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학교 근처에 도착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 탐정님.”
김후식 교장이 전화를 끊었다.
‘유강인 탐정님을 마중하러 나가야겠군.’
김교장이 생각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1층 복도를 지나서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과 파란 하늘, 넓은 운동장이 그를 맞이했다.
“휴우~!”
김교장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 손에 물건을 들고 있었다. 노란색 서류 봉투였다. 그가 봉투를 꽉 쥐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11월 늦가을답게 쌀쌀한 바람이었다.
김후식 교장이 걸음을 멈추고 15일 전 백두성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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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성이 김후식 교장과 함께 연풍 초등학교 교정을 거닐었다. 단풍이 절정을 달했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참 아름다운 교정이었다. 커다란 나무들이 붉고 노란 단풍잎을 뽐냈다. 마치 누가 더 예쁜지 자랑하는 듯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백두성이 입을 열었다.
“교장 선생님, 실로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습니다.”
김후식 교장이 씩 웃고 답했다.
“백두성 회장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모교 발전을 위해 거액을 쾌척하셔서, 그 덕분에 학교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죽더라도 학교는 계속 유지되어야지요.”
“아이고!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이렇게 정정하신데 돌아가시다니요. 백회장님은 연풍 초등학교와 함께 그 빛을 계속 발하실 겁니다.”
“하하하!”
백두성이 크게 웃었다. 눈가가 촉촉했다. 그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저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죄인입니다. 이제 그 죄의 값을 받을 때가 됐습니다.”
“죄인이라니요? 백회장님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입니다.”
“그건 다 헛소문입니다. 와전된 거죠.”
백두성이 말을 마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후식 교장이 참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두성은 이제 아주 연로했다. 그래서 마음이 어느 때보다 약해진 거 같았다. 불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김교장이 말했다.
“단풍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백회장님이 학교 다닐 때도 단풍이 아름다웠나요?”
백두성이 잠시 붉디붉은 단풍나무를 보다가 답했다.
“제가 다닐 때는 단풍나무가 없었습니다. 이곳은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허허벌판에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모집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생들을 열성적으로 가르치고 학교를 가꾸셨습니다. 그분들은 선구자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김후식 교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둘이 말없이 단풍나무를 구경했다.
그러다 백두성이 들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안에서 노란색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A4 크기였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중한 목소리였다.
“교장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반드시 들어주세요.”
“네, 말씀하세요.”
“이 봉투를 잘 간직하고 있다가 제가 달라고 하면 그때 주세요.”
“알겠습니다.”
“혹 다른 사람이 저 때문에, 교장 선생님을 찾으면 이 봉투를 건네주세요.”
“아, 물건을 맡기는 거 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죠?”
“경찰 쪽 사람일 겁니다.”
“경찰이요?”
“네, 그렇습니다. 경찰 쪽이 아니면 받은 게 없다 하고 이 봉투를 주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중요한 물건이군요.”
“그리고 봉투를 열어보지 마세요.”
“당연하죠. 그리하겠습니다.”
김후식 교장이 노란색 봉투를 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백두성이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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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기던 김후식 교장이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15일 전 만났던 백두성이 죽고 말았다. 인생무상이었다.
김교장이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학교 정문, 보안관실에서 대기하던 남자 둘이 그를 향해 걸어갔다. 둘 다 경찰관 제복을 입고 있었다.
김후식 교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딱 봐도 경호 경찰이 분명했다.
김교장이 서둘렀다.
3분 후
김후식 교장과 경찰관 두 명이 만났다. 경찰 둘 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경찰 중 한 명이 경례를 붙이고 입을 열었다. 선임 경찰이었다.
“김후식 교장 선생님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김후식 교장입니다. 어디에서 나오셨죠?”
“저희는 강원도 경찰청, 연풍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교장 선생님 신변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곧 있으면 유강인 탐정님이 오실 겁니다. 그때까지 제 곁에 계세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철저히 보호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김교장이 안도한 듯 빙그레 웃었다. 든든한 경찰이 둘이나 옆에 있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대처할 수 있었다.
경찰관 둘이 말없이 사방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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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단 밴이 2차선 도로를 따라가다가 연풍 초등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뒤이어 경찰차 두 대도 도착했다. 정찬우 형사가 지휘하는 형사들이었다.
차 세 대에서 차 문이 활짝 열리고 탐정단과 형사들이 내렸다. 유강인이 지체하지 않고 정문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척이나 빨랐다.
차 소리가 들리자, 김후식 교장이 두 눈을 크게 뜨고 학교 정문을 바라봤다.
유강인이 방금 도착한 거 같았다. 김교장이 밝은 표정으로 경호 경찰에게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이 학교에 도착한 거 같네요.”
“아, 그래요?”
선임 경찰이 정문을 살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김후식 교장에게 말했다.
“그런 거 같군요. 그건 그렇고 교장 선생님, 손에 든 건 뭐죠?”
“아, 이거요.”
김후식 교장이 노란색 봉투를 들어 올렸다. 그가 뭔가를 말하려다가 갑자기 입을 닫았다. 두 눈에 당혹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한 거 같았다.
경호 경찰의 눈빛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둘이 김교장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흰자가 번들거리며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순간! 김후식 교장이 위기를 느꼈다. 그는 합기도 고수로 많은 사람과 대련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뿜는 기를 누구보다 재빨리 간파했다.
지금 경호 경찰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누군가를 지키려는 눈빛이 아니라 해치려는 눈빛이었다. 승냥이의 눈빛이었다. 경찰 제복 속에서 악의 마음이 꿈틀거렸다.
위기감을 느낀 김교장이 서둘러 말했다.
“당신들은 누구야! 경찰이 … 경찰이 아니지?”
“흐흐흐, 이 양반 눈치가 참 빠르군. 우리가 어색했나?”
선임 경찰이 말을 마치고 날카로운 하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동료도 허연 송곳니를 드러냈다. 이는 공격 표시였다.
김후식 교장이 재빨리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합기도 6단의 실력을 발휘해야 했다.
“야아!”
갑자기 고함이 들렸다.
경호 경찰 둘이 고함을 지르고 김교장한테 덤벼들었다. 두 명이 앞뒤로 덤볐다.
아무리 고수라도 뒤에는 눈이 없었다. 앞뒤로 달려오는 적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둘은 딱 봐도 전문가 같았다.
커다란 손바닥이 김후식 교장의 등을 덮쳤다.
“악!”
김교장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러댔다.
뒤로 달려든 경호 경찰이 두 팔을 쫙 벌리더니 김후식 교장의 상체를 꽉 잡았다.
나머지 한 명이 한 손을 쭉 뻗었다. 노란색 봉투를 노렸다.
“야아!”
김교장이 순간, 기합을 넣었다. 합기도 고수답게 반격을 했다. 몸을 꽉 잡은 한 손을 두 손으로 꽉 잡더니 손목 꺾기를 시도했다. 관절 꺾기는 합기도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악!”
비명이 들렸다. 손목이 꺾인 경호 경찰이 고통을 참지 못했다.
김후식 교장이 재빨리 움직였다. 바로 업어치기를 선보였다. 상대를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쿵! 하며 경호 경찰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학교 운동장에 들어선 유강인이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네이비색 정장을 입은 한 사람이 경찰 둘과 싸우고 있었다.
경찰 한 명이 공중으로 날아가더니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뿌연 먼지가 일었다.
이제 일 대 일의 싸움이 벌어졌다.
남은 경호 경찰이 품에서 칼을 꺼냈다. 30cm 칼날이 햇빛을 받아서 번쩍거렸다. 갑자기 살상용 칼이 등장했다.
칼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무기가 없었다. 봉투 하나만 달랑 들고 있을 뿐이었다.
“안돼! 멈춰!!”
유강인이 크게 소리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한 사람이 경찰 둘과 싸웠다. 경찰 하나가 무시무시한 칼까지 쳐들었다.
내달리던 유강인이 고개를 뒤로 돌리고 크게 외쳤다.
“저건 경찰이 아니야! 정형사! 어서 제압해!!”
“알겠습니다.”
유강인 뒤에 정찬우 형사가 있었다.
정형사가 사태를 파악하고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가짜 경찰이 지금 한 사람을 해치려 했다.
시퍼런 칼날이 햇빛을 받아서 번쩍이자, 김후식 교장이 깜짝 놀랐다.
아무리 무술의 고수라고 맨손으로 칼과 대적할 수는 없었다. 그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어서 내놔! 죽기 싫으면, 널 여기서 해칠 생각은 없다.”
칼을 든 경찰이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서 노란색 봉투를 달라는 말이었다.
김교장이 급히 고개를 돌려 정문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렸다간 칼에 맞을 게 뻔했다. 살려면 봉투를 건네야 했다.
김후식 교장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들고 있는 봉투를, 칼을 든 경찰에게 건넸다.
“흐흐흐!”
노란 봉투를 받은 경찰이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바닥에서 나뒹굴었던 경찰도 몸을 일으켰다. 둘이 이제 도망치려는 듯 걸음을 옮겼을 때
“이놈들아! 이거나 먹어라!!”
김교장이 양복 주머니에서 스프레이를 꺼냈다. 칼을 든 경찰의 두 눈에 스프레이를 가차 없이 난사했다.
치~익!
“악!”
스프레이는 강력 최루가스였다. 호신용 무기였다. 스프레이 공격에 칼은 든 경찰이 주춤했다. 그때 노란색 봉투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이때다!"
김후식 교장이 이를 악물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민첩하게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진 노란색 봉투를 들더니 정문을 향해 정신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탕!
총소리가 들렸다.
정찬우 형사가 첫발, 공포탄을 허공에 발사했다. 운동장에 총소리가 들리자, 경호 경찰 둘이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서 튀어!”
둘이 학교 담벼락을 향해 달려갔다. 후문 방향이었다.
정형사와 후배 형사들이 둘을 뒤쫓았다.
“서라!”
“빨리 달려가서 잡아!!”
단풍이 아름다운 강원도 초등학교에서 난데없이 추격전이 벌어졌다.
칼날이 번쩍이고 총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리지 않은 일이었다.
거친 숨소리가 운동장에서 들렸다.
한 남자가 유강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유강인이 그 남자를 살폈다. 60살 정도로 보이는 신사였다. 네이비색 정장을 입었다. 손에 노란색 봉투를 들고 있었다. 김후식 교장이 분명했다.
“김후식 교장님!”
유강인이 크게 외쳤다. 그리고 김교장을 향해 달려갔다.
30초 후
둘이 서로 만났다. 김후식 교장이 거친 숨을 내쉬며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맞습니다. 제가 유강인입니다.”
“그렇군요. 참 다행입니다. 휴우~!”
김교장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휘청거렸다.
그는 무술의 고수였지만, 나이가 60살에 가까웠다. 갑자기 힘을 많이 쓰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무릎이 꺾이고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김후식 교장을 부축했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세요? 김교장님. 어디 다친 데는 없나요?”
김교장이 겨우 숨을 돌리고 안정을 취했다. 침을 꿀컥 삼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유강인 탐정님. 제때 오셨네요. 다행히 이걸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김후식 교장이 말을 마치고 한 손을 들었다. 손에 노란색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응?”
유강인이 노란색 봉투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한 마디로 심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김교장이 이 물건을 지키기 위해 경찰로 위장한 괴한과 사투를 벌였다. 날카로운 칼날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봉투를 지켜냈다.
노란색 봉투는 백두성이 김교장한테 맡긴 물건이 분명했다.
비밀과 관련된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