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우연은 때로 필연보다 더 극적이다.
역사의 우연은 때로 필연보다 더 극적이다.
1937년 재야학자 최남주가 월성 서쪽에서 수습했던 이름 없는 돌덩이 하나가, 80여 년의 세월을 건너 2020년 월성 해자에서 발견된 또 다른 비석 조각과 한 몸이었음이 밝혀졌다.
3차원 입체 스캔 기술로 아귀를 맞춘 두 조각은 1,600년 전 잠들었던 문장을 다시 깨워냈다. 하지만 이 기적 같은 만남은 우리에게 더욱더 미스터리를 더해주었다.
그것은 신라의 심장부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흔적이라는, 한국 고대사를 송두리째 뒤흔들 미스터리다.
낯선 글씨체는 신라 왕성을 점거한 고구려의 문장을 대변한다. 비석 조각에 새겨진 글자들은 단호하고 정연한 기세를 뿜어낸다.
공(貢), 백(白), 도(渡), 불(不), 천(天) 등 판독된 다섯 글자는 신라의 금석문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 특유의 엄정한 예서체다.
이는 중국 만주 벌판에 우뚝 선 광개토왕비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닮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비석의 재질이 경주 남산에서 채취한 화강암이라는 점이다. 즉, 고구려의 서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누군가가 신라의 땅에서, 신라의 돌을 깎아 고구려의 문장을 새겼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신라인이 훗날 이 글씨를 흉내 냈을 확률은 수백만 분의 일에 가깝다고 단언했다. 신라의 왕성 월성에 고구려의 기념비가 서 있었다는 가설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실체적 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발견이 핵탄두급이라 불리는 이유는 광개토왕비에만 기록된 5세기 고구려의 신라 남정 기록을 실물로 입증할 수 있는 단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기 400년경, 광개토왕은 5만 대군을 보내 왜군을 격퇴하고 신라를 구원하면서, 고구려군은 경주에 주둔하며 신라를 사실상 속국으로 삼았다는 내용은 오직 고구려 측의 기록인 광개토왕비에만 기록되어 왔다.
월성에서 발견된 이 비석은 광개토대왕 비에서 언급한 고구려 주둔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신라 왕궁 한복판에 세워진 고구려풍의 비석은 당시 신라가 처했던 복잡한 정치적 위상을 암시하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물론 7세기 신라가 고구려의 서풍을 수용한 결과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으나, 광개토왕비에서만 빈번히 등장하는 특정 단어들이 조합되었다는 점은 고구려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미쳤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시사한다.
비석 조각의 발견은 전해지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선명히 밝혀주거나, 당시 두 나라 사이의 활발했던 문화적 교류를 드러내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는 결국 후세의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라는 퍼즐 조각 하나를 추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승자의 기록만을 역사라 부르지만, 때로는 땅속에 묻힌 깨진 돌조각이 더 진실한 목소리를 낸다. 80년 만에 합쳐진 두 점의 비석 조각은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백제와 왜 사이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게 하는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1,600년 전 경주 남산의 바위를 쪼아 고구려의 글씨를 새기던 그 낯선 이의 손길은 이제 곧 그 뜻을 드러낼 것 같다.
조만간 열릴 전문가들의 토론회에서 이 미스터리의 실마리가 풀려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인지 자못 흥미롭다.
더 상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담겨 있습니다.
한겨레, [단독] '신라 속국화'의 특급 단서일까...경주 돌덩이에 새겨진 고구려 글씨체 (노형석 기자,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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