된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백 년을 기념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하거나 기념관을 만든다. 집안 어른들이 모여 의논을  시작했다. 후손들이 모여 100주년을 기념했으면 좋겠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 삼대독자였던 손이 귀한 집안에서 후손이 200명이 넘었으니 이번 기회에 장소를 빌려 모두 같이 모이는 게 좋겠다는 의견, 할아버님을 기억하며 책을 한 권 내자는 의견, 음악을 전공한 후손이 많으니 음악회를 하자는 의견 등이 나왔다. 그리고 후손음악회 쪽으로 결정되었다. 주제는 ‘믿음의 유산’으로 정해졌다.


  나는 믿음의 유산을 주제로 시를 한편 써 달라는 청을 받았다. 내가 수필을 쓰니 시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러나 시를 써 본 적이 없는 나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하다, 잘 쓰지 못하더라도 할아버님을 진실 되게 표현해 보자고 생각했다. 매일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시골예배당의 새벽종을 치시고, 잠깐의 시간만 나도 성경을 읽으시고 또 성경말씀대로만 사시려고 애썼고, 일본 식민지시대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던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경찰서 구치소에서 한 달 넘게 고초를 당하셨다는 이야기,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절제와 순결, 또 건전한 생활을 하는데 가치를 두셨다는 점들을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인생은 풀과 같다 하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하는데

   풀은 마르고 꽃은 지지만

   마르지 않고 시들지 않는 영원한 것 있네

   아주 먼 옛날

   부귀영화보다 영원한 것 찾아 나선 사람

   그 믿음 지키기 위해 멸시와 고통당했네

   영원한 것

   영원까지 있을

   오직 진리의 말씀 붙들었네

   이삭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우리 할아버지의 하나님

   우린 거룩한 자손 믿음의 유산 물려받았네

   우린 감사의 자손 미쁘게 번성한 우리

   세세손손 영원하여라

                         < 믿음의 유산>         


 

  할아버님의 증손녀사위가 이 시를 가지고 작곡을 했다. 이외에도 작곡을 전공한 증손자들이 곡을 새로 쓰거나 기존의 성가곡을 편곡하기로 하여 성악, 피아노, 오르간, 합시코드, 비올라 연주 등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음악회가 열리는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러나 음악당 안에는 친척들과 친구들로 좌석은 메워지고 정시에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첫 곡은 내가 작사한 믿음의 유산이 연주되었다. 별로 훌륭하지 못한 나의 시가 뛰어난 작곡가에 의해 아주 좋은 성가곡으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미성(美聲)의 테너가 나지막하게 부르는 노래는 아주 아름다웠다.


   모든 곡의 작곡도, 모든 연주도 다 할아버님의 후손들이 했고 관람객으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할아버님의 5대 손이 될 아기를 뱃속에 품은 비올리스트 연주는 더욱 분위기를 빛나게 했다. 비가 오는 날 비올라 소리가 좋은 것을 그날 알았다.


  나는 차 속에서 그날의 연주회 실황을 녹음한 CD를 듣는다. 그러면 더욱 마음이 촉촉이 젖는다. 이제 100주년은 지났지만 가족음악회가 2회, 3회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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