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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현 Sep 10. 2024

아무래도 가길 잘한 거 같아

고요하고 따뜻했던 몽골 여행기

2023년도 여름이 찾아온 어느 날, 내 마음속에 몽골이 살포시 들어왔다.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희미하다만 보기만 해도 편안해진 사진 한 장이 문득 위로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쉽게 sns에서 찾아볼 수 있고 유행 같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직접 찾아보지 않는 한 적어도 몽골이 내 알고리즘에 끼지도 않았을 때다.

일단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함께할 사람들을 물색하면서

나 혼자 몽골의 대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몽골은 자유여행이 어려운 만큼 같이 갈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시간은 순리대로 가고.. 가고 싶은 마음은 부풀어서 언젠가 터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2023년이 끝나기 전에 마음 맞는 두 친구를 찾았고,

10대를 함께 보낸 재리,영킴과 함께할 수 있음에 벌써부터 설렘이 가득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본명이 아닌 예쁜 별명들이다.)


호기롭게 단순하게 가기로 한 몽골.

비행기 표부터 마음처럼 순탄하지는 않았다.

예쁜 별들을 보기 위해서 달이 없는 삭일을 선택하니 성수기였고, 성수기에 비행기표는 금값이었다.

우리는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 복닥한 캠프파이어를 꿈꾸며 3명의 추가인원을 구하기로 했다.

몇 달간 함께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몽골 카페를 샅샅이 뒤졌고, 카페에 글을 올려 사람들을 모집했다.

설레는 마음이 앞서 미리 준비한 탓이었을까 약 1년 동안의 준비기간 동안 6명이 되었다가도 조용히 카톡방을 떠나거나 혹은 조율할 생각이 없는 사람 등 사람을 구하는 일에 지치기를 반복했다.


우리 여행의 준비 과정 9할은 재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몽골 카페에 글을 적어 올리는 것부터 투어사를 알아보고 투어사와 연락하는 이 모든 것을 재리가 나서서 해줬다.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드디어 2024년 봄, 6명이 되었다. 우리 셋을 제외한 세 분 모두 이 여행을 계기로 알게 된 분들 이였다.

남자 세 분이었는데 솔직하게 두 친구의 남자친구들이 걱정하기도 하고, 우리와 나이가 조금 차이 나는 분 들 이어서 언니를 조금 더 희망했던 우리에게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6명으로 몽골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만족스러웠다.

4월 즈음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7월에 사전 모임을 갖기로 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사전모임 날이 되었다.

잠실에 한 카페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첫 만남에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겨주신 분이 계셨다. 지각을 하시고 배려 없는 모습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퉁명스럽게 대답하시는 태도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미리 약속한 준비물을 혼자 챙겨 오지 않는 등  계속해서 '몽골에 가고 싶긴 한 건가?'라는 물음표를 떠올리게 하셨고 어색함을 무릅쓰고 노력하는 우리에게 변함없이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여 나도 날이 서고야 말았다. 사전만남 이후 우리의 걱정이 점점 깊어졌다. '여행 가서도 그렇게 투덜거리시지는 않겠지..?' 하며 걱정을 늘어놓다가 그래도 이왕 돈 내고 즐겁게 여행하자는 마음 하나로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니 여행 당일이 되었다.

아침에 근무하고 곧장 서둘러 집에 가는 길에 지나가는 내 앞에 갑자기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멈춰 선 아저씨가 있었다. 놓치면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열차 때문에 서둘러 가던 중이라 순발력을 발휘할 여력이 없던 나와 부딪혔고, 시비를 거셨다. 그뿐만이 아니라 열차가 연착되면서 나는 오래 대기를 하면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연달아 있었다. 여행의 기쁨이 잠시 불쾌함으로 가득했지만, 집에 도착해 서둘러 준비하고 역에 모였다.

우리는 실감이 나지 않은 채로 공항에 도착했고, 온라인으로 미리 시켜둔 면세품들을 받으며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대기하면서 미리 잡혀있던 전화 영어도 하고,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도 챙기고 릴스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3시간 30분을 날아 몽골에 도착했다.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 후 유심이 없어 갤러리만 뒤적이며 약 3시간 동안의 기다림 후 투어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갔다.

환전할 곳을 미리 찾다가  우리가 예약한 투어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한 할머니께서 영어를 쓰시며 우리에게 말을 거셨다. 우리가 예약한 투어사 종이를 들고 계셨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영어 투어를 신청한 게 아닌데 뭐지..?'

그래서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우리는 한국어를 쓰는 가이드 분을 기다린다고 했다. 가이드 이름을 물어보는데 몰라서 대답을 못했다. 답답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키가 크고 젊어 보이는 남자가 후드를 쓰고 우리에게 왔다. 서로 '어..?'만 하고도 알아보았다. 그 사람이 바로 아구다이이다.


아구다이가 우리의 4박 5일을 함께해 줄 가이드였다. 환전을 기다리면서 아구다이가 자기소개를 했다. 소개를 통해 대학생인 것을 알았고 우리랑 동갑이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다음 달에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다고 해서 더 반가웠다.


그렇게 우리의 몽골 여행은 시작된다. 공항을 나가자마자 보인건 흐린 하늘이었지만, 그토록 오고 싶던 몽골에 도착했다는 설렘과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푸르공을 찾고, 기사님을 만나 짐을 싫고 숙소로 향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낯설고 거친 푸르공의 승차감은 당황스러웠지만 설렘이 모든 것을 이겼다.

이동시간만 약 7시간,, 동행자들과도 아직은 거리감이 있어 어색한 기류를 내뿜으며 가다가

이동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졌다.

나는 아구다이에게 궁금한 것들을 다 물어보았는데 아구다이는 그 질문들을 짜증한 번 한숨 한 번 내지 않고 다 대답해 주었다. 중간중간에 푸르공이 고장 나 수리를 하면서 갔는데 모두가 잠든 사이 차가 고장이 났고, 깨어보니 눈앞의 풍경은 마치 인적 드문 동남아의 수리점 같았다.  우구데이가 없어져서 모두가 당황했다. 동행자 중 한 분이 아구다이가 내가 시끄러워서  도망갔다며 장난을 치셨는데 내심 진짜 그랬을까 봐 걱정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기사님께 바디랭귀지로 상황을 여쭤보았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아구다이가 멀리서 걸어왔다.

연락을 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우리의 유심을 구해 오기 위해서 차를 수리하는 동안 걸어서 다녀온 것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직원들이 비를 맞으며 우리를 마중 나와 주었고, 게르까지 짐을 옮겨주었다. 날씨가 좋지 않음에도 환영받는 기분이라 감동이었다.

계속해서 좋지 않은 날씨 때문에 어기호수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뭐라도 알차게 하자는 생각으로 우리는 게르 앞에서 사진을 왕창 찍었다. 그렇게 첫날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최소한의 빛과 멀리 있는 화장실 덕에 세명의 우정을 더 돈독하게 만드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다. 일종의 추억 한 스푼이랄까.


우리의 첫 날밤은 굉장히 추웠다.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패딩이 아니고서는 못 견딜 날씨였다.

게르 안에는 침대가 세 개 놓여있었고, 두꺼운 이불이 한쪽만 접혀있었는데

알고 보니 야무지게 접혀있던 이불은 우리가 옆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닌 덮으라고 있는 이불이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얇은 이불을 덮고 모두가 같은 자세로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무더웠던 한국과는 다르게 초겨울 같은 날씨였던 몽골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후다닥 짐을 챙겨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 날 먹었던 꽈배기는 몽골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몽골의 기본 이동시간 3시간..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벌써 적응했다.

그렇게 다음 장소인 온천 리조트에 도착했다.


온천 리조트는 몽골 현지인들이 휴가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아구다이와 농구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온천에 들어갔다.

내가 알던 온천의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따뜻한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찬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게 좋았다.

게르 앞에 입었던 수영복을 말리고,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우리는 게르 안에 있던 책상을 들고 나와 별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구다이도 초대해서 술도 마시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첫인상을 서로 공유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첫인상과 다르구나를 느꼈고, 나를 며칠 겪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나보다 잘 파악해서 신기했다.

아구다이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얼마 전 끝난 여행은 너무 힘들었는데 따뜻하게 대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놔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이 아이에게 계속해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별도 원 없이 보고, 게임도 하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새벽 3시였다.

그렇게 다음날을 위해 모두 잠에 들 준비를 하는데

여행자 게르의 특성상 매우 추웠는데, 아구다이는 우리 게르에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장작을 넣어주고

꺼져가는 불씨도 바람을 불어넣으며 살려주었다. 전날 우리가 추웠다는 그 말을 기억하고 게르의 지붕을 덮어주고, 리조트 측에 새벽에도 장작을 요청해 주었다. 이런 섬세함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다음날 심각하게 빨리 타는 장작 탓에 추움을 피하지 못한 채 밤을 보냈지만 다행히도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다.

다음 일정을 위해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했다.

일정이 촉박해서 고비사막을 가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간 중부사막도 매우 뜨거웠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더운 사막에서 낙타를 탔는데,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내가 탄 낙타는 그중에서도 유독 지쳐 보였는데 꽤 무거운 나를 들게 한다는 게 미안했다.

겁을 먹은 나머지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는데 멀리서 아구다이가 걸어오면서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더운 사막에서 30분 동안 곁을 함께 해주어서 주변도 둘러보면서 낙타를 탈 수 있었다.


바람에 날린 모래가 몸에 덕지덕지 붙어 얼른 씻고 싶었는데 이 날 우리가 묵은 유목민 게르에는 샤워시설이 없었다. 사전에 투어를 준비할 때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근처에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달러를 준비해 갔는데 청천벽력 그 자체였다. 게다가 유목민이 소유하고 있는 게르 세 채 중에 한 곳을 우리에게 빌려주는 거라

6명이 한 게르 안에서 같이 자야 한다는 사실도 날벼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바뀌지 않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은 생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생수를 모아 양치와 세수를 해결하고 챙겨 온 물티슈로 몸을 닦았다. 물론 최상의 상쾌함은 아니었지만

바람도 좋고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 정도 찝찝함은 견딜 수 있었다.

바위에 올라 전깃줄, 전봇대 하나 없는 광활한 초원을 보는 건 겪지 않으면 모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만약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떡진 머리, 씻지 못해 찝찝한 몸에 신경을 곧두세웠다면

그 행복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넓은 초원에 덩그러니 놓인 게르 앞에 모두 둘러앉아 원 없이 별과 은하수를 보았다.

한국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밀려와 감기는 눈꺼풀을 떼려고 노력했다.

결국 나는 일찍 게르로 들어왔는데, 아구다이도 피곤했는지 먼저 들어왔다.

아구다이가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잠에 들어버렸다.


그렇게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떴다. 유목민들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전날 타지 못한 모래썰매를 타러 갔다.

힘들게 올라가서 내려다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내려갈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답답했을 법도 한데 모두 침착하게 나를 기다려줬다.

내가 망설였던 이유는 내려가다가 '뒹굴까 봐'였다. 그런 나를 위해 먼저 용기를 내 내려가준 친구들에게도 고마웠다. 그렇게 어기적 어기적 내려오긴 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면서 갑자기 우박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금방 유리라도 깨버릴 듯 내리는 우박에 다음 일정은 취소되었다. 하지만 비가 와준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의 일정을 해오면서 막힌 적 없던 차가 이 날따라 많이 막혔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의 절반을 푸르공 안에서 보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밖과는 달리 푸르공의 실내는 생각보다 많이 더웠는데 그 때문에 모두 지치고 힘들었다. 차 안에서 저녁을 맞이하고, 마트에 들러 라면과 음료를 사고 서둘러 숙소로 이동했다.


소중한 하루를 버리는 기분은 들었지만 그 누구도 짜증 내지 않았다.

오히려 예쁜 무지개를 볼 수 있었음에 그리고 내일은 맑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숙소에 도착하고 허르헉이라는 몽골 전통 요리를 먹었는데 허르헉은 식사를 같이 하는 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께서 고기를 나눠주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기사님이 나눠주셨는데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걱정이 앞서는 일이었다. '이 고기를 다 못 먹을 텐데 어쩌지..'

사실 몽골에서의 식사 대부분이 양고기였는데 최대한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양고기를 한국에서도 안 먹는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다 먹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만 드는 식사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식사 후에 씻고 다 같이 모여서 캠프파이어를 했는데 둘러앉아 라면도 끓여 먹고, 담소를 나눴다.

아구다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자고 해서, 다음 날 푸르공 자리 선택권이 걸린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평상시에도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안 부르는 나는 용기를 내서 불러냈다.

그렇게 또 행복했던 하루가 지나고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동행자 분 중 한 분이 비행기 시간이 다른 탓에 우리는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아침을 먹고 후다닥 준비해서 말을 타러 갔는데 말 주인분이 나에게 먼저 말을 타라고 하셔서 어쩌다 보니 먼저 말을 타게 되었다. 내가 탄 말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말을 마주하면서 내가 들렸는데 그 순간은 너무 아찔했다.

그렇게 예쁜 바위산을 배경 삼아 1시간가량 말을 탔다. 몽골에서 본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웠는데

중앙아시아의 스위스가 여기겠구나 싶었다.


타임어택을 하듯 말을 타자마자 테를지에 가 칭기즈칸 동상을 보고, 팔에 독수리를 올려보고 거북바위를 보러 갔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울란바토르로 갔는데 가는 길 역시 엄청 막혔다. 몽골 인구의 절반이 사는 도시여서 그런지 매연도 교통체증도 엄청났다.

한국차들과 일본차가 많이 수출되어서 도요타나 현대 또는 기아 차량을 보는 건 쉬운 일이었다.

보통 수입을 할 때 운전대 방향이 다르면 그 나라에 맞게 바꿀 텐데 몽골은 운전대 방향이 제각각이었다.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그렇게 국영백화점에 도착해서 번개 같은 쇼핑을 마치고 동행자분을 먼저 택시 태워 보내드렸다.


우리는 조금 더 쇼핑을 하고 공항으로 향했는데 아구다이가 출국 전까지 같이 있어주었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지만, 다음 달에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쿨하게 떠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어쩔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몽골에서 내가 느낀 점은 너무나 많다.

그중 몇 가지를 꼭 공유하고 싶었는데 첫 번째 주제는 도파민 중독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쾌락과 고통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늘었고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가장 크고 적절한 예시로 미디어가 있다. 어린아이부터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어 중독되는 일이 잦은데 몽골에서는 미디어를 보지 않고 자연을 먼저 경험하는 것이 내 눈에는 아름답게 보였다. 나 또한 하루라도 핸드폰이 없는 생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불가피했지만 나에게 미디어로부터 해방된 하루를 선물해 준 몽골에게 너무 감사하다.

두 번째 주제는 불편함인데 올라가도 될까 의심스러운 나무판자 화장실이 오픈형인 경우가 많았고, 물도 잘 끊기고 전기도 빨리 끊기는 불편함을 느끼면서 평상시 삶에 감사함도 느꼈다. 동시에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했지만 금방 적응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넓은 초원을 달린다는 게 어떻게 보면 똑같은 풍경에 지루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광활한 초원에 어떤 장애물도 없이 달린다는 것이 낭만이고 힐링일 수 있다. 표지판도  흔한 아스팔트 도로도 없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도착한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사람의 삶 같았다.

살다 보면 때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이 눈에 보일 테고, 때로는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가다 보면 우연히 예쁜 꽃을 보기도 하고, 떼 지어 다니는 염소와 말들을 볼 수 있다. 그렇듯 지치면 잠시 쉬어가면 된다. 넘어져도 일어서면 된다.


또 다른 감사함은 만약 아구다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우리가 당연히 가이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면 혹은우리와 함께하는 4박 5일이 편안하고, 즐겁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들을 아구다이가 몰라주었다면 여행을 마치고도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배려 덕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솔직하게 음식부터 전기 그리고 화장실과 시설 모두 최고는 아니었고, 불편함이 동반되는 여행이었지만

나는 몽골에 꼭 다시 갈 거다.  아구다이가 나눠 준 따뜻한 마음이 내 평생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고, 내 친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9월에 아구다이가 교환학생으로 오는 게 나는 내가 오는 것처럼 기쁘다.

한국에 와서 지내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으면 좋겠고, 상처받지 않고 예쁜 추억 많이 쌓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약 힘든 일이 있다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훗날 아구다이가 한국에서의 생활을 떠올렸을 때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감사한 것 투성이었던 나의 첫 몽골 여행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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