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 1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 내려 국내행 비행기를 갈아타고 무섭게 흔들리며 목적지 르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은 1353년부터 1560년까지 란쌍 왕국의 수도였다. 나라가 번성했던 당시 왕궁과 사원이 남아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여행 목적은 고대 도시라는 루앙프라방 탐방과 탁발의식 그리고 오지를 돌아보자는 거였다. 탁발 수행을 보려면 그 도시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다.
동이 트기 전인데 탁발 의식을 기다리는 관광객과 공양 음식을 팔려는 상인들 그리고 현지인들이 뒤섞여 거리는 매우 혼잡했다. 인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호기심으로 탁발을 기다리는 관광객들 사이로 눈을 감고 바리때를 공손히 받들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추어올린 팔이 아플 것은 데도 같은데 제법 긴 시간 같은 자세를 고수했다. 노인은 한 끼 음식을 공양하려 새벽잠을 마다하고 밥을 지어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오전 여섯 시가 조금 지나자, 황금색 가사에 발우를 맨 스님 행렬이 보였다. 도시는 수행자의 맨발이 닿는 자리마다 황금색으로 넘실댔다. 거리에 뒹구는 돌덩이도 벽돌도 수행자들의 발걸음과 옷 자락에 황금으로 변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 황금이 탐욕이 아닌 마음에 선심을 굳게 세우는 지렛대이기를 그 땅의 고대인들은 바라지 않았을까.
이방인들은 호기심으로, 상인들은 호객행위로, 불자들은 공경심으로 그 빛에 휩쓸렸다. 바리때를 받들고 있던 노인이 자신의 한 끼를 덜어 스님들의 한 끼에 보탰다. 공양 나온 불자들도, 관광객들도 어린 사미의 발우에 초콜릿이나 과자를 넣어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도시의 하루는 수행도 한 끼에서 시작되고 공덕 짓는 일도 한 끼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알렸다.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일은 한 끼를 위한 투쟁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탐욕의 근원도 한 끼에서 번진 것이며, 선禪에 이르는 길 또한 한 끼를 다스리는 힘에서 출발한다고 어쭙잖게 연결 지어보니, 탁발 수행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탁발 수행 사미율의 중에는 하루에 일곱 집만 찾아가고, 일곱 집에서 밥을 얻지 못하면 하루를 굶어야 한다는 법제가 있다. 곤궁한 처치로 탁발에 참여하지 못하는 불자의 소외감을 다독이는 동시에 사미의 탐욕을 경계하자는 금도였을 터이다. 수행자의 탁발에 엄격한 금식과 법제가 있다면 공양하는 사람도 지켜야 할 기본이 있었다. 많은 양의 음식을 한 스님에게 공양하기보다 조금씩 나눠 여러 스님에게 골고루 공양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굶는 스님이 없도록 배려하자는 나눔의 도가 아니었을까.
루앙프라방 사원의 사미와 비구가 모두 참여한다는 탁발은 한 시간여 만에 끝이 났다. 한차례 소란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묘한 여운, 뭔가 허전했다. 엄숙해야 할 수행자의 탁발 수행마저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 게 아닌지, 고대 도시에서 만난 종교가 물질화된 현대사회의 그늘에 종속되어 버렸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행렬이 지나간 끝자리에 남겨진 대바구니가 눈길을 끌었다. 바구니 안에는 밥과 과자, 초콜릿 등 먹거리가 종류 구분 없이 뒤섞여 누군가를 기다렸다. 현지인 가이드 카이에게 스님들이 탁발 음식 일부를 사람들과 나누려는 의도가 담긴 바구니라는 설명을 들은 터였다. 바구니 정신은 가난했던 시대, 굶주린 아이들이 스님 행렬을 뒤따르다 바구니에 남겨둔 음식을 챙겨 가족과 나눠 먹었던 전통의 소산이었다. 어쨌든 그 자리에서 제법 지켜봤으나 호기심으로 통 안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음식을 챙기는 사람은 없었다. 라오스는 동남아의 빈국에 속해도 루앙프라방 주민들은 관광 수입으로 경제 사정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니 새벽부터 한 끼 해결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아이들이 없는 것이다.
카이가 누구나 먹어도 된다며 오지 탐방을 생각해 챙겨두라 권했다. 호기심으로 바구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문득 음식이 불결해 보여 손을 뺐다. 검은 비닐에 종류 구분 없이 뒤섞여 있는 것도, 상인과 관광객, 공양주 스님 여러 사람 손을 거친 것도 불신을 키웠다. 그때 스님들이 탁발 음식을 정말 드실까? 라는 의구심이 불쑥 치밀었다. 라오스에서 높은 사회적 신분을 누리는 스님들이 탁발 음식을 드실 리 없다는 쪽으로 쏠렸다. 한술 더 떠 바리때를 공손히 받들어 공양에 임하던 노인의 정성이 스님들의 발우에서 내쳐졌을 것이라는 의심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 오후부터 루앙프라방을 떠나 오지 탐방에 나섰다. 복께오와 퐁살리를 지나 베트남 국경을 다녀오는 길,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사고 차량까지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를 둘러 봐도 음식점은 고사하고 집 한 채 찾아볼 수 없는 오지였다. 그때쯤 불결하다 타박했던 음식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눈앞에 바구니가 있다면 주저 없이 밥 한 덩이 집어 입에 넣었을 것이다. 멀쩡한 음식을 타박한 대가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깨닫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스님들이 정말 탁발 음식 드시나요?
사원에 가져가 모두 나눠 드십니다.
카이의 망설임없는 답변에 속이 뜨끔했다. 한 끼에 의존해 살면서 함부로 음식을 터부시한 것도 모자라 수행자들을 의심했다니, 나눔의 도를 폄훼한 대가는 지독한 허기였다.
변명을 섞자면 은연중에 고대 도시에 어떤 환상을 가졌던 탓도 있다. 고대가 전해 준 처음 정신처럼 탁발 의식이 경건하게 치러지길 기대했으나 공양 음식을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인들의 호객 행위와 의식이 치러진 뒤에 남아있는 먼지와 소란들... 막연한 환상은 그렇게 깨졌다. 나도 먼지와 다를바 없는 존재이며 그 소란의 일부임을 망각했으니 어쩌겠는가. 엄밀히 따지면 전통문화 유산의 상품화는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자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하루 일곱 집만 다니고, 음식을 구하지 못하면 굶어라. 허기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특효약인 모양이다. 밥을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