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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산 Oct 29. 2022

저버린 양심과 자유의지

후회되는 5월의 봄 - 첫 번째 후회

1) 변화의 시작


나는 내성적이란 말을 듣는 게 너무 싫었다.

대학에 가면 소극적인 내 성격을 고쳐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학과에는 내게 큰 변화를 가져다준 또 한 사람이 있다. 고교 6년 선배인데 긴 시간 방황을 끝내고 늦게 진학하여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그 선배는 불교에 심취해 있었는데, 법명이 천동이라 하였다.

“내일, 짐 챙겨 나와라. 희방사에 간다.”

별로 가고 싶진 않았지만, 대 선배의 말을 거역하기 힘들었다. 희방사를 지나 비탈길을 좀 더 오르니 작은 암자가 나왔다. 나이 드신 한 스님이 천동이가 어쩐 일이냐고 반갑게 맞이하신다. 희방사를 품은 소백산은 고향에 있는 칠갑산보다 더 크고 더 높았지만, 산촌에서 자라서 그런지 별 감흥은 없었다. 나는 지금도 산보다 바다가 좋다.

“야야~ 일어나.”

다음 날 새벽 4시에 선배가 흔들어 깨웠다.

“마하 반야 바라 밀다~...”

선배가 법당에 꿇어앉아 반야심경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너무 놀랐다. 염불은 스님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더구나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선배는 2박 3일 동안 부처의 수행, 소승불교, 대승불교, 미륵사상, 명상과 참선 등에 대해 장시간 설명해 주었다. 그 후로도 선배는 시간 날 때마다 자신의 인생철학과 시국관 등에 대한 생각을 말해 주었다. 사회 정의와 행동하는 지성 등등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었던 것들이었다. 선배의 말이 곧 진리처럼 여겨졌다.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물어보고 듣는 편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친구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아졌다. 이제 진짜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교실 밖에서는 삼성 물러가라는 데모가 한창이다. 학교를 인수한 삼성재단이 학교 발전을 위해 원대한 발전 계획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지켜진 게 없었다. 삼성 퇴진을 위한 학내 데모에는 늘 수백 명의 학생들이 집결하곤 했다. 교외에서는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국 시위가 한창이었지만, 먼저 학내 상황을 마무리 한 다음에 시국시위에 동참하기로 했다. 수업 중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모교 출신 신 교수님이 목소리를 높이셨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전문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모교를 발전시키고, 너희가 잘되는 지름길이다.”

밖이 소란하여 웅성거리기 시작하는데, 다시 언성을 높이셨다.

"지금은 정의를 실현해야 할 때다. 나가라. 행동하는 지성을 보여줘라."


내게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나를 크게 변화하게 만든 세 사람이 있다.

우연히 금잔디 광장에서 만난 국문학과 선배와 졸업할 때까지 함께 수학하던 고교 6년 선배, 그리고 아직도 멀리에서 나를 응원해주시는 은사님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교과목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내재된 용기의 힘, 인생철학과 사회정의 그리고 행동하는 지성을 배웠다. 우리 주변에는 닮고 싶은 사람이 많이 있다.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2) 후회되는 5월의 봄


종로 뒷골목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당하고, 전두환이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좌지우지했고,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5월의 어느 날로 기억된다.

“자, 나가자.”

누군가 소리치자 금방 수백 명이 모여 뒤를 따랐다.

“독재타도! 계엄철폐!”

앞에서 와하고 소리를 지르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왔다. 시민들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사복을 입은 경찰 백골단이었다. 맞고 찢기고 넘어졌다. 경찰에 붙들려 광화문 국제극장 옆에 있던 파출소에 끌려갔다. 늦은 밤에 닭장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갔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도착한 곳은 종로경찰서 지하실이었다. 철창이 있는 방에서 쪼그려 앉은 채로 하룻밤이 지나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들 불안해했다. 나는 긴장해서 그런지 화장실 간 기억도 없다.

다시 밤이 되었다. 무궁화 꽃을 단 경찰이 설교를 했다.

“나도 여러분의 충정을 잘 안다. 지금 전두환, 신현확, 정승화... 그렇지만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내보내 줄 거다.”  

나누어진 종이에 자술서를 쓰고 한 사람씩 검사를 받았다.

“아니, 너도 마찬가지야. 잘못했다고 쓰라고.”

자술서 쓰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처음에는 다들 자기주장을 펼치며 잘못한 것이 없다고 썼지만 책상을 치고 눈을 부라리는 경찰이 점점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위 경찰이 들어오더니, 그냥 잘못했다고 쓰기만 하면, 학교에서 보내준 차가 도착하는 대로 내보내 준다고 했다. 학생들이 하나 둘 자술서를 쓰고 나갔다.

나도 잘못했다고 자술서를 썼고 지장을 찍었다.

얼마 후 고대에서 보내준 차가 도착했다. 3명의 고대생 중 한 명은 법대생이었다. 그 친구는 버티고 있었다.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난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잘못했다고 쓰라고 합니까?”

경찰과 논쟁이 반복되었지만, 그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끝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바로 어제만 해도 정의를 외치고, 행동하는 지성인이라고 자부했었다. 

나는 양심과 의지를 버렸다.

나는 왜 저 친구처럼 내 의지를 지키지 못했을까?

내가 철창을 나설 때까지도 그 친구는 아직도 잘못이 없다고 버티고 있었다.


걱정을 하고 계실 부모님이 생각나 공중전화가 있는 약국으로 들어갔다.

벽에 걸린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쳐 보인다.

옷이 찢겨 있고, 얼굴에 긁힌 자국도 보인다.

잘못한 게 없다고 항변하던, 법대 친구 얼굴이 겹쳐 보인다.

내 모습이 슬프다. 긁힌 얼굴도 아니고 찢긴 옷 때문도 아니다.

오늘 난 내 양심과 자유의지를 버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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