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만리동

by 영실

이십오년간 공덕동에서 나고 자랐다. 몇 해 전에 만들어진 경의선 숲길이며, 공덕역 근처에 몇 십억짜리 아파트들이 수두루 빽빽하다.

(내가 중학교 다닐때만 해도, 그곳엔 술집이 즐비했다. 늦은 시간에 학원이 끝나면 몸을 파는 여자들과 마주치곤 했다.)

우리 가족들이 공덕역 근처를 지날 때면, 줄곧 하시는 말씀이있다. " 그 때, 여기 땅을 샀어야 하는데." (응. 이미 못샀다.)

그 당시에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있었음에도, 사지 못했던 젊은 날의 아버지를 누가 탓하랴.

요즘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지극히 많이 느낀다. 어린 당시에, 사진으로 담아두지 못한 것에 후회를 느낀다.

우리 집은 공덕동과 만리동 사이에 위치해 있고, 할머니 댁은 만리동이다. 지금은 할머니댁에 머물고 있어서 만리동을 지나칠 경우가 더욱 많다.

그러다 문득, 사라져가는 가게들을 포착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이 동네의 산증인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애증이 깃들어 있는 가게를 소중하게 담아내고 싶어졌다.

생각만 있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대로 무덤 속에 들어가는 일이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만리동시장 입구에 위치한 "삼거리식품"부터 취재했다.

말그대로 "삼거리 식품"


- 가게 이름이 왜 삼거리 식품인지요?

-말 그래로 우리 가게 위치가 삼거리에 위치하지요. 만리시장 윗길, 서울역으로 가는길, 공덕역으로 가는길. 이렇게 세 갈래로. 그래서 삼거리 식품이지요.

사장님을 취재하는 와중에 04번 버스는 위 아래로 10번 이상을 지나쳤다.

24시간 영업합니다.


-사장님, 이 가게 여신지 얼마나 되셨는지요 ?

- 거진 60년 되었지요. 우리가 24시간 영업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한번도 문을 닫아본 적이 없어. 이곳은 족보 있는 곳이며, 정말 오래된 곳이지.

-와, 사장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문 바깥으로 부르시며 가르키시는 문을 보며) 우리는 잠금장치가 없어. 내가 열두시간, 아내가 열두시간. 원래는 어머니와 번갈아가면서 했는데 작년에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아내와 줄곧 바통터치를 하고 있지. 하하.


유리창으로 비치우는 사람들

냉장고의 유리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렇게 사장님의 유리창을 60년간 몇 만명의 사람이 지났을 것이다.

여전히 난방으로는 연탄을 떼시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찬장,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들이 많았다.

사장님도 나처럼 옛것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 평 당 억 소리가 난다는데, 아직도 이렇게 연탄 때는거 보면 우습지요? (미소를 띄우신다.)

- 하나도 우습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이런 멋에 취하는걸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옛것에 얼마나 향수를 느끼는데요. 정돈되지 않은, 그리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그 담백한 멋이 있어요 사장님 가게에는.

삶은 계란 파는 가게


향년 73세, 월남해서 국가유공자라고 하셨다.

안에 있던 명패를 황급히 꺼내어 전시해놓으시는 사장님.(먼지가 많이 끼어있었다.)

나라를 지켜주셔서, 덕분에 지금의 저희가 있는 것이라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이곳에선 삶은 계란도 판매한다. 내가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계란은 5개 잘도 나간다.


나무로 손수 만드신 돈통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돈통이다. 이전에 금고를 두었는데, 그것을 통째로 들고 달아난 사람이 여럿이 된 이후로 이렇게 만드셨다고 한다.

큰 돈은 밑에 숨기고, 자주나가는 담배와 거스름 돈이 위에 들어있다.

이런 돈통은 정말 처음 봤다. 귀찮아서 종이컵이나 휴지통에 담아두는 경우는 봤어도 직접 만드신 나무 돈통은 처음 보았다.

손재주도 많으신 사장님이시다.

사장님의 성함은?


내일은 찾아뵙고 성함을 여쭤봐야겠다. 낯선 여자애가 학생이라면서, 사라져 가는 가게들을 취재한답시고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 실로 불편하실수도 있었을텐데 흔쾌히 응해주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진은 인화해서 드리기로 했다.


- 양복, 구두점처럼 없어지는 판국이었지. 편의점이 늘어서고 그들은 우리 구멍가게, 수퍼를 위협했어. 그럼에도 24시간동안 죽고 살기로 일하며 이곳을 지켜왔구나.

-우리 수퍼의 장점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거야. 편의점보다 물건이 저렴하고, 사람의 온기와 정이 있지.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게 될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항상 친절해야 해. 특히나 이곳을 지금까지 지키면서 생활이 항상 조심스러워야 했지.

-나는 아내와 젊은 날에 제주도가 뭐고, 설악산도 한 번 가보지 못했어. 정말 열심히 살았지. 40년을 꼬박 밤새워했는데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남는 것이 있지. 내 이름으로 아파트와 가게 몇 채, 잘 키워놓은 자식들. 더 말이 필요없지.

-사장님은 젊은 날에 여행가지 못해서 하시는 후회는 따로 없으신지요?

-후회는 없어.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야. 돈이 없으면 죽도록 돈을 벌어야해. 못사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살 순 없지. 죽을 만큼 귀찮아도 해야하는게 있는 법이지. 젊은 사람들, 정말 열심히 살아야해.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혹시 앞으로는 이 가게를 몇 년 더 하실거에요?

-나랑 집사람이 고혈압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는 모아둔게 돈이니, 크루즈 여행을 다니고 싶지. 여행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는거, 그게 내가 할 일이여.

-내가 우유부단해 보여도 결의에 찬 사람이란다. "도아니면 모다."로 인생을 살아왔어. 모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네가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고 살아야해.

(사장님의 말씀 후, 나는 그의 순한 눈 뒤에 숨은 결의를 보았다. 그 단단한 무엇이 지금의 사장님을 만드셨겠지.)


냉장고에서 갓 꺼낸 바나나우유

-계속 말하니까 입이 바싹 바싹 마른다. 우리 바나나우유 반씩 노나먹자.

-기분 탓일까. 내가 먹은 바나나우유 중에 손에 꼽는다. 정말 맛있었다. 정말로.

만리동 시장 안의 사진

성미 반찬과 신발가게, 또 하나의 슈퍼.

byc 속옷 판매장

사장님 두분은 졸고 계셨다.

박리김밥

내가 먹은 김밥 중에 제일 담백하게 맛있는 김밥집이다.

새벽 5시부터 영업을 하신다.

그래서 내가 어느 날, 새볔같이 등산을 갈 때도 아주머니는 항상 같은 김밥을 말아주신다.

원래는 만리동시장, 도로변에 있었는데 어느날엔가 시장 골목 안쪽에 자리를 잡고 계신다.

여전히, 영업시간은 새벽 다섯시로 동일하게 하시면서 몇 십년 전에 먹었던 김밥 맛을 그대로, 말아주시는 아주머님. 참으로 감사하다.

만리동 시장 G마트


만리시장의 메카, G마트다. 대형 마트에 가기 전에 들르는 곳이다. 5월의 첫날, 줄무늬 수박이 보인다.

계절이 변화한다는 것은 저기 보이는 쇼핑카트에도 변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차곡히 쌓여 쌀들과 양파들은 언제나 제 자리를 지킨다.

용산 04번 버스


오르막길을 보고 생각하곤 한다. 이런 곳에 마을 버스가 없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이렇게 좁은 골목에서 버스가 맞닿으면 정말 답이 없다.

오토바이도 갓길에 주차되어 있고, 아무렴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는 곳.

마을 버스 기사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만리동의 유일한 생선집


우리 할머니는 항상 이곳에서만 생선을 구매하신다.

생선가게 사장님도 많이 나이드셨다. 어린날의 나를 기억하시지는 못하시겠지만, 지나갈적마다 나는 인사를 드린다.

이집은 고등어가 정말 괜찮다.

성우 이발관


앞서 소개했던 삼거리 수퍼 사장님과 배문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하셨다. 지금은 가게가 리모델링 된것이고, 이전 가게는 삼거리 수퍼보다 더 옛것의 느낌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 때의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그래도 여전히 식물을 좋아하시는가보다. 이곳 사장님은 이미 방송을 나와서 유명세를 탔다고 했다. 강호동과 여행도 가고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자리를 지극히 지키다보면 언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수리, 철물

가게 이름이 없었다. 빛이 들었을 때, 가게 앞에 심어진 나무와의 색과 빛자루, 그리고 대걸레의 정돈된 모습이 좋아서 촬영한 사진이다.

그 옆엔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생겼다. 무인가게다. 물건 들여놓는 사람이외에 주인이 없다.

요즘은 무인가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무섭다. 이야기하며 물건을 사는 그런 따듯함이 좋았는데.

현 시대에 어울리는 개발이라고는 하지만서도, 나는 여전히 만리동 한구석을 몇 십년간 지켜오신 사장님들이 존경스럽고,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만리동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는 삼거리수퍼 한군데만 성공했다. 다른 오래된 가게들을 두들겨, 학생인데 지금 사진 작업을 위해서 가게 상인들을 찍는 와중입니다.라는 소리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첫 수퍼에서 인연이 된 사장님께 참으로 고마웠다. 그렇다고 내 제안을 거절해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사진 찍히는게 싫을 수 있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나는, 만리동을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지켜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작은 감사를 표하고 싶을 뿐이다. 다른 건 없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사라지는 것들을 취재할 것이고, 또 만날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지, 열심히 벌어야지, 열심히 공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