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캐쉬.
캐쉬와 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게스트로 처음 만났다.
작년 여름.
캐쉬는 강남에 있는 어느 여성전용 에어비앤비에 갔다가 내부 청소가 전혀 안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급하게 우리 집이 있는 부천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청바지에 편한 티셔츠, 백팩 하나를 맨 단출한 차림.
억양 곳곳에 묻어있는 나와 비슷한 말투
경남 김해 출신이라고 했다.
95년생. 작년 한국 나이 25.
82년생인 나와는 띠동갑보다 많은 13살 차이였지만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호주에 있는 내 남자 친구와 동갑이라 더 편하게 느껴진 것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도 캐쉬는
어느 호스트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게스트였다.
1. 스스로 독립적이고 2. 예의 바르며 3. 주변을 청결하게 하고 4. 다른 사람들과도 편안하게 잘 어울리는 캐쉬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어딜 가도 친구들에게 인기 최고일 게 분명할 캐쉬는 의외로 거의 집에만 있었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호주로 캐나다로 다니는 바람에 한국에 있는 친구는 고작 두세명뿐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은 뉴욕.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 입학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한국에 왔고, 미국에 있을 때 우연히 영어자막을 도와주면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왔다던 그녀.
캐쉬는
또래의 90년대생처럼 주로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듯했는데
주로 무언가를 배우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특히나 우리 집 한구석에서 기타를 발견하곤 몇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유튜브 앞에 앉아 기타를 튕기더니 그날 저녁 팝송 한곡을 완전히 마스터했다.
공원 산책 길에 놓인 피아노에 앉았을 때도 건반에 조심히 손가락을 올려보더니 유튜브로 건반을 외우면서 배워 제목은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이내 능숙하게 몇 곡을 쳤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캐릭터
그게 아니라 캐쉬는 모든 것에 뛰어났다.
같이 운동을 하며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어도 나보다 저만치나 앞서 있었고 철봉에 매달리기를 해도 훨씬 오래 버텼다.
이건 말도 안 된다며 신기해하는 나를 보면 침착하게 요점을 가르쳐 주었다.
달리기를 할 때 속도를 내려면 딛는 발에 집중하는 것보다 뒤에 따라오는 발을 빨리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대요.
영어를 가르쳐 줄 때는 또 어쩜 그렇게 이해하기 쉽게 쏙쏙 가르쳐 주는지
나는 일주일 만에 완전 캐쉬의 팬이 되어버려 하루 한 시간 영어 발음 교정을 조건으로 2주 연장의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일종의 재능의 물물교환이랄까?
그게 아니라 캐쉬는 여러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은
캐쉬에게 꿈을 물어본 적이 있다.
"캐쉬, 너는 꿈이 뭐야?"
그러자 캐쉬는 잠시 고심하는 얼굴을 하더니 이내 또박또박 본인이 이루고 싶은 꿈을 말했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음.... 마흔 초반쯤에는 은퇴하고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어요."
...
경제적 자유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까지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다.
경제적 자유라.
경제. 경제는 곧 돈이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돈이란 출근이고 억압이고 골치와 고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와 같이 파아란 하늘과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빛 들판과 같은 자유와는 절대 붙을 수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경제적 자유를 말하는 캐쉬의 태도였다.
몇 주동안 지내며 가까이서 본 캐쉬는 아주 검소하고 알뜰했지만, 돈을 생각하고 말하는 태도가 아주 긍정적이었다.
"그.... 그래.... 그러면 그... 경제적.. 자유... 그걸 얻게 되면 뭘 하고 싶어?"
"그럼 그때는 돈이 되던 안 되던 마음 편안하게 제가 배우고 싶은 거 마음껏 배우고 살고 싶어요."
뭐든 배우고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
뉴욕에서도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제 방이요"
라고 말하고 웃던 모습.
사실 캐쉬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음악 듣고, 뭔가를 배우고 만드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더욱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열심히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마흔쯤에 은퇴를 준비하려 계획을 세우던 야무진 캐쉬와 당장 내일모레가 마흔인 나.
가뜩이나 집 대출을 알아보러 갔다가 연소득으로 개망신당하고 돈 공부에 바짝 물이 올라있던 상황. 그래서 나도 당장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확실한 계획을 세웠다.
당시 내 나이 38세. 목표는 45세에 10억. 앞으로 남은 시간은 7년.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일단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아주 노골적이고 대놓고 돈을 부르는 이름으로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이 바로
캐쉬(Cash) & 물라(Mulah: 돈이라는 뜻의 슬랭)
25세 캐쉬와 38세 물라의
경제적 자유를 향한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늘 한국이 그리웠던 캐쉬는 결국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했다. 틈틈이 전화영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래의 진로를 위해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국비지원 빅데이터 수업 과정에 등록했다.
나는 어떻게든 은행 대출과 엄마에게 빌린 돈을 갚고 캄캄한 앞날을 대비해 치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닥치는 대로 돈 관련 책을 읽었다.
그렇게 몸과 머리를 부지런히 쓰며 공부하다 보니 "경제적 자유"처럼 생소하지만 신기한 단어 여러 개와 만나게 되었다.
단어란 개념이고 개념을 이해 하면 곧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보이던 단어가 바로 "소극적 수입"과 "파이프라인"이었다. 그리고 이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직장에서 받는 월급 200만 원을 모조리 저금하는 마법같이 일이 펼쳐진다.
소극적 수입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적극적 수입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적극적 수입
적극적 수입이란 말 그대로 내가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들어오는 수입이다. 매일 출근해서 받는 직장 월급이 이에 속할 것이고 내가 직접 몸을 움직이고 매달려 있어야 벌 수 있는 수입. 나의 경우에는 치과 아르바이트가 적극적 수입이 된다.
보통 사람들은 이 적극적인 수입이 본인 수입의 전부이므로 월 200을 벌면 저축은커녕 한 달 벌어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한 것이다. 그럴 때 나와주는 것이 바로 소극적 수입이다.
소극적 수입
영어로는 Passive income. 직역하자면 내가 소극적으로? 움직여도 들어와 주는 수입. 다른 듯 비슷한 말로는 부수입. 불로소득 등이 있겠다. 오마하의 현자 워런 버핏이 말했던
"잠을 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이 명언에서 "잠을 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게 하는 법"이 바로 소극적 수입(Passive income)에 해당하는 것이다.
월세를 받는 건물주. 배당주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 책의 인세. 유튜브나 블로그로 들어오는 광고 수입. 남는 방을 이용한 룸메이트 구하기. 에어비앤비 등이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창에 소극적 수입, 파이프 라인이라고만 쳐도 다양한 방법이 나온다)
이렇게 적극적 수입 외에도 여러 방향에서 들어올 수 있도록 소극적 수입의 파이프 라인을 만들어 놓는 것이 바로 "소득의 파이프라인 만들기"이다.
너무 놀랍지 않나?
그러고 보니 부자들은 적극적 수입은 저축이나 투자를 하고 이자나 배당금, 부동산같은 데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하더니 그게 바로 파이프라인이었구나.
돈 공부를 시작하며 이 개념을 빨리 깨친 덕에 나는 치과 월급 200만 원을 모두 저축할 수 있었다. 역시나 소득의 파이프라인 덕분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연소득 480만 원을 월소득 480만 원으로 바꾼 이번 달 소득표를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첫째. 치과 월급 2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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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적극적 수입이다
지금부터 소극적 수입을 만들기 위해 내가 만들어 놓은 파이프라인들이 등장한다
둘째. 셰어 하우스 (내가 사는 쓰리룸에서 내가 거실 한 구석을 쓰며 방 3개를 모두 셰어 생들로 받는다. 보통 100만 원 내외로 수입이 들어온다)
이번 달은 공실이 하루도 없었으므로 110만 원의 수입이 났다
셋째. 주식. 매달 저축하는 200만 원으로 모은 종잣돈 1500만 원으로 주식으로 하루에 만 원. 한 달에 30만 원을 목표로 굴리는 중이다.
이번 달은 배당받은 주식까지 환매해서 40만 원의 수익이 났다.
넷째. 책 계약금 200만 원 ㅡ 사실 이것은 고정 수입이 아닌 비경상 수지에 속하는 데다 현재까지 제안받은 5곳의 출판사와 미팅 중에 있고 좀 더 고심한 뒤 4월 말까지 결정하기로 했으니 일단 평균 월소득에서는 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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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 계약금을 빼더라도
월급은 200만 원이지만 다른 부수입으로 150만 원을 벌었다. 한 달에 150만 원 차이지만 연봉으로 환산해 보자면 연봉 2500만 원이 연봉 4000만 원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파이프라인의 기적이고, 이게 되면 매일 아침 출근길이 발걸음이 매우 가벼워진다. 일단 출근하는 그 돈이 다 주식 통장에 총알이 되어 쌓이므로.
문제는
이렇게 말로는 간단한 개념이 실제 나의 일상으로 자리잡기으려면 실제로는 녹록지 않다는 것이고,
소극적 수입과 파이프라인을 말할 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 역시 지금부터다.
파이프라인 구축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싶다면 일단 '워라벨'이라는 단어를 지워야 한다. 소위 흙수저라 불리는 우리 같은 소시민이 단시간에 부자가 되기란 쉽지 않다.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낫다.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단계 아니면 사이비 종교일거다.
나 역시 지금의 안정적인 셰어하우스를 구축해놓기까지는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가 좋은 날이면 소풍을 가는 게 아니라 세탁기 앞에서 이불빨래가 돌아가길 기다렸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싶으면 창이 큰 카페에 가서 책장을 펴는 게 아니라 재빨리 옥상 문을 열고 널어둔 베개와 이불솜을 걷어야 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외국 게스트가 있으면 새벽 4시에도 일어나 택시를 잡아줬고 모처럼 고향에 내려가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는 문자 한 통에 짐을 싸서 올라와야 했다. 아침부터 야간 진료까지 일하고 녹초가 되어 집에 와도 다음날 체크인하는 게스트가 있다면 유한 락스를 풀고 대청소를 했기 때문에 지금의 고정 수입 백만 원이 있는 것이다.
주식은 또 어떻고? 종잣돈이 크지 않다 보니 하루 만원이라도 벌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머니 레터를 읽고 장이 끝나면 네이버 증권에 들어가서 그날의 주식을 둘러보고 자기 전엔 경제 신문을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마이너스가 나고 물리는 주가 생긴다.
결국
파이프라인의 기적이란,
하늘에서 옛다, 하고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하는 만큼 딱 그만큼씩 만들어진다.
주 4일 치과 아르바이트( 그중 야간진료가 있는 이틀은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셰어 하우스 호스트. 그리고 글 쓰는 작가.
이 모든 걸 내가 세운 기준에 그래도 가깝게 도달하기 위해서 나는 몇 달 전부터 아침 6시 기상을 목표로 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찌 됐던 알람 때문에 눈을 뜰 수밖에 없다. 정말 어려운 건 6시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밤 12시 전에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야 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밤의 시간.
내가 그 밤의 시간들을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하지만 목표를 위해서는 그 부드러운 밤의 시간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거실 한 구석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으면서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건
작년 여름.
에어컨도 없던 집에서
그 한 곡을 마스터하겠다고
장장 6시간을 유튜브 앞에서 기타를 껴안고 있던 캐쉬의 모습이다.
무심히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앞에서
손가락 끝이 빨갛게 부을 때까지
끝까지 기타를 놓지 않던 캐쉬.
덕분에 우리는 매일 저녁 캐쉬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현재는 나와 정 반대의 곳에서 열심히 코드를 짜고 있을 캐쉬.
나에게 처음으로 경제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제대로 빨리 뛰는 법을 알려준 친절한 선생님.
언젠간 우리가 목표로 했던 그곳 가까이에서 만나 다시 즐겁게 노래하고 웃을 수 있길. 우리는 분명 그렇게 될 거야. 캐쉬!
우리는 분명 그렇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