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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der 10시간전

멀티태스킹의 달인

여러 가지 일에 실패하고 있는 중?

몇 년 전에만 해도 멀티태스킹(Multi tasking) 또는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잘하는 사람들, 멀티태스커(Multi tasker)라는 말이 면접에서 자주 오고 갔다.

Are you a fast learner?
Are you a multi-tasker?

즉, 빨리 배울 수 있나?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소화해 낼 수 있나?라는 질문을 줄곧 받았었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질문은 면접이나 일상생활에서 듣기 힘들다. 사람들이 “나는 멀티 태스커”라고 자랑하는 일도 드물다. 멀티태스킹이 허상이라는 것이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중에 유난히 여러 가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잘 들여다보면 여러 일을 한꺼번에 소화한다기보다는 일의 우선순위(priority)를 잘 매겨서 차례차례 진행하는 사람이다. 요즘은 이렇게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다.


멀티태스킹의 어원이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0년대 컴퓨터 이론학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 말로 시작했다. 사실 컴퓨터에서도 최근에서나 이런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게 되었다. 컴퓨터 역시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한다기보다는 순차에 맞춰(Scheduling) 정해진 일을 CPU 등의 Resource를 이용해서 한 번에 하나씩 해나간다.  진행 속도가 빠르면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독립적으로 처리되는 듯이 보여도 거의 모든 상황에서 그렇지 않다.


슈퍼태스커들

2.5% 정도의 사람들이 슈퍼태스커라고 한다. 두뇌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데 전문가들은 이것을 노력에 의한 결과라고 보기보다는 타고난 능력으로 추정한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서 달인이 되고 나서는 다른 일을 동시에 행할 수는 있지만 익숙한 일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불가능해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두 가지 음악을 동시에 듣고 둘 다 따라 할 수 있다던지 아니면 수학 문제를 풀면서 영화도 100%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알면서 왜 멀티태스킹을 시도할까?

전문가들은 우리가 멀티태스킹을 잘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지루함을 꼽는다.


공부하면서 약간 지루하니까 음악을 듣고, 일을 하면서 지루하니까 카톡을 슬쩍 보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함으로써 능률이 오른다는 착각을 하는 것. 운전을 하면서 오디오 북을 들으니 운전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다 지난번에 사고를 낸 내 친구가 바로 그 예다.


미국에서 교통사고의 이유로 핸드폰, 옆 사람과의 대화 등 멀티태스킹이 가장 큰 요인이다. 요즘 신형 차에는 거의 모두 장착되어 있는 커다란 모니터도 이런 멀티태스킹을 부추긴다.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인 기대다. 우리의 현실이 엄마, 아빠들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육아하고 부모님도 돌봐야 하고,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해야 하는 슈퍼 맨이 되기를 요하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을 잘할 자신이 없으면 자식은 꿈에도 생각하지 말던가 아예 결혼도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 이런 질문을 주위에서 많이 듣는다. 특히 우리처럼 근무시간이 길고 가족에 대한 책임이 크게 요구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멀티태스커가 돼서 실패하느니 차라리 시도를 안 하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현명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나는 주말마다 새벽에 검단산을 오르는데 포드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듣는다. 이것도 실제로는 멀티태스킹이다. 이렇게 산행을 한지 꽤 오래되었는데 오늘 정상에서 한분이 나에게 약수터 근처에 핀 꽃을 봤냐고 묻더라. 그때 깨달았다. 내가 산을 오를 때 주위를 거의 보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내 책이 출간된 이후에 한국에 와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출판사 관계자들도 뵙고 바쁘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술을 한잔 하면서 나에게 "아픈 어머니에게 너무 나쁜 딸"이라고 한마디 던지더라. 정색을 하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쏘아붙였다. 친구랑 헤어져서 오는 길에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미국에 살면서 회사 다닌다고, 한국에 와서는 책까지 쓴다면서 가족이라는 태스크는 실패하고 있었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남들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백명중 98명은 실패를 하고 있다니 그나마 마음에 위로가 된다.


이번에 나온 책은 실리콘밸리에 관한 책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보다 뒷 이야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미국의 역사, 연봉, 세율 그밖에 중독이나 인종차별등 사회적 문제에 관해서도 좋은 자료가 되었으면 합니다. https://m.yes24.com/Goods/Detail/133809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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