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걷혔다. 우기를 연상케 했던 장마철 날씨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태어나서 우산을 들어본 게 몇 번 안 되는 게으른 남자다. 웬만한 비는 맞아버리고 웬만하지 않은 비는 택시를 타거나 기다린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는 게 하루 종일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쯤은 내 세계에선 당연한 이치로 여겨진다. 그런 내게 이번 장마는 운이 꽤나 좋았다. 장마라 함은 몇 일, 길게는 몇 주 동안 내리 비가 와야 하지만 올해는 뜨문뜨문 꾸준히 내렸다. 이게 나에겐 대왕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거세게 내려도 조금만 기다리면 끝이었다. 물론 이 방식으로 모든 비를 피하지는 못했다. 산책을 다녀와서 침과 땀으로 흠뻑 젖은 바오를 연상시킬 만큼 젖은 적도 많았다.
한 번은 이랬다. 미국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시가를 사 왔다며 같이 펴보기나 하자 나를 불렀다. 친구가 먼저 가 있는 꼬치가 꽤나 수준급인 이자카야를 갔는데 빡빡머리의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몇 달 전쯤 마지막으로 봤던 친구는 '드레드 락'과 '콘 로우' 그 사이 애매한 기장으로 머리카락을 땋아놨었는데 갑자기 머리를 빡빡 밀고 온 게 아닌가. 전에 머리가 멋있었던 나는 그런대로 욕이 섞여있는 어색한 인사를 보내고 자리의 앉았다. 나는 마시지 않았지만 쌓이는 맥주잔만큼 친구와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은 어떤 곳인지, 미국은 정말 밤에 돌아다니기 위험한지 등 옆에서 들린다면 한 번씩 엿들어보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구 풀어놨다. 동시에 어두우면서도 눈이 아픈 조명과 처음 펴보는 강력한 시가에 마른세수를 하기 도 했다. 시가는 아무리 피워대도 길이가 잘 줄지 않을뿐더러 연무량도 더 많다. 그렇게 한참을 친구와 놀았다. 시가는 줄어가고 시간은 흘러갔다. 밖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떻게 집에 갈까 고민을 하다 그냥 맞으며 걸어가리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