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폴 (Paul in the wonderland)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화학을 가르치셨다. 선생님 성함도 가물가물 하지만 화학 시간에 배운 러시아의 멘델레예프가 처음 정리한 원소 주기율표와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가 밝힌 벤젠고리 화학구조식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원소 주기율표는 세상을 이루는 모든 원소를 하나의 표에 원자량을 기준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다. 이 표 덕분에 원자들이 분자를 어떻게 이루는지 화학식으로 표현하는 기본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생물과 미생물이 이 표에 있는 원소들의 조합이라니….
원소들은 주기율표에서 주어진 성질에 따라 서로 결합하며, 화학식은 그 결합 방식을 간단히 나타낸 것이다. 전자는 원소 핵 주변에 일정한 층을 이루며 돈다. 핵과 가장 가까운 1층에는 전자 2개까지, 그다음 2층은 8개까지 전자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소금(NaCl)은 나트륨(Na)과 염소(Cl)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나트륨은 양이온이 되고 염소는 음이온이 되어 서로 결합하면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든다. 왜 나트륨은 양이온이 되고 염소는 음이온이 되는가?
주기율표 윗 쪽과 왼쪽에 번호가 있다. 윗 쪽은 Group으로 그 번호 아래의 물질들은 화학적으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왼쪽의 숫자는 전자가 원소 핵 주변을 돌 때 층(오비탈, 행성들이 태양 주변을 돌듯이)을 형성하는 규칙을 알려준다.
원소 핵에 가장 가까운 1층에는 전자 2개까지, 2층은 8개까지 전자가 위치할 수 있다. 3층은 8개, 4층은 18개 등등… 규칙이 있다. 나트륨은 주기율표상 11번으로 전자를 11개 가지고 있다. 나트륨은 전자를 1층에 2개, 2층에 8개 안정적으로 가지고 마지막으로 3층에 1개를 불완전하게 가지고 있다.
3층이 안정적인 구조가 되기 위해 7개를 더 가져오는 것보다 3층의 전자를 나누어주어 2층까지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쪽이 노력이 적게 들 것이다. 그래서 나트륨과 상하로 같은 줄에 있는 원소들은 주로 마지막 층에 한 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 전자를 버리려는 성질을 가진다. 전자를 버림으로써 양자 수와 균형이 깨지면서 전기적으로 양이온이 된다.
반면 염소(Cl)는 17번으로 전자를 1층에 2개, 2층에 8개, 3층에 7개를 갖고 있다. 3층이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1개의 전자가 더 있으면 된다. 그래서 이 group은 주로 전자를 하나 받아와서 음이온이 되는 성질이 있다. 전자를 하나 버리려는 원소(Na, 나트륨)와 받으려는 원소(Cl, 염소)가 만나서 찰떡궁합이고 소금이 된다.
이렇게 원소번호, 전자의 오비탈등을 고려해서 전자를 더하고 빼서 균형을 잡는 것이 화학식이다. 화학식은 구성 원소의 개수를 정확히 계산해야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 과정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화학식 계산이 수학보다도 어렵게 느껴졌다.
위의 설명 읽으면서 이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흥미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자신감을 서서히 잃어 가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억을 만들어 주셨다. 바로 내 인생을 결정한 그 한마디를 선생님께서 하셨다.
“화학식에서 계산은 대강 철저하게 하는 거야!”
대강 철저하게?.... 계산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철저하다와 연결된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께서 철저 앞에 붙인 ‘대강’이라는 단어에서 용기가 얻었다. 계산을 완벽하게 하려다 보면 오히려 부담이 커지지만, 흐름을 이해하고 감각적으로 접근하면 더 쉽게 익힐 수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화학식을 바라보는 내 태도도 조금은 가벼워졌던 것 같다.
케쿨레가 벤젠 분자의 구조를 밝혀낸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당시 과학자들은 벤젠이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구조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케쿨레도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차를 타고 가다 깜빡 졸았는데, 꿈속에서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도는 모습을 보았다. 잠에서 깬 그는 문득 ‘벤젠도 이런 식으로 원자들이 고리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 연구를 통해 벤젠이 육각형의 고리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유기화학의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방향족 화합물(벤젠과 그 유도체들)의 구조가 명확해지면서, 염료, 플라스틱, 의약품, 향료 등 다양한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화학은 일상생활에 깊이 자리 잡았고, 케쿨레의 꿈에서 시작된 작은 깨달음이 현대 화학 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선생님은 케쿨레의 예를 들며, 수학적인 지식보다도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는 시각, 어쩌면 조금은 삐딱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 화학을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셨다. 처음부터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직관적인 접근이 더 유효할 수도 있는 학문이라고.
나는 이 학문이 나와 잘 맞는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나는 계산하는 수학 소위 말하는 대수학은 흥미가 없었다. 물리나 수학에서 수식을 보고 있으면 졸음이 쏟아졌다. 대신 도형으로 문제를 푸는 기하학은 매우 재미있어했다. 나는 직관적인 눈을 가지고 세상을 스토리텔링으로 이해하는 호모 사피언스의 후예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대강 철저”라는 설명에 용기를 가지고 대학은 화학공학을 지원했다. ‘화학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는 학문’으로 막연히 자기 멋대로 이해한 덕분이었다. 마침 중화학공업이 활황이었던 90년대, 화학공학이 취업이 잘되는 인기학과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원했는데… 망했다.
화학공학은 화학식이나 구조식에서 어떻게 화학반응을 하는 가보다는 그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물리적인 조건을 연구는 학문이었다. 상업 생산 시설을 설계하기 위해 온통 물리적인 계산을 주로 했다. 반응 속도, 열역학, 유체역학, 공정 설계…. 내가 상상한 학문과는 전혀 다른 물리의 세계였으며 대수학의 세계였다. 나의 적성은 그렇게 사회생활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