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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음악과 황홀경:

크리슈나, 오르페우스, 디오니소스

by DrLeeHC

신성한 음악과 황홀경: 크리슈나, 오르페우스, 디오니소스

인도 고전 서사시인 『바가바타 푸라나』는 단순한 신화 모음집이 아니라, 우주의 본질과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을 신성한 사랑의 언어로 풀어낸 장엄한 교향곡입니다. 이 위대한 이야기의 중심에서,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단순한 영웅이나 전사가 아닌, 그의 피리 소리 하나로 온 우주와 교감하고, 그의 춤사위 하나로 모든 영혼을 황홀경으로 이끄는 우주적 연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존재는 규범과 이성의 세계를 넘어, 모든 경계를 허무는 기쁨과 사랑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이 인도 평원에서 울려 퍼지는 신성한 피리 소리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리스의 햇살 속에서 울리던 두 개의 다른 선율과 깊은 공명을 이룹니다. 그것은 바로 리라를 타며 죽음의 문턱마저 넘어선 비극적인 예술가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포도주와 광란의 춤 속에서 인간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킨 디오니소스의 축제입니다. 크리슈나와 오르페우스, 그리고 디오니소스라는 이 세 개의 신화적 형상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간극을 넘어, 예술과 황홀경을 통해 신성에 이르고자 했던 인류의 보편적인 영적 갈망이 어떻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신성한 예술의 힘: 크리슈나와 오르페우스


예술이 가진 가장 깊은 힘은 현실을 모방하는 데 있지 않고, 현실을 변형시키는 데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은 우리의 잠든 영혼을 일깨우고, 혼돈스러운 감정에 질서를 부여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을 열어 보이는 신비로운 열쇠입니다. 크리슈나와 오르페우스는 바로 이 ‘예술을 통한 구원’의 원형을 상징하는 두 명의 위대한 신화적 인물입니다.

『바가바타 푸라나』의 크리슈나는 그의 신성한 피리, 반수리 (Bāṃsurī)를 통해 온 우주와 대화합니다. 그가 브린다반의 숲속에 서서 피리를 불기 시작하면, 그 소리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우주 창조의 근원적 진동, 즉 프라나바 (Praṇava)의 메아리가 됩니다. 그 소리에 거친 강물은 흐름을 멈추고, 딱딱한 바위는 녹아내리며, 사나운 짐승들은 온순해지고, 나무들은 꿀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가장 깊이 파고드는 곳은 바로 인간의 영혼입니다. 특히 목동 여인들인 고피들은 크리슈나의 피리 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하던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오직 그 소리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한밤중의 숲으로 달려갑니다. 크리슈나의 음악은 사회적 의무, 가정에 대한 책임, 그리고 ‘나’라는 이기적인 자아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영혼을 오직 신성한 사랑의 대상으로만 향하게 만드는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입니다.


이러한 크리슈나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 속 전설적인 음악가 오르페우스에게서 그 놀라운 서양적 변주를 발견합니다. 아폴론 신의 아들이자 음악의 뮤즈 칼리오페의 아들인 오르페우스는 리라 (lyre)를 연주하는 솜씨가 너무나도 뛰어나, 그의 음악 앞에서는 사나운 맹수들이 곁에 와 눕고, 나무와 바위마저 그의 주위로 모여들어 춤을 추었다고 전해집니다. 크리슈나처럼, 오르페우스의 예술 또한 자연의 혼돈스러운 힘에 조화와 질서를 부여하는 신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여정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었을 때 시작됩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는 리라를 들고 직접 저승으로 내려가, 지옥의 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와 뱃사공 카론, 그리고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와 여왕 페르세포네마저도 자신의 슬픔 어린 노래로 감동시킵니다. 그의 예술은 마침내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절대적인 경계마저 넘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두 인물의 여정은 사랑과 상실이라는 주제 앞에서 서로 다른 길로 갈라섭니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비극으로 끝납니다. 지상으로 나갈 때까지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어긴 그는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어버리고, 그의 남은 삶은 슬픔의 노래로 채워지다 결국 자신마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의 사랑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이며, 그의 실패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선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반면에 크리슈나와 고피들의 사랑 이야기는 ‘릴라 (Līlā)’, 즉 신성한 유희라는 더 큰 틀 안에서 펼쳐집니다. 그들의 사랑에도 분리의 고통, 즉 비라하 (viraha)는 존재하며, 이는 박티 문학의 가장 애절한 주제가 됩니다. 크리슈나가 고피들을 남겨두고 마투라로 떠났을 때, 고피들의 슬픔은 온 세상을 적실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리는 영원한 상실이 아니라, 사랑을 더욱 깊고 순수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개별 영혼과 우주적 실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주적인 알레고리입니다. 그들의 재회와 신성한 춤인 라사 릴라 (Rāsa-līlā)는, 모든 분리가 결국에는 더 큰 합일로 이어진다는 힌두 사상의 낙관적인 우주관을 보여줍니다. 오르페우스가 비극적 영웅이라면, 크리슈나는 우주적 드라마의 즐거운 연출가입니다.


신성한 광기: 크리슈나와 디오니소스


만약 크리슈나와 오르페우스가 예술의 ‘조화로운’ 힘을 통해 신성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면, 크리슈나와 디오니소스는 모든 질서와 규범을 파괴하는 ‘황홀경적인’ 힘을 통해 해방에 이르는 길을 보여줍니다. 두 신은 문명의 이성적인 질서에 도전하며, 인간 내면에 잠들어 있는 원초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야성의 힘을 일깨웁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와 풍요, 그리고 종교적 황홀경과 광기의 신입니다. 그는 이성의 신 아폴론과 대립하며, 인간을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자아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힘을 상징합니다. 그의 추종자들인 마이나데스(디오니소스의 여사제)들은 숲과 산을 떠돌며 춤과 음악 속에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고, 이 신성한 광기 속에서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모든 사회적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억압되었던 본능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해방의 시간이었습니다.


『바가바타 푸라나』에서 크리슈나가 고피들과 벌이는 장난기 어린 사랑의 유희는 바로 이 디오니소스적 황홀경의 인도적 표현입니다. 크리슈나는 고피들의 옷을 훔치고, 그들을 놀리며, 사회적 규범이 금기시하는 사랑의 춤을 춥니다. 그의 피리 소리에 이끌려 한밤중에 남편과 가정을 버리고 숲으로 달려 나간 고피들의 행위는,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성한 광기입니다. 그들의 라사 릴라는 모든 개별적인 자아가 사라지고 오직 사랑의 기쁨만이 존재하는, 집단적인 황홀경의 체험입니다.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통해 인간을 취하게 한다면, 크리슈나는 사랑이라는 더 강력한 술로 영혼을 취하게 합니다. 두 신 모두, 진정한 자유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억압적인 규칙을 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신성한 유희에 동참하는 용기 속에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흥미롭게도 이 두 신의 연결은 단순한 신화적 유사성을 넘어,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에 동행했던 그리스의 역사가 메가스테네스는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신 중 하나를 자신들의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했습니다. 그는 이 인도의 신이 산에서 태어나 포도주를 발견하고 도시를 건설했으며,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법과 문명을 전파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는 크리슈나 혹은 시바 신화의 특정 측면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또한,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헬리오도로스 기둥의 발견은, 헬리오도로스라는 이름의 그리스 대사가 스스로를 ‘바가바타’, 즉 비슈누-크리슈나의 신자라고 칭하며 신을 위해 이 기둥을 세웠음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이는 그리스인들이 단순히 인도의 신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그 신앙을 받아들였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고고학적 증거입니다. 이처럼 동서양의 만남은 이미 고대부터, 서로의 신들 속에서 자신의 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깊은 영적 교감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이 속의 보편적 원형


크리슈나와 오르페우스, 그리고 디오니소스의 비교는 우리에게 인류의 신화적 상상력이 얼마나 보편적인 원형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점 또한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르페우스와 디오니소스가 그리스 판테온의 여러 신들 중 하나로서 특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존재라면, 『바가바타 푸라나』의 크리슈나는 그 모든 신들을 자신 안에 포함하는 궁극적 실재, 즉 비슈누의 완전한 화신입니다. 그는 오르페우스의 예술적 조화와 디오니소스의 황홀경적 해방을 모두 자신의 신성한 유희 속에 통합합니다. 그의 길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으며, 그의 광기는 파괴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의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우주적 질서인 다르마를 회복하고, 모든 영혼을 사랑으로 구원하려는 더 큰 계획의 일부입니다.


결국 이 세 명의 위대한 인물은, 인간의 영혼이 메마른 이성과 억압적인 규범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영원한 증인들입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황홀경 속에서 춤추며, 사랑을 통해 모든 경계를 넘어서려는 신성한 갈망이 잠들어 있습니다. 크리슈나의 피리 소리는, 오르페우스의 리라 선율은, 그리고 디오니소스의 축제는, 바로 이 잠들어 있는 내면의 신성을 깨우라는,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의 부르심입니다. 이러한 고대의 이야기들을 탐구하는 것은 단순히 옛 신화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숨겨진 신화적 차원을 발견하고, 일상을 신성한 예술과 즐거운 축제로 변형시키는 길을 찾는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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