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선이 치러지기 전날, 필자는 불량 정치에 체해 신트림 내는 국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풀어 주기를 바라는 글을 본란에 쓴 바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고, 자칫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대선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어떤 심정입니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윤석열 당선인이 당선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같잖은’ 정치인들이 유발한 정치적 체증을 풀어줄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트럼프나 푸틴을 흉내 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트럼프는 민주주의 맨 앞줄에 있는 미국의 정치를 코미디로 만들어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게 했고, 러시아의 푸틴은 국민의 안녕보다는 권력욕에 빠져 국제적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거대 강국이다. 바보 대통령이든 욕망의 열차를 탄 대통령이든 그들이 갖고 있는 힘은 어마 무시하다. 그들의 결정으로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대통령이 괜히 폼 한번 잡아 보려고 어설프게 흉내 낼 수 없는, 분명한 힘의 차이가 있는 게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힘의 논리로 굴러가는 그러한 국제 정치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용당할 수 있고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주먹 센 자들의 틈새에 끼여 눈치나 보며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교활할 만큼 영리한 외교가 필요할 것인데, 윤석열 당선인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같잖은’ 주먹 자랑이나 하고 싶은 검찰 출신 인사들이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에 권력을 폭력으로 휘둘렀던 독재 대통령, 나랏돈을 빼먹으려 온갖 술수를 부렸던 수전노 대통령, 청와대에서 공주놀이나 했던 꼭두각시 대통령을 ‘모셨던’ 역사적 아픔이 있다. 또다시 윤석열 대통령이 섣부른 정치 장난질이나 하며 ‘삽질’하는 것을 앞으로 5년 동안 견뎌야 할까 봐,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속이 불편하다.
정치인들의 뻔뻔한 거짓말에 속았으면서도 우리는 또 속는다. 심지어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덩어리 말들을 뿜어 대도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우롱이나 당하지 않으면 그나마 괜찮은 ‘놈’으로 생각하고 세금 내는 것을 덜 아까워한다. 민주주의의 한계이고 모순이다.
가장 강한 창(모)과 가장 강한 방패(순)가 서로 더 강하다고 주장하는 모양새가 모순이다. 못된 정치인들은 국민과 모순 관계를 형성하고 국민을 섬기기는커녕 국민과 싸우려 한다. 그들은 국가 권력을 창으로 쓰면서 국민을 방패로 설정하고, 자기들이 더 강하니까 ‘밥은 주는 대로 먹고, 일은 시키는 대로 하라’고 강요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앞으로 5년간 어떤 정치를 보여줄지 아직은 모른다. 함부로 예단하여 그를 못되고 불량한 정치인으로 낙인찍을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가 검사직을 수행하면서 보여 준 비상식적 행태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도 버릇처럼 나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검찰의 칼로 피의자를 찍어 대는 칼잡이로서의 수완, 특히 입맛대로 골라 선택적으로 요리하는 그의 특기를 발휘해 칼 대신 창으로 국민을 요리해 보겠다는 무모하고 우매한 짓을 할까 두려워한다. 과거의 부끄러운 대통령들처럼 그가 권력욕에 심취하여 또 한 번의 흑역사를 쓴 장본인이 될까, 새 정부의 탄생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심란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현실적 모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불편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견디는 사람도 있고, 모순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은 방법은 모순을 활용하여 ‘새로운 처음’을 창조하는 일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국민성을 발휘하여 창과 방패의 지평을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가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한계와 모순 때문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우리가 시도해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창끝만 뾰족하다며 오만하지 말고, 국민의 방패도 두껍다는 것을 알고 겸손해야 한다. 혹시라도 검찰 출신 대통령이 창끝을 국민에게 돌린다면 국민이라는 방패는 더 두꺼워지고 더 강해질 것이다. 아무리 혹독하게 찍어 댄다 할지라도 견디지 못해서 뚫리는 게 아니라, 방패가 일어나 마침내 창과 칼을 집어삼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은 게 껍데기 방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