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는 수행이다.

너저분한 P의 청소 수행 1

by 여는길

아무래도 정리는 유전이라고 생각된다. 아들을 키우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굳혀졌다. 특별히 가르친 것도 없는데 자라면서 점점 청소와 정리력이 강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중 3이 되더니 아들의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가지런하게 완성형이 되었다. 옷은 종류별로, 색깔별로, 계절별로 보기 좋게 걸리고 양말과 팬티는 바구니에 담아 가지런히 담겼다. 등교하기 전 방을 한번 돌아보며 이불도 칼각으로 반듯하게 정리해놓고 책장의 책은 늘 키와 종류를 감안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꽂혀있다.

(늘 너저분한 P가 봐도 참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다. 이렇게 하라고 가르친 적은 없다. 가르친다고 하는 것도 아니란 걸 딸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하루는 등교 준비하는 아들의 침대에 앉아 잠시 핸드폰 충전을 하고 있는데 엄마 엉덩이에 살짝 눌린 이불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엄마 일어날 때 이불 좀 반듯하게 펴줘"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정도까지 신경을 쓴다고?"

살짝 놀랐지만 아들을 통해 정리와 청소는 어떻게 유지되고 이루어지는지 계속 살펴보게 된다.

집이 엉망진창인 날에는 "엄마 난 내 방에만 있을래.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아!" 하며 너저분한 P를 피곤하게 한다.


인생이 엉망진창으로 꼬일 때 많은 책과 자기 계발 전문가들은 1번 해법으로 '청소'를 꼽는다.

난 정리 씨앗 같은 건 유전적으로 타고나지를 못했는지 정리와 청소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컴퓨터 모니터 주변 반원으로 물 컵, 귀이개, 연고들, 자, 책 몇 권, 왜 나와 있는지 모르는 스티커, 상하수도 요금 고지서가 널브러져 있다. 안간힘을 써서 정리해도 어느 순간 물건들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책상 위를 발견한다. 휴... 난 왜 50년간 한결같이 이 모양일까...

늘 청소와 정리법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기분상) 조금 좋아지고 있는 것 같으나 어디까지나 그건 내 생각일 뿐.. 그대로인 것 같다.


아들의 단정한 생활을 관찰하면서 나도 조금 근본적으로 바뀌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타고나지 못했으면 진심을 다해 노력이라도 해보자!)

수많은 청소와 미니멀리즘책이 나를 거쳐갔는데 책장에 꽂혀있는 청소책을 꺼내 뒤적 뒤적하며 깨끗하게 정돈된 집을 사진으로 구경하며 핵심 내용을 찾아서 메모했다.


청소루틴

1. 매일 : 청소기 돌리기, 세면대, 화장실 청소, 침대정리, 거실 주방 부엌 리셋

2. 매주 : 시트교환, 스팀청소기

3. 매월 : 화장실 철저 청소, 주방 환기팬, 현관, 테라스, 세탁기 청소

4. 대청소 : 신발장, 현관, 냉장고 안, 창고, 창틀, 서류, 책정리


일단 1번, 2번을 아침, 저녁으로 무한 반복하기로 한다.

그중에서도 부엌 리셋을 나와의 첫 번째 약속으로 잡았다.

음식물 쓰레기 매일 저녁 버리고 하수구통에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없게 하기.

(집안의 냄새는 거의 음식물 냄새이다)


인생이 엉망진창으로 느껴지는 시점, 청소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지는 나날이다.

기분 날 때가 아니고 오로지 매일매일 수행하듯 쓸고 닦는 루틴으로 나를 단련시켜 보자.

아침 40분, 저녁 30분 - 깨끗한 청소영상을 하나 보고 남의 집 청소하듯 정신 차리고 몰입해서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진행한다. 물건을쓰면 제자리 놓기, 버릴 것과 빨래할 것들을 돌아보고 한 번에 챙겨 나오기 등 행동의 연결지점을 찾아 둘을 짝지었다.


바빠서 다른 건 못해도 부엌청소만은 단 하루도 양보하지 않기로 기준을 세운다.

나도 한번 단정한 삶을... 이 생에 살아보자!

"인간은 중년 이후에 자기 자신을 한번 더 만든다"

저절로 몸에 붙어서 안 하고 못 배긴다면 모르겠지만 타고나지를 못했다면 만들어야지!

청소와 함께 수행하듯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49세 생일 즈음 한다.

IMG_9194.JPG 식탁 위. 항상 뭐가 많이 올려져 있음을 반성하게 되는 사진_ 부엌과 식탁은 세트로 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