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은 결국 '전구'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아르테타의 결속과 김용만의 해학 사이에서

by 이호창

아스날은 결국 '전구'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 아르테타의 결속과 김용만의 해학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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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 아르테타 (Mikel Arteta, 1982-) 감독이 아스날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라커룸에서 연출한 장면 중 가장 유명한 소품은 단연 전구였습니다. 2022년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Brighton & Hove Albion)과의 홈경기를 앞두고 그는 선수들 앞에 발전기와 전선을 가져와 물리적인 연결이 어떻게 빛을 창조하는지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 (Thomas Alva Edison, 1847-1931)이 발명한 이 작은 기구는 아르테타의 손에서 팀워크라는 가치를 시각화하는 도구로 쓰였습니다. 전구 하나는 고립된 물체에 불과하지만, 서로를 잇는 전선이 에너지를 전달할 때 비로소 빛을 낸다는 그의 설명은 선수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는 아스날이 단순한 전술적 집단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완성하는 유기체로 진화해야 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팬들은 이 장면에 열광하며 아르테타를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로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이 '전구'라는 소재가 전혀 다른 맥락의 해학으로 소비됩니다. 방송인 김용만이 주도한 이른바 '전구 드립'은 아스날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이 비유에서 전구는 천장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는 '우승자'를 상징합니다. 전구는 밝게 빛나며 모두의 시선을 끌지만, 수명이 다하면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전구로 갈아 끼워집니다. 여기서 아스날의 역할은 1등인 전구가 아니라, 그 전구가 교체되는 과정을 돕거나 지켜보는 존재에 머뭅니다. 즉, 아스날은 매 시즌 우승 후보로 거론되며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정작 시즌이 끝나면 맨체스터 시티나 리버풀 같은 팀들이 우승컵을 가져가도록 우승의 주인공을 바꿔주는 역할만 수행한다는 비아냥입니다.

이 비유는 아스날 팬들에게 인정하기 싫은 통찰을 안겨줍니다. 아스날이 강해져서 우승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수록 리그의 흥행은 고조되지만, 결국 그 끝에서 전구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스날 본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승자를 갈아 끼워주는 역할'이라는 표현은 아르테타가 강조한 결속의 상징을 단숨에 잔혹한 조롱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Emirates Stadium)을 가득 채운 함성은 우승권의 기세를 내뿜지만, 최종적인 결과물은 늘 타 팀의 대관식을 화려하게 장식해 주는 조연의 소음으로 전락하곤 했습니다. 팬들이 이 쓰라린 농담을 완전히 쳐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스날의 반복되는 준우승 행보를 가장 정확하게 찌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2025-2026 시즌 역시 아스날은 전방위적인 기세를 떨치며 모든 대회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카라바오컵과 FA컵은 물론이고, 유럽 챔피언스리그 (UEFA Champions League)에서도 리그페이즈 (league phase)에서 8전 8승을 거두며 조 1위로 순항을 거듭하며 강팀의 면모를 과시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팬들의 시선은 오로지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컵 대회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리그 무관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다른 대회에서 거두는 성적과 무관하게, 38라운드 대장정을 마치는 날 아스날이 순위표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기를 바라는 염원은 이제 단순한 기대를 넘어 구단의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더 이상 우승자라는 전구를 갈아 끼워주는 손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전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스날은 이제 타인의 영광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르테타가 라커룸에서 보여준 연결의 힘은 다른 팀의 우승을 값지게 만드는 장식품이 아니라, 아스날을 리그의 주인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매 시즌 반복되는 '우승 목전에서의 좌절'이 더 이상 데이터로 쌓이지 않도록, 이번 시즌에는 반드시 정상에 깃발을 꽂아야 합니다. 김용만의 전구 드립이 가진 생명력은 아스날이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 완전히 소멸할 것입니다. 조롱의 소재였던 전구는 그날 비로소 아르테타가 의도했던 진정한 승리의 상징으로 기록될 것이며, 팬들은 더 이상 비아냥을 견디지 않고 당당하게 우승의 빛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승이라는 결과물은 단순히 트로피 하나를 추가하는 행위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이는 아스날을 향한 타 팀 팬들의 해묵은 조롱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증명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아스날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압도적인 득점력을 보여주자, 경쟁 팀 팬들은 아스날이 오직 코너킥 상황에서만 골을 넣을 줄 안다며 그 전술적 유연성을 폄하하곤 합니다. 하지만 리그 정상에 서는 순간, 이러한 비아냥은 효율적인 승리 공식에 대한 시샘 섞인 찬사로 뒤바뀝니다. 과정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결국 우승이라는 결과 앞에서 힘을 잃기 마련입니다. 아스날이 리그 최정상에 이름을 새긴다면, 팬들은 더 이상 세트피스 득점에 대한 조롱에 고개 숙이지 않고 오히려 이를 팀의 강력한 무기로 자부하며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전환점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2025-2026 시즌의 끝에서 아스날이 마침내 들러리의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좌에 앉는 장면을 기대합니다. 리그 우승이라는 명확한 실체가 전구라는 조롱 섞인 비유를 압도하는 순간, 아스날 팬들의 오랜 기다림은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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