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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Nov 25. 2021

인간은 이유를 필요로 하는 동물이다!

세계가 <지옥>에 열광하는 “이유”

<오징어 게임>에 이어 연상호 감독의 <지옥>이 전 세계 넷플릭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옥>은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 차트에서 드라마와 예능 등 TV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순위를 정하는 '넷플릭스 오늘 전 세계 톱 10 TV 프로그램(쇼)' 부문에서 780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11월 22일 기준). 1945년 일본에서 독립한 아시아 변방의 작은 국가,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가 연이어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이유를 필요로 하는 동물이다!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가 전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 좋은 거지,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한류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가 전 세계로 확산된 배경에는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시장에서 최대한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설계된 독특한 기획사 시스템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돌을 찍어내는 소위 자본 결합형 연예기획사는 다양한 루트로 중학생, 빠르면 초등학생까지 사냥해 아이돌로 프로그래밍을 시도한다. 사냥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소위 연예기획사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철저한 자본의 논리를 따를 뿐만 아니라 이윤 창출의 재료로 인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는 이윤의 추구와 더불어 과도한 이윤 추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잉생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과소비와 중복 소비까지를 포함한다. 연예기획사에서 연습생으로 시작해 아이돌로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자본의 재료가 인간이라면 사실 그 확률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자본은 오직 아이돌이 되기 위해 청소년기를 바친 아이들이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어떤 삶을 살아갈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을 했다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아이돌 그룹의 평균 수명은 대략 7년 안팎이다. 한때 한류를 이끌었던 소녀시대, 원더걸스, 씨스타, 빅뱅, 슈퍼주니어 멤버들 중 드라마나 예능에서 얼굴을 비추는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연예 기획사는 아이돌 그룹과 7년짜리 계약을 맺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바로 그룹을 해체시켜 버린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멈추는 법을 학습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경제공황이 반복된다. 초기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물리적으로 지배하는 제국주의 전략을 선택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지배하는 세련된 시스템을 개발해 냈다. 다름 아닌 금융이다. 금융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경제공황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융위기이다. 그리고 금융위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과잉생산의 반대편에 있는 과소비와 중복 소비를 부추긴다. 그리고, 과소비와 중복 소비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문화 현상이 바로 유행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행의 주기를 측정한다. 지금은 넉넉하게 7년을 산정하지만, 그 주기는 갈수록 짧아질 것이다. 한류는 이렇게 채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린 꽃봉오리의 무덤 위에서 연예 기획사가 양식한 몇 송이의 꽃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세계를 뒤흔드는 이유는 또 다르다. 음식점이 맛집으로 성공하기 위한 3가지 요소는 좋은 식재료, 훌륭한 요리사, 그리고 음식을 소비할 수 있는 충분한 크기의 시장이다. 역순으로 살펴보자. IT의 진보와 코로나19, 그리고 넷플릭스라고 하는 우연의 조합은 OTT 플랫폼을 통해 세계를 거대한 문화콘텐츠 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이미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은 훌륭한 요리사들이 즐비하다. 칸을 비롯해 세계 3대 영화제를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이미 영화, <부산행>으로 칸에 초청되어 K좀비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바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감독들이 모두 세계 최고의 요리사이기 때문일까? 영화계에 이름난 거장들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가 연이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를 “한국 사회”라는 식재료에서 찾는 것이 제법 타당해 보인다.


『음모론의 시대』 ,『세대 게임』을  사회학자 “전상진 빠른 경제 성장, 다양한 정치 갈등 구조, 비정상적인 입시경쟁교육 등이 뒤엉켜 있는 대한민국 사회학자들이 입맛을 다실만한 매우 기름진 사회라고 주장한다. <지옥>이라는 영화 제목이  설지 않은 이유는 이미   전부터 대한민국을 스스로 “헬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이리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지옥과 가까운 나라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고통의 크기는 기대와 현실의 낙차가 만든다. 빠른 경제 성장의 가속도는 세계 유례없는 양극화와 더불어 기대의 크기도 증폭시켰다. 대한민국 사회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사실 현실  자체보다는 통제도, 감당도 쉽지 않은 기대에 있다. 대한민국은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수도, 열심히 노오력만 하면 교육을 통해 인생 역전을  수도, 그럴듯한 건물  채만 가지고 있으면 조물주가 부럽지 않은 여생을 보낼 수도 있는 “코리안 드림 나라지만  기대가 허락한 자리가 지극히 적다는 것이 함정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기생충들이 벌이는 “오징어 게임 만든 “지옥같은 자본주의를 설명할  있는 최적의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지옥> 통해 이해할  없는 방식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다시 처음에 인용한 “인간은 이유를 필요로 하는 동물이다”라는 문장을 드라마 <지옥>에 대입해 보자. 드라마 안의 종교단체 새진리회는 아무 이유 없이 랜덤으로 이루어지는 소위 “시연”의 이유를 설명하며 어머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동시에 지금까지 인간의 세상을 지극히 자의적으로 설명해 온 종교의 뒤통수를 통쾌하게 후려갈긴다.


형준 : 배영재씨는 믿어요? 그 애들 장난 같은 말들을?
영재 : 그럼 고지(천사가 나타나 심판 시간을 알려 주는 것)는 뭐예요? 사람 이름까지 불러가면서 지옥에 간다고 하잖아요. 그것들이…
형준 : 글쎄, 뭐 모릅니다. 그게 신인지 뭔지. 하지만 문제는 이 현상의 해석에 있어서 새진리회가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설사 그게 신이라고 해도 그 신의 의도가 새진리회가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우린 그 신을 거부할 수밖에 없어요. 최소한 우리 인간을 위한 신은 아닐테니…


<지옥> 5화의 약 20분쯤 등장하는 이 대사에는 이유에 대한 해석의 독점이 어떻게 권력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이는 비단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새진리회의 자리에 정치, 경제. 교육을 대입해도 다르지 않은 결괏값을 얻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나아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그 자리에 대입해도 명쾌하게 들어맞는다. 한번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을 새진리회의 자리에 대입해 보자.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인간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누군가 권력으로 독점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난 학생운동을 하던 나를 강제 입대시킨 부모님께 부모님의 사랑은 자식이 원하는 행복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항변했던 적이 있다. 지나고 보니 나 또한 부모라는 권력을 이용해 나의 자식에게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을 일방향으로 “시연”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E=mc^2이라는 방정식으로 특수상대성 이론을 설명했듯, 연상호는 지옥의 방정식을 통해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인간과 그 이해를 권력으로 사용하는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지옥의 방정식으로 핵무기를 만들지, 아니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상적인 전쟁을 종식시킬지는 이제 우리들의 손에 쥐어졌다.


이유가 필요한 인간은
언제나 설명하는 자가 건넨 독배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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