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이 누렸던 노년이 마냥 부럽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그림 그리기에 매료 됐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는,“하늘나라에 가서 내 첫 번째 백만 년은 그림 그리는 데 다 쓰고 싶다.”라고 했을까. 이런 미술 창작을 향한 열정은 그를 북아프리카, 프랑스, 멀리 미국 로키 산까지 이젤을 세워둔 스튜디오를 마련케 하였다. 심지어 그는, “캔버스는 시간의 시샘, 서서히 밀려오는 쇠락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그림을 그리면 빛과 색, 희망이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라고 그림 그리기에 심취한 소회를 피력하기도 했다.
처칠이 지닌 이런 열정 덕분인지 그가 그린 그림은 언젠가 6억 원 대에 거래될 만큼 그 예술성을 높이 인정받기도 했다. 이로 보아 노년에 이르러 어떤 일에 정열을 바치는 일만큼 값진 일은 없는 듯하다. 한 때는 존경받는 정치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처칠이다. 그가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던 것은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뒀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나이가 들면 지난 시간 얽매었던 삶에서 해방돼 새롭게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 게 로망이기도 하다. 이는 성인들을 위한 평생교육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것도 일조를 하고 있다면 지나칠까. 새해가 되면 도서관 및, 복지관 등에선 성인들을 위한 평생교육 강좌를 마련하곤 한다. 동네 곳곳에 걸린 평생교육 강좌 프로그램 안내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홍보물이 그것이다. 이것을 볼 때마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글 쓰는 일 외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는 듯하다. 아니, 솔직히 여태껏 문학을 연인처럼 생각하다 보니 딴 일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면 궁색한 변명일까. 이는 평소 남다른 꿈도 없었을 뿐더러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도전 의식이 결여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또 다른 길을 모색하려고 마음먹으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젊은 날 꼭 이루고 싶었던 꿈은 연예인이었다.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여고 시절엔 사복을 갖춰 입고 몰래 영화관에 숨어들곤 했었다. 당시만 하여도 교복을 입고 영화관을 들락거리다가 선생님께 발각되면 벌을 받거나 교무실로 불리어 가기 일쑤였다. 그때는 배우 윤정희에게 홀딱 반했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빠트리지 않고 관람할 정도였다.
그래 나중엔 어머니 몰래 서울 모처에 있는 배우 학원을 일 년 정도 다니기도 했다. 끝내는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고백했다. 하지만 어머니 반응은 냉담했다. 일명 ‘딴따라’가 될 바에는 학교 공부도 포기하라고 할 만큼 단호했다. 어머니 만류로 배우에 대한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즈막에도 영화를 관람하노라면 열연하는 배우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학창시절에 그토록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참으로 단순하다. 배우 한 사람이 그야말로 거지는 물론, 왕에 이르기까지 온갖 배역을 두루 연기할 수 있는 변신에 묘한 매력을 느껴서이다.
돌이켜 보니 여태껏 개성을 맘껏 발휘하지 못했다는 자책마저 든다. 인생사에 한 획을 긋는 뚜렷한 성취가 없는 듯해서다. 즉 이 말은 나만의 독특한 색깔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63세에 경제 부총리를 끝으로 관직을 떠난 뒤 소설가로 변신한 고(故)김준성 전(前) 부총리다. 그는 그 후 소설 쓰기에 몰두하여 장·단편 수 십 편을 문단에 발표하기도 했다. 고(故) 김준성 부총리는 38세 젊은 나이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지만 은행 요직을 잇따라 맡게 되면서 문학을 향한 열망을 가슴에서 접었다고 한다. 2007년 87세로 타계하기 두 달 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소설가 김준성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게 매우 인상적이다.
정치인으로 성공한 그였다. 그럼에도 관직에서 물러난 후 피를 말리는 글 감옥에 스스로 갇히길 원한 것은 젊은 날 못다 이룬 꿈 때문이었을 것이다. 때론 자신이 지향했던 삶과는 정반대 방향을 선택하는 게 인생사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젊은 날 연기자 길을 끝내 선택하지 못하였다. 오늘날 엉뚱하게 글쟁이가 됐잖은가. 이로 보아 처칠과 고(故) 김준성 전(前) 부총리, 이 두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녔던 강인한 의지가 매우 존경스럽다. 이들은 자신이 이룬 꿈이 빛을 발하도록 혼신의 힘을 다했잖은가.
처칠은 황혼에 이르러 선택한 그림 그리기가 자신 삶의 빛이요, 남은 생을 화려하게 덧칠해 주는 아름다운 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칠이 추구하는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처칠이 남긴 이 말을 새삼 상기하노라니 문학으로나마 필자만이 지닌 색(色)을 되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방편으로써 정서적 미감과 교훈이라는 두 개의 내재된 축을 적절히 작품 속에 교합할 것이다. 아울러 삶과 존재 문제를 다루는 수필문학으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탐색하련다. 그리하여 향후 개성이 뚜렷한 색깔을 지닌 문인이 되어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