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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지 Dec 17. 2021

은퇴 후 말라위 호수에 정착하기

말라위 망고치 방문기

 말라위가 은퇴이민에 적합한 국가인가를 생각해 봤을 때 가장 염려되는 점은 열악한 보건의료환경이다. 또한 외국인의 신분으로 작은 외국인 사회에서 소외라도 당할라 치면 말년에 고립감을 느껴야 하는 고통을 맛볼 수도 있다. 사업을 한다면 "친구"가 순수하게 우정에 기반한 관계라기 보다는 금전적으로도 엮이는 관계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속내를 털어놓을 만한 친구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순한 생활 환경,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활비 등이 장점으로 꼽히기 때문에 별다른 기저질환 없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말라위에서의 은퇴생활도 꿈꿔 볼 만한 것이 아닌지 싶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죽음에 초연한 마음을 가져야 어디서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인생은 어차피 혼자다.


말라위에서 오래 산 외국인들의 삶을 보면 대부분 자식들을 영미권으로 유학을 보낸 후에도 이곳에서의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는데, 말라위를 떠난 자식들은 선진국에 자리를 잡거나 다시 말라위로 돌아와 부모의 사업을 돕는다. 은퇴할 나이가 넘어서도 계속 일하는 노인들을 보면, "아프리카에는 은퇴가 없다"는 말이 그냥 뜬구름 잡는 소리만은 아닌 듯 싶다. 말라위에서는 할일이 있지만 외국에 가면 일을 못하고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인데,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일해 가정과 재산을 일군 노인들이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길 바라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몇 천 콰차, 몇 만 콰차에 핏대를 세우는 일상이 오히려 이들로 하여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만 같다.


우연한 기회로 망고치(Mangochi) Township의 호숫가에 위치한 어느 롯지(Lodge)를 방문하게 되었다. 롯지는 현재까지 숙소 3개 동과 식당/라운지가 지어졌는데 앞으로 더 지을 예정이라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상태는 아니다. 이곳의 주인은 네덜란드인으로 UN에 근무하며 주로 분쟁국가에서 활동하는데, 은퇴 후 말라위에 자리를 잡고자 롯지를 짓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멘... 듣기만 해도 아찔한 국가에서 오래 활동한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과연 단단한 체격에서 뿜어나오는 기(氣)가 좌중을 압도한다고 해야 할까. 분쟁지역에서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역시 일은 일이라 그런지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가 그를 찾아 말라위까지 왔지만 TV에 나가기 싫어서 인터뷰도 거절했고, 책을 내라는 요청도 많았다는데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냥 자기만의 기억으로 묻어두고 싶은 모양이었다.

롯지에는 개와 고양이가 동족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개들과 함께 자란 고양이는 자기가 개라고 생각하는 지 개들과 함께 롯지 이곳 저곳을 누비며 냄새를 맡고 잔디 위를 뒹굴었다. 한 켠에는 바나나 나무도 여러 그루 있고 각종 야채를 키우는 텃밭도 보였는데 역시 말라위답게 망고나무도 지천에 있었다.

라운지는 부엌, 바(Bar)가 일자 형태로 지어졌는데 건물 내부에 연못을 조성한 것에서 뭔가 아시아의 감성이 느껴졌다. 말라위 씨클리드 중 하나인 음부나(Mbuna)가 헤엄치는 평화로운 연못 귀퉁이에서 연못물을 마시는 개와 고양이들을 보니, 나도 나중에 나만의 집을 지으면 꼭 저런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샤워실도 연못처럼 흰돌을 깔아서 만들었는데 키가 작았기 망정이지 키가 컸으면 밖에서 상반신까지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말라위 어부들이 타는 좁고 긴 카누를 선반으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였고, 발 밑에 팔레트 같은 게 있으니 사우나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샤워를 하고 있자니 옛 선조들처럼 창포라도 삶아야 하는 거 아닌지 웃음이 나왔다.

주인이 호숫가 땅을 얼마에 주고 샀는지 궁금했지만 민감한 부분인 것 같아 묻지 못했다. 해당 롯지로 이동하려면 포장된 도로에서 비포장 도로로 갈아타고 꽤 달려야 하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많은 여행자들이 케이프 맥클리어(Cape Maclear)로 향하기 때문에 이곳에 롯지를 연 것이 좋은 선택이었나 나름의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가성비 따지는 여행자만 있는 게 아니므로, 인적이 드문 비치에서 안락한 휴가를 보내려는 여행자들에게는 최적의 숙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은 휴가 때마다 틈틈히 말라위에 방문해 롯지 건축을 진행하는데, 그가 말라위에 없는 동안은 네덜란드인 청년 2명이 공사를 살피고 롯지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 청년들은 말라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주인이 완전히 은퇴하여 말라위에 정착할 때까지는 앞으로 계속 함께 일하지 않을까 싶다. 청년들이 준비한 요리와 음료를 맛보니 요리 실력이 장난이 아니라서 나는 명함도 못 내밀 처지였다. 밭에서 따서 말린 썬드라이드 토마토와 직접 만든 바질 페스토, 망고 파이, 망고 스무디는 소박했지만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요리를 어디서 따로 배웠냐고 물어보니, "그냥 평소 이렇게 먹는다"고 대답해서 한번 더 놀랐다.

주인이 직접 디자인하여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롯지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최대한 단순하게 짓되 안에는 초록빛 자연을 더 많이 채우고자 한 그의 생각이 느껴졌다. 화려한 장식이나 조형물 없이 편안한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그의 목표였으리라. 11월의 말라위, 특히 호숫가는 너무 더워서 망고 스무디 두 잔을 연거푸 마시니 혈당 상승이 걱정돼 후회가 밀려왔지만 후회도 잠시 '한 잔 더 마실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이 롯지가 정식으로 오픈하면 꼭 가서 망고 파이와 스무디를 맛 보길 바란다.

나의 미라클 모닝은 망고치에 가서도 계속 됐는데, 롯지 주변을 살펴볼 겸 부지런히 걸었다. 새벽 5시에 나가니 어김없이 사람들이 밭을 갈거나 일하러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일하는 모습으로 봐선 새벽 4시에 나온 모양이었다. 관광지라 그런지 외국인을 신기해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호숫가를 오른쪽 방향으로 따라 걸으니 한 소년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학교 갈 채비를 해야할 시간에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소년을 보니 의문이 들었지만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파 놓은 모래 구덩이가 얼른 물고기로 가득 차서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 지길 바랄 뿐이었다.


롯지 한쪽에는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매일 마을의 청년들이 동원되고 있었고, 여성들 또한 청소, 설거지 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일당 3,000콰차(=4,500원)를 준다는데, 이는 시골마을 평균 일당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근처 다른 롯지보다 일당을 많이 쳐주니 사람들은 그의 롯지에서 일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보통 공사현장은 감독자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리게 들리기 마련인데, 그의 공사현장은 별다른 잡음 없이도 다들 알아서 착착 일하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다. 주인에게 왜 말라위를 선택했냐고 물으니, 예전부터 비치(Beach)에 집을 짓고 사는 게 꿈이었는데 마침 말라위에 좋은 조건의 장소를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비치에 집을 짓고 사는 꿈을 아름다운 말라위 호수에서 실현해나가는 주인을 보며 나도 은퇴 후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나름대로는 앞으로 20년은 더 일할테니 '은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졌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은퇴생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현실로 만드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망고치 어느 작은 마을 호숫가에 위치한 이 롯지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아마 내년 상반기에는 오픈해서 많은 여행자들에게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 나중에 정식 오픈 후에는 또 다른 후기를 남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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