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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n 29. 2021

19. IT는 새로운 신뢰 기재가 될 수 있을까?

※ ZDNET 코리아에 칼럼으로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디지털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시민은 출생과 동시에 전자신분증을 발급받는다. 시민들은 신분증을 활용해 온라인으로 99%의 행정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납세와 교육은 물론 투표도 가능하다. 신분증을 이용하면 까다로운 의료 과정도 간소해진다. 병력이 신분증에 저장돼 다니던 병원을 옮기면 새로운 의사에게 치료 과정이 공유된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검진을 다시 받을 필요가 없다(와이어드코리아, “국내서도 대중화 바람 '전자증명', 무엇이 달라질까”).


에스토니아의 전자신분증은 DID(decentralized identity)의 일종이다. DID는 개인 정보를 공적으로는 국가가, 사적으로는 기업이 관리하던 과거와 달리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관리하도록 분산시키는 기술이다. 에스토니아가 ‘디지털 강국’이 된 데는 ‘인터넷 접근권은 기본권’이라고 인식하는 정부의 정책과 온라인에서 누구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전자신분증 제도 덕분이다. 케레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전자신분증과 전자서비스는 강력한 보안이 필요하며, 정부가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안전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한겨레신문, “디지털 강소국 에스토니아 대통령 방한…정부가 개인정보 안전 느낌 줘야”).

내 정보를 내가 관리하기 시작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우리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구글에 접속할 때마다 늘 이런 걱정을 한다.


"구글은 도대체 어디서 돈을 버는 걸까?
구글이 망하면  되는데…"


잘 나가는 회사는 사장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회사 걱정을 대신해 준다. 솔직히 나도 인공위성으로 찍은 사진으로 가상의 지구를 구현해 놓은 "구글어스"를 꽁짜로 쓰면서 이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구글이 망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구글은 당분간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글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구글에 접속하고 있는 소비자들이다.

구글은 검색은 검색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 검색이 있기 전까지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검증할 수 없는 정보로 가득한 쓰레기의 바다였다. 그 쓰레기 더미에서 사용 가능한 정보를 찾아 주는 것이 바로 검색엔진이다. 구글은 가장 신뢰할만한 검색엔진을 개발해 세계의 많은 사용자가 구글에 접속하게 만들었다. 구글에 접속되어 있는 사람은 모른다. 자신의 정보가 모여 집단 정보가 되고, 빅데이터가 된 집단 정보를 팔아 구글이 먹고살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살자, Goooooooooooooooooole!

구글이 기업에 팔아 수익을 내는 집단 정보의 대가를 그 정보를 제공해 준 개인에게 나누어 준다면 돈의 흐름은 어떻게 바뀔까? 이미 구글은 이러한 실험을 하고 있다. 바로 유튜브다. 유튜브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속할 수 있는 정보를 생산해 내는 유튜버에게 그 대가를 돌려준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 건강한 시장의 균형을 깨는 것이 바로 생산과 소비의 중간에 위치한 ‘이윤’이다. 하지만 이 이윤을 적당하게 분배할 수 있다면 시장은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한번 블록체인(blockchain)이 만들어 갈 근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블록체인은 관리 대상 데이터를 '블록'이라고 하는 소규모 데이터들이 P2P 방식을 기반으로 생성된 체인 형태의 연결고리 기반 분산 데이터 저장 환경에 저장하여 누구라도 임의로 수정할 수 없고 누구나 변경의 결과를 열람할 수 있는 분산 컴퓨팅 기술 기반의 원장 관리 기술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분산 데이터 저장기술의 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변경되는 데이터를 모든 참여 노드에 기록한 변경 리스트로서 분산 노드의 운영자에 의한 임의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고안되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암호화폐 거래에 사용된다. 암호화폐의 거래 과정은 탈중앙화 된 전자장부에 쓰이기 때문에 블록체인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많은 사용자들의 각 컴퓨터에서 서버가 운영되어, 중앙에 존재하는 은행 없이 개인 간의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다(위키백과, 블록체인).



만약 구글이 자신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개인에게 그 이익을 제대로 분배해야 한다면? 유튜버가 되어 굳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나이, 성별, 위치 등 나의 소중한 개인 정보와 더불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취향에 대한  공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구글이 왜 그래야 하냐고? 구글은 나를 포함한 여러 개인의 소중한 개인 정보를 가공해 삼성이나 애플 같은 회사에 제공해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삼성이나 애플은 자신이 애써 개발한 제품이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으려면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를 포함한 많은 소비자들의 개인정보와 취향을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시간을 계속 줄여 왔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지만, 난 토요일 오전 수업을 하던 시절 학교에 다녔다. 한동안은 격주로 토요일을 쉬다가, 지금처럼 주 5일 근무가 시행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이었던 2004년 7월 1일부터였다. 앞으로 인간의 노동은 기계가 빠르게 대체해 나갈 것이다. 노동이 신성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왜 그렇게 아등바등 줄어들고 있는 일자리에 경쟁적으로 몰려드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일자리라고 하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몰려들수록 문지기의 권한만 강해질 뿐이다.


블록체인… 사기일까, IT의 미래일까?

사실 블록체인에 대한 견해는 여럿으로 갈린다. 주로 IT 종사자 쪽에서 별로 새로울 게 없는 기술이라며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일각에서는 블록체인은 사기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솔직히 난 블록체인이 사기여도 좋다는 입장이다. 사실 지금까지 인간이 믿고 따르던 것 중 사기가 아니었던 게 있었던가? 우리는 돌덩이에도 신이 있다고 여겼던 사피엔스의 후예이다. 심지어 어렸을 때 나의 부모님은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냐는 곤란한 질문에 청계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사기를 치셨다. 그리고 난 청계천 다리 밑에서 팥죽 장사를 하고 있다는 친모를 찾기 위해 가출을 결심하기도 했었다. 결심만 했을 뿐 실행해 옮기지는 못했지만… 인간은 동물적 본성을 이성으로 통제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사기를 쳐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역설에 빠졌다. 사기를 통해 유지가 되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관계의 눈치를 안 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면 사이코 취급을 받는다.


내가 블록체인이 사기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관계를 유지해온 신뢰 기재가 모두 깨졌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의지하던 신은 중세에 이미 죽었고, 근대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영웅도 사라졌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기는 하지만, 정치인을 신뢰하는 바보는 없다. 사회가 복잡해지며 많은 전문가에게 신이나 영웅이 해왔던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을 떠넘기지만, 신이 아닌 인간 전문가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만약 블록체인이 무너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를 회복할 수만 있다면 사기인들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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