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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얀 Aug 11. 2020

돌고 돌아 돈 얘기

   



처음 돈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글을 쓰는 예술가이니 돈도 좀 예술적으로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돈에 관한 지식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팩트였고

솔직히 난 예술도 잘 모르겠고 돈에 관해서는 더욱 몰랐다.

   

그렇다고 영 마이너스는 아니었다.

서른아홉이란 나이를 먹고살아오면서 그래도 크게 빚을  본 적 없고

글을 쓰겠다고 서울로 왔던 서른 살까지는 직장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삼천만 원 정도의 쌈짓돈도 있었다.

스물일곱 살에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갔던 오사카 어학연수부터 서른 맞이 유럽 여행도 다  내가 번 돈으로 다녔다.


문제는 글을 쓰면서부터 저축은커녕 모아 놓은 쌈짓돈까지 까먹어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돈에 대해, 앞으로 내가 살아나갈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과거와 미래보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라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명확한 노후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


나의 노후 계획은 스위스에 있었다.


'존엄하게 살고 존엄하게 죽기 위해서'라는 모토로, 어느 인권변호사에 의해 설립된 스위스의 비영리 단체 [디그니타스]. 이곳은 불치병이나 질병으로 인한 고통 등으로 스스로 죽음을 원할 경우, 스위스 형법과 자체 규정에 따라 심사한 후 의료적으로 자살을 도와주는 곳이다. 일명 조력 자살 또는 안락사.


뭔가 무시한 단어들이지만 사실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므로, 죽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것이야 말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이고 그렇게 스스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 때, 죽음은 더 이상의 비극과 두려움이 아닌 존엄한 인생의 마무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 값, 체류비, 약물 비용과 그 후 처리 비용 등에  필요하다는 삼천만 원은 늘 준비해 놓고 있었고 그것이 나의 노후자금이었다.


한국에서 안락사란, 찬반 논란 자체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인 의견이 대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스위스에 가기 전까지 내게 남은 시간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현재 불치병도 없고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의 고통도 없다. 나 역시도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죽고 싶지 다.  


멋진 소설을 쓰고 싶다.

내가 쓴 대본을 읽으며 움직이는 배우들을 보고 싶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과일이 있다. 

언젠간 다시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정성껏 시간을 들여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직접 그림을 그린 책도 내고 싶고 기타를 배우고 싶다.

나의 유년시절엔 괴로움이 많았지만, 이제 태어난 조카들에겐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



그러니 어떻게든 오래 살아야 한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배움과 글쓰기, 여유로운 마음으로 생을 채우기 위해서는 역시나 돈이 필요했다.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문제가 아닌 기회와 여유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작년 여름, 은행 창구 앞에서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른여덟. 다수의 사람들 집을 살 때 대출을 받는다고 하니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은행에 갔다. 그리고 난생처음 떼어 본 연소득 증명서에 적힌 480만 원이라는 숫자 덕분에 망신을 당하고 좌절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냥 좌절하고 괴로워하기보다 얼른 내 주제파악했다.


인생 백세 시대를 넘어 이제는 인생 120세 시대가 되었다고 봤을 때, 인생의 1/3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으니 이만하면 됐다. 대신 이제부터는 이전과는 다르게 한 번 살아보자. 그래 보자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렇게 우연찮게 각성하는 기회를 만나 돈을 공부하며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쓴 책을 읽고 그들이 했던 방식을 아이처럼 따라 해 보았다. 다들 하나같이 말하는 공식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재테크 책에서도 다들 하나같이 말하는 공식이 있었다. 그것이 이제껏 내가 읽어 왔던 문학과 다른 점이었고 그래서 아주 명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주 수입원을 만들고, 빈 방을 내줘서 사이드 잡을 만들고,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식비를 아끼며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늘 침대에 누워 공상을 하며 시간을 펑펑 쓰던 시절과 반대로 자투리 시간까지 알뜰히 모아가며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놓을 수 없으니 몸과 머리가 쉴 틈이 없었다. 내 방까지 남에게 다 내주고 거실 한편에 파티션을 치고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어느 날엔 '이러다간 스위스로 가기 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생은 길고 죽음은 알프스 꼭대기만큼 멀리 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이상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나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통장에는 내 평생 모아 왔던 돈보다 더  액수의 돈이 모여 있었고, 내 책장에는 예전에는 쳐다볼 일 없었던 종류의 책들이 가득 찼다. 머릿속에는 새로운 생각,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 만나 기존과는 전혀 다른 주제로 대화를 하고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스스로 생의 마지막을 선택하기 위해 스위스에 가길 택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는 것도 선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1월의 첫날, New year New you를 외치면서도 우리는 늘 똑같은 생각, 똑같은 방식으로 살았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방패로 삼으며 돈이라는 것을 무작정 미워하면서.


이렇게 돌고 돌아 다시 돈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돈을 매개로 새롭게 다시 태어났음을 느낀다.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이야기를 쓰며 새로운 세상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이 내가 지난 1년간 돈에 푹 빠져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고 견딜 수 있었던 이유였다.




멀리 있는 죽음보다 스스로의 선택한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껴 보시기를. 스스로를 믿으며.


New day new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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