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먹고사니즘, 내가 먹고 사는 법
나는 현재 중형 로펌에 비서로 재직 중이다. 이 글의 초고를 쓸 때까지만 해도 입사 10개월차 햇병아리 비서라고 나를 소개하고자 했으나 작성자의 게으름(작성자는 엄청난 P다. 언젠가는 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으로 인해 초고를 방치한 결과 얼마 전 경력 2년을 채우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나의 직업인 로펌 비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앞으로의 글들도 마찬가지지만 나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들었던 생각을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선에서 읽히길 바란다.
로펌비서에 대해서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은 로펌비서를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의 비서로 여성들이 주로 하고, 전화를 자주 받으며 변호사들의 스케줄을 관리해주고 의전을 하는 직업'으로 많이들 생각할 것 같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로펌에서 비서들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로펌의 변호사들은 모두가 하나의 로펌에 소속되어 있지만 각자의 변호사실에서 독자적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A 변호사실에서 진행하는 사건에 대해서 B 변호사실은 내용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물론 갈수록 팀제가 활성화되고는 있으나 많은 변호사들과 많은 팀이 있는 로펌의 특성상 여전히 나와 관계 없는 사건의 진행상황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때문에 비서들이 담당 변호사가 맡고 있는 사건 하나하나의 행정적인 업무를 도맡고 있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업무는 바로 청구(Billing) 업무다. 로펌이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은 수임료인데 의뢰인이 사건을 의뢰하면 소송 사건의 경우 착수금, 성사금을 받고 자문 사건의 경우엔 자문료를 받고 있다. 이 수임료를 청구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업무인 셈이다. 물론 최근엔 법인에서 빌링팀을 신설하여 비서들이 맡고 있던 빌링 업무의 많은 부분이 이관 되었지만 내 업무의 특성상 여전히 직접 빌링을 많이 하고 있다.
법인이 이익을 창출하는 즉 돈을 버는 빌링 업무 뿐만 아니라 돈을 쓰는 '지출' 항목도 비서들이 관리하고 있다.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 법원에 비용을 납부하거나 사건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다른 외주업체를 사용하였을 때 해당 외주업체의 비용 처리, 하물며 법원 등 변호사가 각종 외근 시 사용한 교통비, 법인카드 사용 내역까지 사건을 수행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지출들을 비서들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빌링과 지출 관리 업무를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내가 비서인지 회계팀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가끔 있기도 하다,,,ㅎㅎ
물론 이외에도 변호사들의 일정 관리, 회의 준비, 고객과의 소통 등 흔히 비서의 업무로 연상되는 업무들도 나의 업무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 나의 경우엔 외국인 변호사님을 담당하고 있어서 (자주는 아니지만) 변호사님의 개인적인 업무를 봐드려야 할 때도 있다. 쓰다보니 장황하게 이런 저런 업무를 다 하고 있다고 쓴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다. 로펌이든 일반 기업이든 어디에서 근무하든 비서들은 '도대체 내 업무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를 늘 고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