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행정통합과 개헌 논의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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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경험공간을 넘어 새로운 ‘기대지평’의 개헌으로
채희태(교육학 박사, 공주대학교 연구교수)
2026년 초, 행정통합과 더불어 개헌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5극 3특이라는 새로운 지역체계 개편안이 논의되고 있고, 이재명 정부는 개헌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으며, 국회 역시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38년을 넘어섰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요즘은 1년 사이에도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다. 갓 대학에 입학한 딸에게 필자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하면 “아빠 조선시대 사람 같아”라는 말이 돌아온다.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40년 전 헌법은 조선시대 법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만들라고” 분신한 것이 아니었다. “지키라고” 분신했다. 근로기준법은 있었지만 없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은 어떠한가. 헌법 위에 군림해 온 국가보안법,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국가란 무엇입니까?”라고 일갈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국가 안보를 위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해도, 현재 대한민국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이 과연 북한일까? 케케묵은 헌법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성장을 가로막아 온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은 미래를 ‘기대지평’, 과거를 ‘경험공간’으로 비유했다. 이제 불확실한 지평선 너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은 경험공간의 자리로 안치해야 할 때다.
행정통합 논의와 더불어, 교육계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광주-전남은 통합 교육감 체제를, 대전-충북은 기존 체제로 준비 중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교육의 자주성’이다.
교육의 자주성도 70년대 근로기준법이나 국가보안법, 그리고 40년 묵은 헌법과 다르지 않다. 언젠가부터 교육의 자주성이라는 신화는 그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채 존재하게 되었다. 헌법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알아도, 교육의 자주성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통해 알게 된 분도 있으리라.)
교육자치, 즉 일반행정과 교육을 분리해 운영하는 제도는 미군정기에 미국의 교육제도를 한국에 이식한 것이다. 이후 이승만 정권이 교육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으면서, 교육계는 교육의 자주성을 무기로 저항했다.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단행된 제5차 개헌에서 교육계는 정당성이 필요한 쿠데타 정권과 결탁해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유신 정권,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할 정도로 교육이 국가발전의 수단이었던 시기, 과연 교육에 자주성이 있었을까?
교육의 자주성은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교육계의 자기준거를 정당화하고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1980년 신군부 쿠데타 이후 단행된 제8차 개헌에선 ‘교육의 전문성’까지 헌법에 편입되었다. 교육의 3대 원리(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는 민주적 합의나 시대적 정당성이 아닌, 교육계의 요구와 쿠데타 정권의 정치적 필요가 만나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안선회 교수는 교육계가 사용하는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과 같은 언어들이 주권자의 민주적 개입을 차단하는 강력한 ‘담론적 성벽’으로 기능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 삼각 동맹은 교육 주권자인 학생과 주민을 소외시킨 채, 교육 카르텔의 영토를 수호하는 ‘보호막’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헌 과정에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아니 아무도 관심조차 없는 교육의 자주성 관련 조항은 삭제될 필요가 있다. 여느 선진국처럼 헌법에는 ‘학문의 자유’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헌재가 해석하고 법률이 보완하면 된다. 인공지능 시대,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의 쓸모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떤 전문성도 특권이 될 수 없다. 40년 된 헌법,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국가보안법, 그리고 기득권의 보호막이 된 교육의 자주성, 이 낡은 경험공간의 유산들을 과감히 정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기대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