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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in Jul 26. 2023

프롤로그: 비상식적인 가족

원격 육아의 시작

인생이란 끝없이 펼쳐진 갈림길.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대학 진학, 직장 선택, 결혼, 그리고 육아... 우리는 매 순간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행하며 살아간다. 마치 인생의 교차로에서 내게 꼭 맞는 길을 찾아 헤매듯, 우리는 때로는 망설이고, 때로는 확신에 차서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하게 결정해도,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로지 자신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베네딕도(아이의 세례명)를 한국에 두고 독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아이는 6개월 동안 친정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그 다음 6개월은 시부모님과 지내다 1살이 되는 해에 저희와 함께 독일(혹은 헝가리로) 합류할 예정이에요.”

내 결정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차가웠다.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야? 그 어린아이를 두고?”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간다니… 그건 불효야. 얼마나 친정엄마가 힘드실 텐데… 아니, 그런데 시댁에'도' 맡기겠다고?”


'상식'이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한 문화와 지식의 집합체. 이 '상식'이라는 것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 사회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나는 그들의 비판과 염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안전한 구석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


나는 한국, 미국, 독일을 오가며 학업과 일을 이어온 방랑자. 그리고 독일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며 생계를 꾸려 온 4년 차 직장인이다. 독일 영주권을 취득해 한국에서 독일로 완전히 삶의 터전을 옮기려 했지만,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헝가리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한 사람과 사랑에 빠졌고,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발을 들여놓았다. 독일과 헝가리를 오가며 장거리 연애와 결혼을 이어갔고, 마침내 아이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나는 육아 휴직이 잘 되어 있는 독일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3개월의 출산 휴가(Mutterschutz)와 3년까지 부모 휴직(Elternzeit)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육아 휴직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내가 이직한 지 두 달 만에 임신했다는 사실이었다. 새 회사를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출산과 육아로 장기간 휴직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IT 업계의 불안정성 또한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빅테크 기업들의 해고 바람 속에서 우리 회사도 그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한 부서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1년 뒤 내가 돌아왔을 때 내 자리가 있을지, 우리 팀이 존재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임신 기간은 그나마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법적으로 출산을 위해 반드시 휴직해야 하는 주수인 34주까지는 별다른 문제 없이 배 속의 베네딕도 덕분에 근무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디서 출산할 것인가, 누가 아이의 주 양육자가 될 것인가, 결정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한국에서 출산할 경우 장점은 많았다. 출산 시 무통주사, 산후조리원, 친정엄마의 도움까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우리에게 쿠팡이나 당근 같은 플랫폼은 신의 선물이었다. 독일에서 출산할 경우 장점은 단 하나, 아이에게 독일 시민권을 줄 수 있다는 점. 아들이었기에 독일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 가야지. 군대도 나름 괜찮아."라는 군필자인 남편의 의견을 듣고 보니 또 그럴 듯했다. 해외에 나갔을 때 한국 여권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한국에서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 양육자를 선택하는 일도 쉬워졌다. 우리 둘 다 커리어를 당장 놓고 싶지 않았고, 아이는 1세 이전에 독일의 어린이집에 갈 수 없었기에,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양가 어머님들이 가정주부로 계셔서 아이를 봐주시기 위해 포기해야 할 기회비용이 없었기에 부탁드리기가 쉬웠다. 맞벌이로 인한 경제적 이득이 컸기 때문에, 직업을 뒤로 하고 아이를 돌보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부모님이 이해해 주셨다.


육아의 기간을 각각 6개월로 나눈 이유는, 한쪽 부모님께만 완전히 의지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또한, 1년 뒤 우리가 한국을 떠나더라도 부모님들이 손주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드리고 싶었다. 양가 어머님들이 육아의 즐거움과 고충을 함께 나누며 사돈 간의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50대 중후반인 어머님들의 체력을 고려한 결정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출산 후 두 달 만에 독일로 돌아왔고, 남편은 헝가리에, 베네딕도는 한국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름만 워킹맘인 듯, 어쩌면 싱글과 다름없는 퇴근 후의 시간과 온전한 주말을 누리며 즐거워하기도, 때로는 한국에 두고 온 아이의 성장을 휴대폰 화면으로만 지켜보며 사무치는 그리움을 겪기도 한다. 휴대폰 화면 속에서 "사랑해, 보고 싶어, 베네딕도"를 외치는 엄마 대신 주 양육자인 외할머니에게 환한 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며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웃음이 또 저 안전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해 안심이 되기도 한다.


경제학의 효용 이론은 출산에 관한 여성의 시각과 의사 결정에 자주 인용된다. 출산을 통해 얻는 만족감과 그에 따르는 비용을 고려하여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출산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아이를 사랑하고, 종족 번식의 욕망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곧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이의 엄마만으로 살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커리어적 성취와 성장의 기회가 출산 후에도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와, 그 기대를 실현할 수 있도록 가족의 지원이 있었기에 나는 엄마로서의 삶을 확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보다 커리어를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일을 그만둘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며 이 독특한 가족 시스템을 함께 감당해 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요즘 부모의 진한 자식 사랑을 다 따라가지 못하는 엄마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자라나는 무던한 아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한국, 헝가리, 독일에 걸쳐 살아가는 비상식적인 가족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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