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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Aug 24. 2021

아직도 이러고 산다!

공주 고마다락에서의 단독 공연기!

2015년이었나?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참가하는 정책박람회가 열린 적이 있다. 은평구청도 교육정책으로 참가를 했는데, 당시 은평구청 교육정책보좌관이었던 난 박람회가 열리는 3일 동안 붙박이로 부스를 지켰다. 그중 전남(이었나?)은 철을 대체할 첨단 미래 소재라고 불리는 카본(탄소섬유)을 가지고 정책박람회에 참여했다. 광역자치단체답게 부스도 큼직했는데, 부스 안에는 카본으로 만든 온갖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남 부스 앞을 지나가는데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오고 카본으로 만든 기타가 똬악~ 눈에 띄었다. 난 말로만 듣던 카본 기타를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첫째 날도, 둘째 날도 부스를 지키느라 짬을 낼 수가 없었다. 정책박람회 마지막 날, 오늘이 지나면 난 영영 카본 기타를 못 만져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점심시간을 틈타 전남 부스로 달려갔다. 그리고 부스를 지키고 있는 여성분께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기타 좀 만져봐도 될까요?
그거 조율 안 되어 있을 텐데요?
조율은 제가 하면 되죠~
그럼, 한 번 쳐 보세요...


시큰둥한 답변이었다. 조율을 한 후 난 기타를 뚱땅거렸다. 점심도 안 먹고 전남 부스를 지키고 있던 여성분은 내 기타 소리를 듣더니 부스 앞에서 쳐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왜, 안 되겠어요~


난 전남 부스 앞으로 자리를 옮긴 후 더 열심히 기타를 뚱땅거렸다. 기타 연주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전남 부스 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난 전남 부스를 지키고 있는 여성분께 수작을 걸었다.


제가 전남 부스를 홍보해 주고 있는데, 이 기타 저한테 주시면 안 돼요?
그게요... 저희도 협찬을 받은 거라...

슬쩍 인터넷으로 기타 가격을 검색해 보았다. 허걱!!! 기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수작을 이어갔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도지사님께 전화 걸어서 어떤 분이 카본 기타로 전남 부스를 홍보하고 있는데, 카본 기타 드리면 안 되는지 함 물어나 봐 주세요~"


될 턱이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난 그저 수작을 부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가 따끔 거리는 느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서히 고개를 돌려보니, 대학 동기가 팔짱을 낀 채 한심한 듯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 아직도 그러고 사냐?


난 얼굴이 화끈거려 전남 부스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리고… 무려 6년이나 지난 며칠 전, 공주 제민천 "고마다락"에서 기타 강습을 하고 있는데, 기타 강습이 거의 끝나갈 즈음 웬 선남선녀가 고마다락을 기웃거렸다. 고마다락은 원래 서점이다. 그런데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기타 강습을 할 수 있게 공간을 내어 주셨다. 기타 강습 중에 책을 사러 온 손님이 오면 책을 팔아 달라고 카드 결제하는 방법도 알려 주셨다.


 들어오셔서 구경하고 가세요~


멈칫멈칫하던 선남선녀는 고마다락 안으로 들어왔다. 기타 강습이 마무리되고, 자리를 뜨려는데, 그 선남선녀는 벌써 끝났냐고 아쉬워하며, 사실 책을 사러 온 게 아니라 기타 소리가 들려서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기타 연주를 조금 더 해 주면 안 되겠냐고...


왜, 안 되겠어요~


난 수강생들을 보내고 자리에 앉아 선남선녀를 위해 기타를 쳐 주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래까지 불렀다. 연인인 줄 알았던 선남선녀는 신혼부부라고 했다. 선남선녀는 요즘 한참 잘 나가는 "슈퍼밴드 2"를 안 보는지 나의 허접한 노래에 과하게 리액션을 해 주었다. 동영상을 찍어도 되냐는 요청에,


왜, 안 되겠어요~


얼굴은 찍지 말까요?라는 질문에 얼굴 나와도 상관없으니 대신 찍은 동영상을 나에게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한 30분 넘게 공연을 했나? 선남선녀는 계속 들을 기세였고, 나 또한 1시간 정도는 더 공연을 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있었으나, 갑자기 눈치 없이 굴지 말라는 옆지기의 따가운 잔소리가 떠올랐다.


자, 이제 마지막 곡 불러드릴게요.
너무 잘 들었어요. 천안에서 놀러 왔는데,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저야말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전 제 노래를 들어줄 관객이 고팠거든요.


시간을 빼앗은 것이 미안했는지, 아니면 진짜 내 노래에 감동을 받았는지, 고마다락에 있는 책을 한 권 사겠다고 했다. 나도 얼마 전에 책을 한 권 냈다고 했더니 즉석에서 내 책도 주문해 주었다. 아싸~ 토요일마다 기타 강습을 하고 있으니 또 놀러 오라고 인사를 하고 아쉽지만 내 하찮은 공연의 관객이 되어준 선남선녀를 떠나보냈다.


매주 토요일 5시에 기타 강습을 하니까,
또 놀러 오세요~


내 책에 사인을 받고 싶다고 했으니 선남선녀가 진짜 내 노래에 감동을 받았다면 언젠가 또 오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선남선녀가 보내온 동영상을 공개한다. 내 노래를 들어준 선남선녀가 진짜 감동을 받았는지, 아니면 예의상 감동받은 척한 것인지는 동영상을 보고 판단해 보시라!


참참참, 여기서 퀴이~즈! 제가 "왜, 안되겠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을까요? ㅎㅎ


총 7곡을 불렀다. 더 할 수 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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