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der Oct 01. 2024

공항에서 타인과 한잔

비행기에서 더 솔직한 대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공항을 좋아한다.

물론 가족끼리 여행을 위해 공항에서 목적지의 비행기를 기다리는 순간은 당연 즐거울 수밖에 없겠다. 업무를 접어둔 채 앞으로 며칠간을 열심히 일한 대가로 나와 가족에게 주는 보상은 당연 달콤하다.


요즘처럼 아픈 엄마를 보러 한국행 비행기를 자주 타는 나는 비행을 하는 시간도 그렇지만 공항에서 2시간 일찍 가서 한적한 곳을 찾아 업무를 보거나 회의에 들어가는 일이 잦다 보니 항공 여행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다. 그래도 솔직이 말하면 나는 아직도 공항이 좋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여행자들을 구경하는 것, 연인들끼리 어디론가 가는 희망에 찬 얼굴을 보는 것도 좋다. 잘 차려입은 승무원들을 구경하는 것도 그렇다. 어릴 때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들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설렌다.


또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들이 공항에서 떠오르기도 하고 공항에서는 마음을 다잡기도 좋다. 다음에 돌아가면 미뤄두었던 일을 꼭 해야지 하는 결심이 들기도 하고, 몇 년 동안 연락 못한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또 공항을 좋아하는 이유는 공항에서 한잔하면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릴 때 미나리를 만든 A24라는 영화사에서 일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도 있고, 한국에서 2년을 지내야 하는 미군하고 술잔을 부딪친 일도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한국에서의 미션은.. 국가 비밀이란다.


오늘도 나는 공항에 있다. 엄마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며칠 전에 받고 불야불야 한국행을 결정했다. 공항 음식점에서 옆에 앉은 이는 정장을 잘 차려입고 헤드폰을 낀 채 화상통화 중이다. 내용을 들으니 아마 세일즈 엔지니어쯤 되는 듯하다. 한참 동안의 전화를 마치고 나에게 통화가 길어져서 미안하다고, 혹시 너무 시끄럽지는 않았느냐고 슬쩍 말을 건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세일즈를 하냐고 물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근무를 한단다.


한 번은 비행기에서 옆에 앉은 승객과 대 여섯 시간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후에 연락처도 주고받고 친구가 되자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연락이 오가지는 않았다. 얼마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마구 했는지 얼굴이 뜨거워진다.


혹시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면서 정말 환장하도록 울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자주 그런다. 아주 슬픈 영화를 본 것도 아니다. 몇 년 전에는 '토이스토리'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승무원이 와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더라. 그리고는 진정하라고 작은 위스키를 슬쩍 건네주더라.


혹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이상할 것 하나 없다. 공항이나 비행기에서 더 감성적이 되는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런던의 개트윅 공항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5%의 남성과 6%의 여성이 집에서 영화를 볼 때보다 기내에서 영화를 볼 때 더 우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현상은 우선 비행 여행에 대한 약간의 공포감, 떠나온 가족이나 집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 그리고 목적지에 대한 공포나 흥미로움 등도 작용을 한다.

이래서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자주 솔직해지고, 감성적이 되며, 내 이야기를 남에게 마구 털어놓고, 영화를 보며 한껏 운다.

오늘 만난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는 이는 나에게 뭐 하는 사람인지 내 과거와 이력을 조근조근 묻는다. 내가 한국 사람으로서 캐나다에서 잠수함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감사원으로 일한 경위. 그 후에 실리콘밸리에서 어떻게 개발자로 자리를 잡았는지. 여자로 일하는 것은 또 아시아인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지. 또 무엇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국 대선에 관해서 우리는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도 아시아인으로 미국에서 일하며 다가올 대선에 대한 우려가 나와 비슷하다.


그는 시계를 보고 나에게 명함을 내밀며 꼭 연락하자고 하고 서둘러 게이트로 향한다.

나는 다시 헤드폰을 쓰고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는 척 컴퓨터를 켠다.


제 책이 드디어 출판되었습니다.

글을 읽어주시고 구독해 주신 많은 분들께 또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3809371

대문은 Photo by Suganth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여기 오면 다 잘될 줄 알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